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에 세 산을? (구름산-가학산-서독산, 9/29) '돌아가는 길'- 문정희(1947~ )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 산행기/2006년 2006.09.30
친구의 백두대간 완주 축하산행(큰재~신의터재, 3/25) '있는 힘을 다해'- 이상국(1946~ )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당신만 고통받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 산행기/2006년 2006.03.26
설악산 흘림골을 가다 (2/16) '문병 가서'- 유안진(1941~ ) 밤비에 씻긴 눈에 새벽별로 뜨지 말고 천둥번개 울고 간 기슭에 산나리 꽃대궁으로 고개 숙여 피지도 말고 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아요 이 모양 초라한 대로 우리 이 세상에서 자주 만나요 앓는 것도 자랑거리 삼아 나이만큼씩 늙어가자요. 시 한 편은 이처럼 우리의 피곤.. 산행기/2006년 2006.02.17
입춘날 zzanghappy와 의상능선을 가다 (삼각산 2/4) ‘의문’ - 유승도(1960∼ ) 마음의 흐름을 따라 숲속 길을 걸었다 작은 날개에 햇살 같은 깃털을 단 새가 나를 보고는 화들짝 나무 사이로 날아간다 깃털이 허공에서 떨어진다 나는 새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돌 하나를 발로 차 산밑으로 굴렸다 각 진 돌에 나무가 맞아 껍질이 찢겼다 이 겨울에 나는 돌.. 산행기/2006년 2006.02.05
오후 모락산 산행 (1/31) '다시 금강에서'- 윤중호(1956~2004)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빈 상엿집 같은, 구슬픈 고향 같은, 옛사람들의 자리만 남아 금강의 잔물결을 키운다 철새들이 버리고 떠난, 빈 둥지 같은 아흔 살의 외할머니 같은. 돌아갈 고향이 있는가. 싸락눈이 쌀알처럼 쏟아지는 고향집 흙마당이 있는가. 골목을 돌 때 눈.. 산행기/2006년 2006.01.31
乙酉年 송년산행 (관악산 1/27) '쌀'- 정일근(1958~ )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 산행기/2006년 2006.01.27
넓고도 깊은 덕유산(1/21,22) ‘님’- 김지하(1941∼ )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 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넉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 산행기/2006년 2006.01.25
친구따라 대간가기(통안재-복성이재 1/15) '반성 100' - 김영승(1959~ )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뭐.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 산행기/2006년 2006.01.16
동계야영을 한라산에서 하다 2(1.10~12)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 하종오(1954~ )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새가 날아와 씨째로 낱낱 쪼아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벌레가 기어와 잎째로 슬슬 갉아 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나머지 네 먹을 만큼만 남는다 이런 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는 농사다. 이런 농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사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유일하게 새로운 농사법이다. 다 남에게 주면 나는 뭘 먹느냐고 불평하지 말자. 우리는 그동안 과식을 해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살찐 몸을 보아라. 살찐 몸이 당신이 바라는 궁극의 현실은 아닐 터. 이제 새와 벌레를 당신 앞에 앞세워 공양하라. 나는 이 값진 당부를 나에게 먼저 하려 하오니, 이것만은 내가 독식하더라.. 산행기/2006년 200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