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모와 첫눈 밟기 (11/24) 봄 -정끝별(1964~ ) 불 들어갑니다! 하룻밤이든 하루 낮이든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지는 벚꽃 아래 목침 삼아 베고 누워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예쁠 뿐! 불 들.. 산 이외.../2018일기 2018.11.26
영화 인생 후르츠 (11/14)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1933~1997)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 산 이외.../2018일기 2018.11.15
뉴욕 친구 귀국 모임 (10/27~28) 속수무책 -김경후(1971~ ) 내 인생 단 한 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척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 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만 적혀 있어도 단 한 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시계엔 바.. 산 이외.../2018일기 2018.11.05
선정릉에서 봉은사로 (10/17) 단풍 -박현수(1966~ ) 떨어진 불꽃은 손아귀를 가만히 오므린다 다음에는 하느님이 떨어질 차례란 듯이 단풍나무 아래 수북이 쌓인 붉은 잎들은 닭발 같은데, 시인에게는 그게 불꽃으로 보였나 보다. 자연은 참 많은 은유를 선사해준다. 생명은 뜨거운 것이어서 단풍잎은 떨어져서도 여전히.. 산 이외.../2018일기 2018.10.17
철사모 가을여행 2 (10/9) 심해에 내리는 눈 -이수정(1974~ ) 바다엔,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는데, 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고 하는데, 구만 리 날고 싶은 눈 먼 가오리 햇빛이 닿지 않는 바다 밑에 엎드려 수평선 .. 산 이외.../2018일기 2018.10.10
철사모 가을여행1 (10/8~9) 형제간 -유용주(1960~ )겨울 신무산에서 고라니 똥을 만났다 쥐눈이콩처럼 반짝이는 무구한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완벽한 채식만이 저 눈빛을 만들 수 있으리라 쌓인 눈 위에 찍힌 황망한 발자국들…… 똥 누는 시간마저 불안했구나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눈 .. 산 이외.../2018일기 2018.10.10
서울 야간 산책 (9/20) 무지개 -윌리엄 위즈워스(1770~1850)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릴 적에도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네. 늙어서도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에 이어지기를 무지개는 하늘의 다리이자 문.. 산 이외.../2018일기 2018.09.20
영등 3총사 (9/7) 길 -허영자(1938~ )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다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다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시련은 복일까. 지친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목에 깁스라도 한 듯 지나온 길을 차분히 돌아보지 못한다. 지금 가시밭길에, ‘돌팍길’에 서.. 산 이외.../2018일기 2018.09.09
외씨버선길 걷기 (봉화연결길~치유의 길, 8/9) 월식 -강연호(1962~ )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 산 이외.../2018일기 2018.08.16
봉화 외씨버선길 걷기 (8코스-보부상길, 8/8~10) 여백 -박철(1960~ ) 어둠을 밟으며 책장이나 넘기다가 되잖은 버릇대로 여백에 몇 자 적다가 아 시립도서관서 빌려온 책 아닌가 화들짝 놀라니 해가 떴다 식어가는 어깨 너머 창밖을 펼치는데 아 내가 그제 헌책방서 산 거지 두 번 놀라자 속이 쓰렸다 어느덧, 내 사랑 이리 되었구나 읽던 책.. 산 이외.../2018일기 201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