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 특별전 보기 (12/26) ‘조용한 일’-김사인 (1955~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는 없는 내 곁에서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긴 불행과 짧은 행복이 갈마드는 것이 삶이다. 못난 사람에게든 잘난 사람에게든 마찬가지다. 그래..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12.26
2008을 보내며.. ‘낙조’- 신종호(1964∼ ) 한 꺼풀 무너져도 좋을 세상이다. 말없이 바라보는 노을 진 한강 보기 좋게 넘어지는 사람의 그림자 철교 밑으로 떠가는 주인 잃은 낡은 구두 한 짝. 삶이여, 흐른다면 모두가 만날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베네치아풍 의상을 입은 남녀 유리인형 2개를 샀다. 곤돌라를 타고 간 곳..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12.24
메리 추석, 웰컴 가을~ 나뭇잎 사이로/ 정호승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모든 적은 한때 친구였다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고요히 칼을 버리고 세상의 거지들은 다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어떻게 눈물이 햇살이 되겠는가 어떻게 상처가 ..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9.11
狂雨病 환자? (8/29) ‘소나기’ -나희덕(1966~ ) 노인도 아기도 벌거벗었다 빗줄기만 걸쳐 입은 노인의 다리가 마른 수숫대처럼 여위었다 늘어진 성기, 주름진 사타구니 아래로 비는 힘없이 흘러내리고 오래 젖을 빨지 못한 아기의 눈이 흙비에 젖어 있다 옥수수가 익으려면 아직 멀었다 연길 들판, 소나기 속으로 늙은 자연..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8.30
장비 패킹, 그리고 생신 (7/25) ‘무인도’ - 나태주(1945~ ) 바다에 가서 며칠 섬을 보고 왔더니 아내가 섬이 되어 있었다 섬 가운데서도 무인도가 되어 있었다 후회를 적게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은 바 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는 결혼하면 죄가 늘어나고 아내를 괴롭히면 하느님이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시다..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7.25
비때문에 풍납콘도에서 놀다 (7/24) ‘빗방울 하나가·1’ -강은교(1945~ ) 빗방울 하나가 창틀에 터억 걸터앉는다 잠시 나의 집이 휘청-한다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깊었습니다. 쓰라린 것들이 후회들과 모여 비명을 지르고 여름을 넘어가는 나뭇잎들은 온몸의 피를 모아 허공에 등불을 겁니다. 바다에도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다..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7.24
무주를 가다 (7/18)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1957~ )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7.19
드림팀 수도권에서 모이다 (7/11) ‘내 가슴에’ - 정호승(1950~ )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나를 비난하고 깊은 상처..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7.14
예당에서 (6/30) ‘등잔’ - 신달자(1943~ )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7.02
다다익선? ‘라일락’ - 고진하(1953~ ) 돋을볕에 기대어 뾰족뾰족 연둣빛 잎들을 토해 내는 너의 자태가 수줍어 보인다. 무수히 돋는 잎새마다 킁, 킁, 코를 대보다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 천수관음보살을 떠올렸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지극한 보살이 있어 천 개의 눈과 손마다 향낭(香囊)을 움켜.. 산 이외.../2008년 일기장 2008.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