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7년

지리산 중북부능선 7개 사찰 순례산행 (7/24)

산무수리 2007. 8. 4. 20:44
‘들길과 관절염’ -박철(1960~)


언젠가

관절염이 걸리고

관절염이 깊어지면 걷기도 힘들 것이라 믿어

시시때때로

들길을 걸었다

 
이제

관절염에 걸리고 무릎이 아프다

다시 시시때때로

관절염 치료를 위해 나는 들길을 걷는다

그러니

나는 평생 관절염과 함께 지내온 셈이다

들길을 걸어온 셈이다


 묘하게 이 시는 ‘언젠가’와 ‘이제’와 ‘그러니’로 이어진다. 옛 시인은 떠들썩하면 쓸쓸해지길 바랐고 근심이 없으면 근심 있기를 원했다. 관절염이 걸릴까 싶어 들길을 걸었는데 결국은 관절염에 걸렸고, 그래서 관절염 치료차 걷고 있는 이 사람은 들길과 하나가 되고 있다. 이 단순한 직립보행에 축복이 있기를. <고형렬·시인> 



 7/24(화)-사찰 순례길, 고행의 길을 가다

코스개관: 양정마을-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삼정산 (1210)-문수암-삼불사-도마마을-약수암-실상사
날씨: 비가 온다더니 무더웠다

오늘 산행이 이번 3일간의 산행 중 제일 하이라이트자 힘든 산행이 예견. 오늘 비 온다고 낼 산행과 바꿔서 하면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일은 산행 마지막 날이라 좀 가볍게 하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난 산이슬 뛰러 나가고 들어와 아침밥을 한다. 정말이지 부지런도 하다.
밥 먹고 도시락 싸고 간식 챙겨 길을 떠났다. 오늘 산행은 회귀산행이 안되는지라 택시를 타던지 산이슬이 뛰어 오던지 하기로...

콘도를 나서 실상사 앞 상가에서 양정 들어가는 버스편을 물어봐도 자주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차를 일단 양정마을에 댔다. 헌데 바로 뒤 버스가 들어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실상사에 차를 두고 이 버스를 타고 왔다면 환상일뻔 했다....
차 대고 양정 들어오는 막차 시간 알아보고 버스 종점 뒤쪽으로 가려는데 도솔암 간다고 하니 영원사 가기 전 계곡을 건너야 한다는 현지인의 말씀.
헌데 급경사 마을 길을 올라가는데 아무 표지판도 없다. 밭에 있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쪽이 아니란다... 버스 종점 기사나 주민은 아무 말도 안하더만....


8:30 마천 개인택시 번호도 알 겸 찍은 사진

 도로 되돌아 내려와 계곡을 끼고 가려니 예사롭지 않아보이는 여성 등산객. 배낭은 큰데 가방은 거의 비었고 이 더운날 잠바까지 입었는데 바지는 추리닝 패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모습. 심상치 않다. 우릴보고 어디로 가냐고 하더니 자긴 가는데 까지 간단다. 그럼 함께 가자고 하니 걸음이 느리단다. 우리도 느린데....

영원사 가는길도 이정표도 제대로 안 되어있다. 포장도로 따라가다 전신주에 영원사 도보코스 왼쪽 화살표가 있다. 큰 집 한채가 보이고 곧 오솔길인데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 같다. 초장에 헤맨지라 이 길도 의심스러워 도로 되돌아 내려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진행을 했다. 우리가 버벅대던 사이 걸음 느린 여인네는 따라 붙었다 도로 멀어졌고....

영원사 가기 전 계곡을 건너라는 말에 너무 빨리 계곡을 건너 길이 아닌 길을 조금 치고 올라가다 겨우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길도 계곡 일부는 수해로 무너져 길이 헝클어 졌는데 위로 갈 수록 길이 좋아진다.
문제는 오늘 절 7개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하나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것 같다. 슬슬 불안해 진다.  
 
 
도솔암 가는 머나먼 길

11:30 산행 시작 3시간 만에 드디어 사립문이 나오고 하안거 중이라는 표지판. 헌데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 갈 수는 없는일. 사립문 열고 들어가니 화장실이 보이고 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풀밭 한쪽에 자리잡은 법당.

 
도솔암 마당

 
우리가 물 뜨고 수선을 피우니 스님 한분이 나오셨다.

현재 홀로 계시는데 수행정진도 힘들지만 홀로 지내는것 자체가 쉽지는 않단다. 날씨도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위 사진 건물에서 천왕봉이 바로 보인다는데 오늘은 구름에 가렸다.
아무튼 물도 뜨고 미숫가루도 타 마시고 사진도 찍고 한참 머물렀다.


도솔암에서의 출석부

하산은 생각보다 빨랐다. 내려와 보니 영원사 거의 다 가서 포장도로가 나오고 그 왼쪽 계곡에 타이어 엎어놓은 곳이 도솔암 가는 길이지만 그 어디에도 도솔암 가는 길이라는 안내표지판은 보이지 않는다. 헌데도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온단다.

 
12:45 영원사

영원사 가는길은 도솔암 갈림길에서 5분정도 땡볕의 포장도로를 올라가니 보인다. 절은 큰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절도 선방 분위기다.
이곳 나무그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기운을 차린다. 아직 가야할 절이 5개나 남았다.
이곳에서 영원재로 가면 길이 아주 멀어지고 절 뒷쪽 등산로가 잘 되어 있는데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 상무주암을 가려면 도로 내려가라는 이야기다.
벌금 낼 각오를 하고 이 길을 올라갔다. 헌데 등산로 좋기만 했다.

 
14:00 상무주암 갈림길

금지구역을 벗어나 (!) 상무주암 가는길을 찾았다. 날씨가 너무 덥다. 다들 힘들어 한다. 특히나 내가 제일 힘이 들었다. 얼려온 콩국물을 먹고 힘을 내서 간다. 상무주암 가는 길은 좋았다.
가는길에 겁나는 배낭을 든 한 커플. 어제 오후 4시경 출발해 산에서 1박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어쩐지 장비가 심상치 않더라니...

 
상무주암 가는 길의 멋진 조망에서

 
14;40 상무주암

상무주암은 절에 들어가지 못하게 나무로 막아 놓았다. 참 인심도 사납다. 물은 마실 수 있게 절 밖에 약수터,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상무주암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이 머물다 간 절이라는데 절 인심은 전혀 아닌게 역시나 아쉽다.

 
상무주암 담벼락에 세워진 탑

도로 백해서 삼정봉을 찍고 오기로..
멀지 않다는데 가깝지도 않았다. 삼정봉 먼저 찍고 상무주암으로 올걸...

 


15:10 삼정산 정상에서

삼정산 정상에서 백하지 않고 진행을 하면 약수암으로 갈 수 있나보다. 헌데 그럼 중간의 절 세곳을 들릴 수 없게 된다...
도로 상무주암 지나서 문수암을 찾아 가자~

문수암 가는 길도 멀지는 않았지만 만만하진 않았다. 이 길을 반대로 치고 올라올때 정말 힘이 들긴 들었을것 같다.
15:50 문수암이 보인다. 천인굴이라는 천연굴이 보이고 약수물이 나온다. 절은 조용하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데 스님이 나오셨다. 사람 잘 사귀는 여산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오미자 차 한잔씩 주신다.

 
문수암의 도봉 스님과...

헌데 다 좋으신데 말씀이 조금 길다. 일절만 하시면 더 좋았을 텐데...
그나마 오늘 둘러본 절 가운데 그중 스님다운 분이었다.
이곳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거의 내려갔다 다시 되돌아 올라와 약수암으로 가야 하나보다.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왼쪽 전신주 옆을 끼고 가면 멀지 않게 삼불사를 갈 수 있단다.

 
16;25 삼불사

두 남자는 한참만에 나타났다. 삼불사는 개가 �어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문 닫아걸은 절, 개 있는 절... 정말이지 불친절한 지리산 자락의 사찰이다.
비구니 스님이 나와 보신다. 약수암 가는 길을 물어보니 마을로 거의 다 내려가야 한단다.
이곳에서 미숫가루 한잔 더 타 마시고 과일 통조림도 먹고 기운을 차린다.


삼불사 내려오는 이끼 낀 정겨운 돌 계단

삼불사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발목이 꺾인다. 나도 모르게 주저 앉으니 오늘은 너무 약한 모습이란다. 헌데 정말이지 힘이 많이 들었다.


17:00 문수암, 삼불사 갈림길.

문수암에서 계단길로 내려왔다면 여기까지 내려와 다시 삼불사를 올라갈 뻔 하였다. 휴~ 도봉스님이 새삼 고맙다.
약수암을 찾아 마을로 내려가는데 으리으리한 통나무집이 보인다. 길을 물어보느라 소리를 치니 주인이 내다본다. 뭔 집이 이리 좋으냐고 하니 살림집이라고 한다...
흐미, 기죽어 버려...
도마마을까지 내려와 버렸다. 약수암 가는 길을 물어보아도 잘 모른단다. 그냥 포기하고 봐서 약수암은 내일 아침에 들러보기로 했다.
헌데 나무천사가 아무래도 포기가 안되는지 마을에 사람도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둘러보고 물어봐서 겨우 약수암 가는 길을 알아냈다. 여기서 20분만 가면 된단다. 그러면 포기를 할 수 없지...
그새 여산은 마을로 내려가 버렸다. 겨우 통화가 되 도로 올라 오라고 했다.

 
18;00 마을 사잇길로 해서 뒷산을 올라서니 약수암 가는 길이 나온다..

한 집에서 젊은 사람 몇몇이 보이는데 부산에서 왔다는데 동네 사람한테 약수암 가는 길을 물어도 모른다고 했단다. 아무튼 마을 뒷산 산길로 접어드니 다시 보이는 표지기. 산나물 표지기를 쫓아가니 약수암 뒷문이 보였다.
뒷문에서 좌측 능선을 끼고 올라가면 삼정산 정상으로 바로 붙는 길이 나온다.

 
약수암. 여긴 개를 풀어놓아 그나마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대숲에 둘러싸인 약수암. 헌데 개를 풀어놓아 들어갈 수가 없다. 대숲을 뺑 돌아가니 정문이 나오는데 물도 마셔 보지도 못한게 아쉽다.
스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염불 소리만 들리고...

 
18:40 약수암

약수암 옆 상무주암, 삼불사 가는 길표지.
헌데 얼마나 먼데 저렇게 화살표 하나면 장땡인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생각없이 임도를 걷다보니 이 길이 아닌것 같단다. 약수암에서 실상사 가는 길이 아주 아름답다고 책에 나와 있단다. 절 입구에서 숲으로 가는 길 표지기를 본것 같다. 그래서 또 되돌아서 숲길로 하산을 하는데 임도보다는 낫지만 아름다운 길은 아니었다. 답답하고 막힌 숲길이었다. 군데군데 비 때문에 길도 많이 망가져 있었다.


19:15 드디어 실상사 옆 논길로 내려서다..

거의 11시간이 걸렸다. 양정가는 막차는 진작에 떠났고 산행이 힘들어 뛰어 가 차 가져오란 말을 못하겠다.
택시를 부르니 만원이면 간단다. 나무천사 차 회수하러 갔고 우린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힘든 산행의 무사완주를 기뻐했다. 다 안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찜찜한 구석은 남아 있을뻔 했다.
오늘 무사산행을 축하하는 하산주와 산이슬표 갈치조림으로 거하게 저녁을 먹고 기분좋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다녀와 다시 책을 보니 처음 도전에 7개 절을 다 보는건 무리한 계획이란다.
쉽지않은 코스를 무사히 완주했다. 이덕 저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