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솔향기길 걷기 (12/25) 상수리나무- 최동호(1948~) 허옇게 갈라진 혀, 바위 샅 흘러내리는 암반수 깊숙이 들이켜 이 뿌리에 가 닿는 시린 물살 굽이치는 계곡 명주실 길게 펼쳐놓는다 벼랑길 바위 밑에 오글거리며 살던 흰 벌레들 더 깊은 곳으로 기어 들어가고 상수리나무, 열매를 지상에 남겨두고 단풍잎.. 산 이외.../2011 일기 2011.12.26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송년회 (12.22) 겨울 아침 - 박형준(1966~ ) 뜰에 부려놓은 톱밥 속에 어미 개가 강아지를 낳았다 햇살이 터오자 어미 개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다리 힘 없어 비틀거리는 새끼들을 혀로 세웠다 톱밥 속에 어미 개가 강아지를 낳은 겨울 아침 이쪽으로 쓰러지려 하면 저쪽으로 핥는 어미 개의 등허.. 산 이외.../2011 일기 2011.12.23
칼봉산 휴양림에서 1박2일을 찍다 (11/25~26) 들국화/곽재구 (1954~)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찰스 다윈도 지구 상에 꽃 피는 식물이 갑자기 나타난 과정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태곳적 침묵을 깨뜨리고 불현듯 솟아오른 꽃의 탄생.. 산 이외.../2011 일기 2011.11.30
평창 나들이 (대미산, 11/12~13) 나무와 하늘/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931~) 빗속에서 소요하던 한 그루의 나무, 우리를 지나쳐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과수원의 찌르레기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갈무리해야 한다. 빗줄기 잦아들자 나무도 걸음을 멈춘다. 맑은 밤 깊은 적막 속의 천지에 눈꽃 피어.. 산 이외.../2011 일기 2011.11.18
10월의 어느 멋진 날들.. 시계 밥 줘라 - 유안진(1941 ~ ) 새 아가, 대청마루 시계에 밥 줘라 예 아바임 ! 숭늉 대접을 올립니다 아바임 오냐, 시계 밥 줬냐? 예 아바임 아까 전에 진지상 올렸는데, 아직 수저도 아니 드셨사와요 이런 시절 이런 댁의 새아기가 되어봤으면 아니 아니 오히려 시아비가 되었으면. .. 산 이외.../2011 일기 2011.10.30
교육감배 인공암벽대회 (10/15) 바위 - 이영도(1916~76)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귀먹고 눈 먼 너는 있는 줄도 모르는가 파도는 뜯고 깎아도 한번 놓인 그대로 … 봄 신명 지핀 들녘 지나 터벅터벅 바닷가로 나아갔다. 눈 들어 바라보니 하늘과 바다가 환한 햇살로 만나 환장하게 자글거리는 수평선. 그 햇살 받.. 산 이외.../2011 일기 2011.10.20
10/13 '아니다’의 주정(酒酊) - 신동문(1927~1993) 아아 난 취했다 명동에서 취했다 종로에서 취했다 취했다 아아 그러나 이런 것이 아니다 세상은 참말로 이런 것이 아니다 사상?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다 철학?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다 (중략) 싼 술 몇 잔의 주정 속에선 아.. 산 이외.../2011 일기 2011.10.14
10/7 거대한 원피스 - 조말선(1965~ ) 팔을 집어넣고 가슴을 집어넣고 다리를 집어넣고 흉터를 집어넣고 나는 사라진다 종교를 집어넣고 체온을 집어넣고 혈액을 집어넣고 흉기를 집어넣고 나는 사라진다 꿈틀꿈틀이 남는다 울퉁불퉁이 남는다 (중략) 버릇을 집어넣고 습관을 집어넣고 불화를 집어넣으며 원.. 산 이외.../2011 일기 2011.10.10
10/1 한 손 - 복효근 (1962 ~ ) 간도 쓸개도 속도 배알도 다 빼내버린 빈 내 몸에 너를 들이고 또 그렇게 빈 네 몸에 나를 들이고 비로소 둘이 하나가 된 간고등어 한 손 이 시를 읽으면서 혹시 안동 간고등어를 떠올리진 않으셨는지? 그 멍한 눈 뜨고 그러나 둘이 꼭 껴안고 에어컨 바람을 참아내고 있는 간고등.. 산 이외.../2011 일기 2011.10.04
9/24 구절초의 북쪽 - 안도현(1961~ )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 산 이외.../2011 일기 201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