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3총사 첫 눈밟기 산행 (북한산, 12/10) 폭설 -류근(1966~ )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2.11
산정 쎈언니들 북한산 가기 (11/13) 붉은 난을 치다 - 배옥주(1962~) 칼바람이 난을 치네 바람의 모필이 능선을 일으키네 둥근 달집 속으로 날개를 태우며 불새들이 날아가네 묵향을 물고 가는 수천의 부리 마지막 한 획까지 서늘한 화염을 휘갈기네 붉은 발목 자르고 달아나는 억새 절명의 숨소리로 불의 낙관을 찍네 벼..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1.13
영등삼총사 의상능선 맛보기 (북한산, 11/12) 패랭이꽃 - 이승희(1965~ ) 착한 사람들은 저렇게 꽃잎마다 살림을 차리고 살지, 호미를 걸어두고, 마당 한켠에 흙 묻은 삽자루 세워두고, 새끼를 꼬듯 여문 자식들 낳아 산에 주고, 들에 주고, 한 하늘을 이루어 간다지. 저이들을 봐, 꽃잎들의 몸을 열고 닫는 싸리문 사이로 샘물 같은 웃음..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1.12
공주와 무수리의 칼바위 버벅기 (북한산, 10/29) 세월은 가네 - 기타하라 하쿠슈(1885~1942) 세월은 가네. 빨간 증기선의 뱃머리 지나가듯, 곡물 창고 위에 저녁놀 달아오르고 검은 고양이 귀울림 소리 어여삐 들리듯, 세월은 가네. 어느덧, 부드러운 그늘 드리우며 지나가네. 세월은 가네. 빨간 증기선의 뱃머리 지나가듯. 시간은 홀로 세계..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0.29
미녀3총사 단풍에 물들다 (북한산 숨은벽, 10/22) 모닥불 - 안영희(1943~) 아무도 혼자서는 불탈 수 없네 기둥이었거나 서까래 지친 몸 받아 달래준 의자 비바람 속에 유기되고 발길에 채이다 온 못자국 투성이, 헌 몸일지라도 주검이 뚜껑 내리친 결빙의 등판에서도 불탈 수 있네 바닥을 다 바쳐 춤출 수 있네 목 아래 감금된 생애의 짐승 울..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0.23
미녀삼총사 관악산 가기 (10/3) 법고 - 안원찬(1953~ ) 천오백 년 전 화엄사에 끌려왔다는 암소와 수소 한 울음이 한 울음을 껴안고 운다 새 아침과 헌 오후 두 차례 매 맞으며 운다 죽어서 법고(法鼓)의 양면이 된 암소와 수소가 1500년이 넘도록 중생들에게 긴 “울음”을 던지고 있다. 소들이 죽어 북이 되고, 북이 울려 수..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10.03
모락-백운산 가기 (9/25) 늙은 꽃 - 문정희(1947~)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09.25
영등회 관악산 둘레길 가기 (9/17) 아버지의 이 - 강경호(1958~) 뿌리 드러낸 고목처럼 하나 남은 아버지의 이, 우리 가족이 씹지 못할 것 씹어주고 호두알처럼 딱딱한 생 씹어 삼키기도 했던 썩은 이 하나가 아직도 씹을 무엇이 있는지 정신을 놓아버린 채 든 잠 속에서도 쓸쓸하게 버티고 있는가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09.17
몸보신 산행 (청계산, 9/11) 배꼽 - 박성우(1971~ ) 살구꽃 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 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 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 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09.11
정맥대신 모락산 (9/4) 이중섭네 마당의 천남성 - 박몽구(1956~ ) 섶섬이 보이는 이중섭네 사글세방 마당에서 저녁놀 데친 사괏빛으로 타는 초겨울 바다를 본다 는개 질금질금 내리는 속에 불꽃처럼 핀 천남성 몇 송이 중섭네 가족이 긴 겨울밤을 넘기는 것을 지키고 있다. (…) 빈처를 미군 귀환병 배에 실어 보낸 .. 산행기/2016산행일기 201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