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모 송년회 (12/11) 백화白樺 - 백석(1912~1996)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모든 것이 .. 산 이외.../2012 일기 2012.12.13
결혼식 (12/8) 자식 - 김환영(1959~ ) 오뎅 파는 아줌마가 놀러 와서는,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래요 그래서 에미 애비 얼굴만 보면 맨날 맨날 돈 달라 돈 달라 하는 거래요 이야기를 듣던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자식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는 아줌마는 자식 아닌가 봬? 어디 보자 배꼽이 있나, 없.. 산 이외.../2012 일기 2012.12.10
한산 송년모임 (11/16) 생강나무 - 정우영(1960~ ) 마흔여섯 해 걸어다닌 나보다 한곳에 서 있는 저 여린 생강나무가 훨씬 더 많은 지구의 기억을 시간의 그늘 곳곳에 켜켜이 새겨둔다. 홀연 어느날 내 길 끊기듯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것들 모두 자취 사라져도 생강나무는 노란 털눈 뜨고 여전히 느린 시간 걷고 있.. 산 이외.../2012 일기 2012.11.19
순한공주 명퇴 모임 (11/15)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1972~ )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 치의 방과 한 달 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 산 이외.../2012 일기 2012.11.19
생일 파리와 음악회 (9.25) ‘가을밤’-정두수(1937~ ) 1. 달빛마저 싱그러운 들길을 혼자 가면 나락 단 묶음마다 흐르는 고운 달빛 오늘처럼 오롯이 행복한 푸른 밤엔 호수 깊이 파묻힌 파묻힌 저 별들을 조리로 그대 함께 건지고 싶어라 2. 마른 잎이 떨어지는 가을 길 혼자 가면 등불이 켜져 있는 마을엔 푸른 달빛 .. 산 이외.../2012 일기 2012.09.29
심판강습 보수교육 (9/1~2) 난처한 늦둥이 - 김영무(1944~2001) 새벽 아득한 잠결에 누군가 얼굴을 더듬는다 아내의 손길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고 눈썹을 문질러보고 오른쪽 눈두덩 아래 검버섯도 쓸어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인다 아내의 손길이 더듬는 것 스물다섯 해 우리들이 함께한 이 세상 소풍 이야기.. 산 이외.../2012 일기 2012.09.05
비내리던 날 (8/30) 퇴원 - 김민서 (1959~ ) 콘크리트 숲의 혈관에 링거 줄 꽂은 수양버드나무 푸른 피를 수혈한다 햇빛의 방사선과를 다녀온 허리 삐끗한 민들레 빛의 오염으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하다 중환자실을 힘겹게 벗어난 환자들 색색인 시간의 회복실 봄의 계단에 경솔한 엉덩이로 종종거리며 햇살 .. 산 이외.../2012 일기 2012.08.30
춘천 샘밭약국 (8/13) ‘숯불의 시’-김신용(1945~ ) 숯불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로 몇 알의 감자라도 익힌다면 사그라져 남는 재도 따뜻하리라,고 생각하는 눈빛 같다.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몇 줌의 감자를 남겨두는 경자(耕者)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 묻힌 것에게 체온 다.. 산 이외.../2012 일기 2012.08.27
아버지 생신하기 (8/4) 사모곡 - 김종해(1941~ )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는 뵐 때마다 내게 누구냐.. 산 이외.../2012 일기 2012.08.14
철사모 버스데리 파리 (7/13) 어느 해거름 - 진이정(1959~1993)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여섯 살엔 무얼 했을까. 일할 힘도 공부할 힘도 없어 놀았을 것이다. 노는 것처럼 놀았을 것이다. 여섯 살은 텅 빈 나이, 말은 배웠으나 글.. 산 이외.../2012 일기 2012.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