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11/14) 서릿발 -송종찬(1966~) 담배공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담배를 끊으시려 은단을 자주 드셨다 붉은 마리화나를 피우던 나무들이 금단현상인 듯 잎을 떨구고 있다 빈 가지에 맺힌 은단 같은 서릿발 세상과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점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한때는 불꽃의 사금파리였을 오.. 산 이외.../2017일기 2017.11.14
추석 연휴 여행기 3 (10/7) 종로일가 -황인찬(1988~)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 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 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 산 이외.../2017일기 2017.10.09
추석 연휴 여행기 2 (10/6) 합일 - 김해자(1961~ ) 거기, 밖이 무너지고 여기, 안으로 삼켜져 눈 감는 음절들 거기까지 너였다, 여기까지 나였다, 경계가 차츰 무뎌지고 무너지다 문득 모든 말들이 끊긴다 하지 못한 말, 이미 한 말, 들이키고서야 합쳐지는 입과 입 여기서부터 검은 숲, 침묵이 범람한다 말하면서 동시.. 산 이외.../2017일기 2017.10.09
추석 연휴 여행기1 (10/5) 이런 낭패 -도광의(1941~ )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어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 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시인은 내 고등.. 산 이외.../2017일기 2017.10.09
테마있는 남산 타워 생일 파리 (4/29) 화씨 - 이능표(1959~ ) 발바닥이 따끔해서 살펴보니 채송화 씨앗이다. 어째서 이런 것이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것일까? 가엾기도 하고 요단강 건너간 매형 생각에 창문을 열고 화단을 살펴보니 모두들 별일 없는 듯. 죽음은 생과 환유적으로 겹쳐 있다. 이 인접성 때문에 죽음의 의미 혹은 .. 산 이외.../2017일기 2017.05.08
철사모와 둘레길 걷기 (3/26) 분갈이 - 전영관(1961~ )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분갈이를 하며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더딘 사랑을 목격한다. 싸움도 분란도 없이 느리게, 천천히, 당신에게 스며드는 .. 산 이외.../2017일기 2017.03.26
부산 여행기 3 (2/10) 편지 - 천상병(1930~93)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 산 이외.../2017일기 2017.02.22
부산 여행기 2 (2/9) 늦은 꽃 - 김종태(1971~ ) 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철쭉도 다 간 시절에 자줏빛 등불 밝힌 자목련이 지키는 이슬 내린 화단에 앉아 내 생애 너무 일찍 사라진 인연과 때로 너무 늦게 찾아온 인연을 생각한다 꽃의 소식에 밖을 향한 눈을 감는다 사.. 산 이외.../2017일기 2017.02.22
철사모 부산 여행기1 (2/8~10) 산문시 1 - 신동엽(1930~69)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 산 이외.../2017일기 2017.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