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받으세요~ ‘버리긴 아깝고’-박철(1960~ )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2.23
북어와 생태 (송이회 송년모임, 12/17) ‘황태’ - 박기동(1953~ ) 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 얼마나 더 내 몸을 비워야 할까, 내 고향은 늘 푸른 동해 그리워 마지못해 내설악 얼음물에도 다시 몸을 담근다. 그리워 마지못해 내설악 칼바람에도 다시 내 몸을 늘인다. 이번 생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더 내 몸을 비워야 할까, 내설악 동장군 칼바람에..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2.18
답사는 힘들다? (북촌 답사기, 12/15) '소행성을 지나는 늙은 선로공’-황병승(1970~ )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오후 빛 바랜 작업복 차림의 한 늙은 선로공이 보수를 마치고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앙상한 그의 어깨 너머로 끝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이어진 은빛 선로 그러나 언제였던가, 아득한 저 멀리로 화살표..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2.17
손등이 닮은 형제들 (11/7) ‘삶’-김달진(1907~1989) 등 뒤의 무한한 어둠의 시간 눈앞의 무한한 어둠의 시간 그 중간의 한 토막 이것이 나의 삶이다 불을 붙이자 무한한 어둠 속에 나의 삶으로 빛을 밝히자 금강산에서 명상도 하고 동양정신 여러 경전 두루 섭렵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어둠 무한 시간, 앞뒤 꽉 막힌 체증 뚫을 수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1.09
친구 덕에 멋진 공연을 보다 (10/29) ‘견딜 수 없네’-정현종(1939~ )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31
귀한 씨앗 이야기 (10/9) '구절초 시편’-박기섭(1954∼ )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09
여산 사진으로 다시 본 제천 프로젝트 (9/25~27) ‘들꽃 한 송이에도’-전동균(1962~) 떠나가는 것들을 위하여 저녁 들판에는 흰 연기 자욱하게 피어 오르니 누군가 낯선 마을을 지나가며 문득, 밥 타는 냄새를 맡고 걸음을 멈춘 채 오랫동안 고개 숙이리라 길 가에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마지막 햇살 안고 저물어가는 들녘,..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07
우이령 넘어 친구 만나러 가기 (9/21) ‘나 역시 미국을 노래한다’ -랭스턴 휴스(1902~1967) 나는 흑인 형제. 손님이 올 때, 그들은 나를 부엌에서 먹어라 내쫓는다. 그러나 난 웃고, 잘 먹고, 튼튼하게 자란다. 내일이면, 난 반듯이 식탁에 앉을 것이다. 손님이 와도, 아무도 감히 내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부엌에나 가서 먹어라”고, 그때는..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9.24
집들이 패키지 산행을 염두에 두었으나.. (9/12) '내가 언제’- 이시영(1949~ )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주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 광원(曠原)을 거쳐서 내게 달려온 고독한 바람..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9.14
애로사항 (8/26) ‘눈물 부처’-서정춘(1941~ )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 있네 뜬금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날아드는 시. 짧지만 꽝꽝 울려 내 가슴 한참 멍하게 하는 시. 이런 시 위해 시인은 평생 가난하게 시 쓰며 숨어..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