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23 산행기 83

23년 마지막날 산행으로 (웅산-시루봉, 12/31)

김은식 손톱은 몸에서 깍여 나갈 때 까르르 웃는다 저만치 튕겨 나딩굴면서도 하나가 둘로 분리되는 아픔을 웃음으로 채우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얼굴 지친 일상을 지탱하는 뼈대에서 자라나 고달픈 시간을 마냥 뛰어노는 세상에서 가장 맑은 생의 웃음 영혼이 괴로울 때 육신이 힘들 때도 손톱은 웃기 위해 자란다 초생달이 힘겨운 일상을 만삭으로 품어 보름달로 차오를 때 나는, 돌아앉아 손톱을 깍는다 쪼개지고 마멸된 지난 시간과의 이별 털끝 하나, 고통 없이 떠나는 연습 손톱을 깎으며 나는 나와의 이별연습을 한다 코스개관: 안민고개-웅산-시루봉-수리봉-천자봉-대발령 (아침 비가 내렸지만 산행 할때는 그쳤고 해까지 나던 춥지 않았지만 바람불던 날, 당나귀 5명) 1월 첫주 산행이 회장님 해외여행으로 12/31에 하..

관악산 둘레길 가기 (사당~서울대 입구, 12/23)

신현림 겨울은 외투주머니에서 울고 추운 손들은 난로 같은 사람을 찾는다 오후의 저무는 해 아래 모두 깡마른 기타처럼 만지면 날카롭게 울부짖을 듯하다 싸구려 운동화처럼 세월이 날아가는데 생활은 변한 게 없고 아무도 날 애타게 부르지 않고 특별한 기억도 없다 어리석은 열망으로 뭉친 얼음덩이처럼 서로 가까워지는 일은 불가능한 듯 침묵의 물살에 떠밀려 가는 것이 강물빛이 변하고 벌써 늙어간다는 것이, 어두워지는 창공에 흰 백지장이 나부낀다 내 장갑을 누군가에게 벗어줄 기쁜 위안이 그립다 희망의 작은 손전등을 들어 내게 오는 자를 위해 길을 비춘다 나는 즐거운 타인이 있으므로 살아가고 삶은 그들에게 벗어나려 할 때조차 그들에게 속하려는 끝없는 노력이므로 감미로운 고통에 싸여 길을 비춘다 코스개관: 사당역 5번 출..

완전체가 되어 송년산행 하기 (진해 장복산, 12/17)

신현림 너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도 아무 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도 괜찮아 옷에서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알아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 것도 아닌 슬픔이 더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코스개관: 장복산 조각공원 (편백숲 주차장)-삼밀사 입구-장복산-덕주봉-안민고개 (수도권 제일 추운..

홍천 가리산 가기 (12/2)

정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코스개관: 가리산 휴양림-무쇠말재-가리산-새득이봉-가삽고개-등골산-휴양림 (오전엔 눈발 날리고 흐렸다 개었다 한 바람 불고 은근 쌀쌀한 날씨, 넷) 일욜 하와이 가는지라 이번 산행은 토욜 하자고 하니 다들 오케 한줄 알았는데 막상 산행 공지가 뜨니 작가님이 선약이 있다고 결석계를 내셨다. 그럼 내가 죄송하니 원래대로 일욜 가시라고 하니 오늘 산행은 번개로 일욜은 월례 산행으로 관악산을 간다고. 더 미안하다. 아무튼 6:50 총무님 차를 타고 가는데 신천씨도 역시나 못 와 셋이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회장님과 만나 총무님 차로 이동. 가리산에 가니 썰렁하니 휴양림을 리모델링중인지 현재 운영을 안..

용마-아차산 가기 (11/27)

함진원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가슴 서늘한 미루나무, 그렁그렁 눈물 머금은 초승달, 엄마 잃은 괭이갈매기, 또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눈 맞고 서 있다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물은 물대로 땅은 땅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강은 강대로 내일 기다리는 희망이 문 열고 있다 코스개관: 용마산역-체육공원-용마정-정상-아차산-광나루역 (셋, 조금 풀린 겨울날) 10시 용마산역에서 만나 오늘은 용마산부터 가기. 여기서 용마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짧고 수월하다. 정상 도착해 간식먹고 아차산으로 하산하니 그 어느때보다 산행이 빨리 끝났다. 닭한마리에서 닭볶음탕을 먹었고 근처 찻집에서 차까지 마시고 2차 약속 장소로 출발.

둘레길 배지도 받고 오봉도 가고 (도봉산, 11/26)

고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

아차산 시루봉 가기 (11/22)

문무학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코스개관: 광나루역1번 출구-아차산 정상-깔딱고개-구리둘레길1코스-시루봉-한다리마을 (춥지 않았고 하늘은 좀 뿌옇날, 셋) 수욜 양평쪽 산행을 했는데 산나리가 겨울 동안 오마니와 함께 지내고자 구리로 만두 데리고 입성해 양평 집에는 이샘 혼자 지낸다고. 지난주는 내가 배신 때려 산에 못 갔고 오늘 산나리 오마니 노치원 가 계시는 동안 만나야 해서 아차산으로. 10시 이샘과 산나리 셋 만나 아차산 올라가는데 오랫만에 온 산나리는 정비된 아차산을 오랫만에 만나나보다. 오늘은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니 전에 못 받은 배지가 추가되었고 이 길도 나름 괜찮다. 평일인데도 날이 푹해서인지 생각..

가을~봄 하루에 다 체험한 날 (장성 백암산, 11/19)

한 사람이 늙으려면 팀이 필요하다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6개월 전부터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비뚤어진 어깨를 바로잡고 ‘꺾이지 않는 허리’를 갖자는 연초의 다짐을 실행한 것. 어제는 단체 강습에서 상체운동을 하다가 어깨가 아파 포기했더니 끝나고 강사가 와서 말했다. “어깨가 안 좋으시면 병원 가서 치료받고 운동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맞는 말인데 마음이 쫄렸다.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유연한 몸으로 난이도 높은 동작을 잘도 소화하는 젊은 수강자들 속에 내가 눈엣가시처럼 보였나? 요새 나 빼고 다 하는 것 같은 달리기를 시작해 볼까 생각하면서 당근마켓의 동네 달리기 모임을 수시로 체크하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늙은 아줌마가 왜 껴’라는 눈길을 받을까 ..

빼빼로 데이에 청계산 가기 (11/11)

이생진 이거야 가을의 꽃이불 바로 이거야 나를 그 위에 눕게 하고 누워서 백운대 넘어가는 구름을 보며 이거야 바로 이거 나는 하루종일 아이가 되어 뒹글뒹글 놀다가 어미가 그리우면 아이처럼 울고 이거야 이거 코스개관: 대공원역 4번 출구-과천매봉-절고개-청계사-학의천병-인덕원역 (둘, 쌀쌀했지만 햇살 좋았던 날) 원래 오늘은 서울둘레길 배지 받으러 창포원에 가기로 한 날인데 넘버4가 못 온다고 했고 최교감네 카페 리모델링 오픈을 한다는데 명화는 금욜 시간이 없어 토욜 올 수 있다고 해 인덕원 가까운 청계산을 가기로 했다. 대공원역에는 우리또래 사람들이 가득하다. 장공주가 전철 타고 오는데 옆에서 경마공원이랑 대공원 중 어디서 사람이 더 많이 내리냐고 하니 비슷하다던가? 대공원이 경로는 공짜냐고 하니 공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