끝이 보이는 땅끝 (닭골재-마봉리, 6/16)
내 동생의 손 - 마종기(1939~ )
생시에도 부드럽게 정이 가던 손,
늙지 않은 나이에 자유롭게 되어
죽은 후에는 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속상하게 마음 아픈 날에는 주머니 뒤져
아직 따뜻한 동생의 손을 잡으면
아프던 내 뼈들이 편안해진다.
내 보약이 되어버린 동생의 약손,
주머니에서 나와 때로는 공중에 뜨는
눈에 익은 손, 돈에 익지 않은 손.
내 동생의 손이 젖어 우는 날에는
내가 두 손으로 잡고 달래주어야
생시처럼 울음을 그치는 눈물 많은 손.
내 동생이 땅과 하늘에 묻은 손,
땅과 하늘이 슬픔의 원천인가,
슬픔도 지나 멀리 떠나는
안타깝게 손 흔들어대는
내 동생의 저 떨리는 손!
“죽은 후에는 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이 구절을 얼핏 스쳐 읽었을 때, 이 무슨 엽기인가 싶었다! 그러나 시를 읽어감에 따라 ‘없는’ 동생의 손의 허허로움을 지나서 ‘형의 손’이 느껴졌다. 동생의 손을 기억하고, 그 손을 느끼고, 그 느낌으로 위안 삼고, 다스리며 가는 형을 느꼈다. 호주머니 속에서 아우의 손을 느끼며 살아가는 형의 손, 이것은 무엇인가. 가끔 나는 옛 분들이 내 속에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내 할머니의 말씨, 그분의 삶이 내 삶과 문학적 행위에 일정하게 방향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내 아이에게 보이는 나의 삶, 이것이 그 아이에게 전해지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윤회가 아닌가? 한 생을 살다 간다는 것, 내가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말과 행위를 건네주고 건네받는 것이라면 이 삶의 순간순간이 참으로 막중하지 않은가?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산행일: 2013.6.16 (일)
코스개관: 닭골재-바람재-달마산-떡봉-도솔봉-임도-마봉리 (10:50~18;10)
멤버: 당나귀 10명
날씨: 더위에 지치던 날
오늘 산행을 하면 마지막 한 구간이 남는 땅끝. 닭골재에서 달마산 산행이니 경치는 안봐도 비디오.
암릉이 험하다지만 주작, 덕룡, 두륜산에 비하면 양반이지....
버스를 타니 회장님 얼굴이 새카많다. 유럽 알프스 다녀오셔서 어제 밤에 도착해 오늘 새벽 출발.
회장만 아니었어도 안 나오셨을 텐데... 몸만 온게 아니라 맥가이버 칼까지 하나씩 선물로 주신다.
다른건 몰라도 당나귀 회장님과 두 총무님은 그야말로 명품 중 명품.
오늘 산행 기점이 길어 자다자다 도착 전에 잠이 깼다.
헌데 우리가 개고생 하며 지난 산들이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빛나는데 어찌나 예쁜지.....
지난번 힘들게 내려섰던 닭골재.
오늘도 해남 3총사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한분만 함께 산행하신다고...
인증샷 찍고 출발하는데 초장 나무도 베어 놓고 길이 잘 나 좋다 했는데 길이 헷갈린다.
이곳이 사유지인데 간벌을 하면서 고의로 등산로에 베어 놓은 나무로 막아 놓은것 같이 보인다.
아무튼 예전엔 이리 거칠지 않았던것 같은데 헝클어진 길을 겨우겨우 지나고 나니 달마산 가는 임도가 나온다.
이젠 길이 좋아지나 했다. 임도 따라 걷다 왼쪽 산길과 임도길. 임도길에 리본이 아주 많다.
임도길을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길다. 해남인은 왼쪽 산길로 가버렸고 이대장이 이 길을 고집했다고...
아무래도 길을 길게 돌아가는것 같은 불길한 예감.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지라 그냥 임도 따라 올라간다고...
임도에 산딸기가 지천이다. 따먹으며 위안을 삼는다.
임도가 산길가 드디어 만난 곳이 바람재.
나중 이야기지만 해남인도 넝쿨진 길을 뚫고 오느라 나름 힘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곳에서 달마산 능선으로 가는 길은 내심 쉬울줄 알았는데 넝쿨로 길이 덮여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암릉으로 된 능선으로 붙는데 힘이 들어 후미가 됐다. 헌데 이대장은 나보다 더 헤맨다.
맥주 한캔 나누어 먹고 겨우겨우 올라가니 그늘에서 선두가 기다리고 있다. 기운 없어 밥 먹고 가기로 했는데 장소가 협소해 두팀으로 나누어 밥 먹기.
오늘도 총무님과 혜련씨가 쌈을 한가득 싸왔는데 어제 저녁 과식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아 자제하고 조금만 먹었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물, 맥주 등만 먹고 싶다.
능선으로 붙으니 넝쿨은 없는데 소소하지만 업다운이 있다. 그래도 달마산은 다른 암릉에 비해 그늘이 많고 스틱을 접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후미로 겨우겨우 달마산 정상 도착.
선두 날아라 하니 조는 진작 가 버렸고 작가님이 바람이 시원하다면서 사진 찍어주려 기다리고 계시다.
여깃 인증샷 찍고 회장님이 내놓은 맥주 한캔 한모금씩 나누어 마시기.
예전엔 스틱을 접고 기어 다닌것 같은데 오늘은 스틱 접지 않아도 될 정도 인걸 보니 달마산 암름은 거의 우회를 한것 같다.
바람이 시원하거나 그늘이라 바위가 서늘한 곳에서는 무조건 쉬어주기.
전에는 없었던 계단이 두군데나 생겼다. 아무튼 우회를 했는데도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미황사 하산로와 만나는 길에 해남인 두분이 기다리고 계시다. 선두 지나간지 거의 1시간 됐고 두시간째 기다리고 계신다고....
참 대단한 분이시다. 그중 한분은 고향은 해남이지만 집이 인천이라는데.....
다시 헤어져 길 가기. 작가님은 금샘을 갈까 고민 하시더니 선두에서 먼저 출발해 도솔암 갈때까지 내내 못 뵈었다.
떡봉까지 가는 길. 내리막인데도 정말이지 멀었고 힘들었다.
달마산 정상에서 보이던 철탑이 계속 안 보이더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고 거리가 조금씩 좁혀 지는데도 너무 멀다.
예전엔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것 같은데....
아마도 힘든 기억은 싹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겨두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인것 같다 웃었다.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이작가님도 그때보다 훨씬 힘들다 하신다. 하긴 그땐 4월이었고 무박이었고 진달래가 정말 고왔었다.
도솔봉까지 가는 길이 길고 힘들었지만 한편 이쪽 경치가 이리 멋졌었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도솔사에 가니 작가님, 총무님, 이대장 셋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사진 찍고 가려니 해남인 두분이 노느니 주차장에서 걸어오셨다고....
함께 사진 찍고 마지막 길 가자~
도솔암 주차장 가는 길을 왼쪽 능선을 타고 갔어야 도솔봉을 만났을텐데 로칼 가이드께서 왼쪽 길이 맞다 해 결국 도솔봉을 놓쳤다.
되집어 가기도 그래 임도 따라 걷다 땅끝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승용차 타고 임도 내려가기.....
내려가니 날아라 하니조는 진작 내려와 약수터에서 씻고 말갛게 앉아 있다.
우리도 사람 없는 틈을 타 세수하고 발 닦고 시원한물 싫컷 마시고 물도 뜨고...
헌데 내 등산화를 보니 깔창을 안 깔았다. 어쩐지 신발이 커서 발이 계속 놀더라니.... 그런것 치고는 발바닥이 많이 아프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걸어 내려온 팀은 차떼기로 물 뜨러 온 사람들 눈치가 보여 병에 물 떠다 등목 겨우 했다.
한일환씨께서 파프리카 농장에서 파프리카를 한 보따리 사오셨다. 갈증 나는데 먹으라고....
미스 파프리카 인증샷 찍고 출발. 식당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행복감이 넘쳐난다.
이젠 정말 한번만 남았고 마지막 구간은 거리도 짧고 암릉도 없어 걸어 갈 수 있다. 신난다.
호남정맥에 땅끝까지 2년 동안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보다 더 자주 전라도에 왔을거라고.....
우리도 우리지만 산행도 함께 못하면서 올 때마다 반겨주고 탈출조 차 태워주고 함께 놀어주고 먹여주신 해남분들. 정말이지 그 감사함을 뭘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다 회장님 인복이지 싶다. 우린 그런 명품 회장님이 계셔 이런 대접을 받고....
지난번 저녁 먹었던 석천에서 오늘은 한상에 4만원 짜리 한정식 먹기.
지난번 보다 메뉴 몇개가 빠지긴 했지만 아주 훌륭한 저녁으로 배터지게 먹고 출발하니 8시반.
12시 반 평촌 입성.
파프리카 선물까지 챙겨 집으로....
땅끝아, 7월 마지막 인사 하러 갈께 기다려~
-이작가님 사진, 동영상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