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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한산의 봉우리... 산성주능선의 봉우리 (12)

산무수리 2006. 7. 5. 08:20

〔산성주능선의 봉우리〕(12)



1. 개요


산성주능선은 만경대에서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을 거쳐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북한산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능선이다.

원효능선, 의상능선과 더불어 북한산성의 한축을 이루는 능선으로 능선상에는 성벽 및 성문이 잘 남아있다. 성의 몸체를 이루는 성체는 축성 당시의 모습이나 성가퀴는 최근 복원된 것이다.

성문으로는 14개 성문 중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등 5개가 있으며, 3개의 장대 중 동장대가 있다.

주능선의 동쪽 사면은 가파른 반면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여 북한산성의 각종 시설물들이 존재한다.

산성주능선에서 파생된 능선은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형제봉능선, 사자봉능선 등이 있다. 


문헌상에 나타나는 봉우리는 약13개로 상당히 많지만 산행시에는 크게 많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는 등산로가 날등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고 만경대에서 용암문을 거쳐 동장대 직전까지 능선 사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선에는 성벽이 계속 이어져 봉우리로서의 특성보다는 성벽이 지나가는 한부분으로 인식을 하여 봉우리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현재 알려지고 불리는 봉우리 이름은 만경봉(만경대), 용암봉, 시단봉, 보현봉 등 4개에 불과하며 나머지 봉우리는 그 위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만경봉(만경대), 보현봉 등 크고 유명한 봉우리는 북한지 이외에도 기록이 가끔 등장하지만 나머지 봉우리들은 거의 북한지가 유일한 옛 문헌이라 할 수 있어 봉우리 위치를 파악하는데 상당히 애로가 있다.

그래도 각 봉우리를 설명하는 내용을 근거로 상대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직 상당한 부분 앞으로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봉우리가 많아, 여기서는 정확한 위치의 파악 여부를 떠나 현재까지 알고 있거나 향후 검토할 부분을 정리하는 정도로만 서술한다.


 

2. 만경봉


■ 삼각산의 유래가 된 붕우리에서 설명



2. 용암봉(龍巖峯) (38)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만경대 남쪽에 있다. 

■ 申耆의 書啓

-동장대와 용암봉 사이에 암문이 있고


나. 해석

■ 동장대와 용암봉 사이의 암문은 현재 용암문이라 불리는 용암봉암문이 유일하다. 따라서 용암문 북쪽의 봉우리는 용암봉을 의미한다. 용암봉은 만경대 암릉 중 병풍바위라고도 불리는 바위봉이라 추정된다. 

(노적봉에서 바라보는 용암봉)



3. 일출봉(日出峯) (39)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용암봉 앞에 있다. 

■ 북한지(北漢誌)의 사찰(寺刹)편

-용암사는 일출봉 아래에 있다.

 

나. 해석

■ 용암봉 앞이라는 표현에서 방위를 표시하지 않고 앞이란 쓴 뜻이 애매하지만, 동일선상에 있는 능선에서의 순서를 의미한다고 판단된다. 북한지 주능선의 설명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설명한 점을 비추어 북쪽에서 바라보는 앞은 남쪽이다.

■ 용암사는 현재 북한산대피소에 있었던 사찰로 그 뒤(동쪽)에 있는 봉우리를 일출봉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용암사에는 목조건물로 만들어진 북한산성 대피소 옆에 무너진 용암사지 석탑이 있어 그 흔적을 전한다.


다. 내용

■ 용암봉은 등산로가 북한산성대피소로 이어져 비껴지나가는 봉우리이다. 용암문 바로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반룡봉에서 바라보는 일출봉)



4. 월출봉(月出峯) (40)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일출봉과 나란히 대치하고 있다.  


나. 해석

■ 나란히 대치한다는 표현은 같은 능선상의 앞, 뒤 개념(남북 개념)은 아닌 듯하며 동서로 대치한다는 표현으로 해석이 된다.

■ 목조건물인 북한산성 대피소가 있는 자리 또한 노적봉 등에서 바라보면 봉우리로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검토가 되어야 할 사항이다. 정확인 위치는 미확인



5. 기룡봉(紀龍峯) (41)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월출봉 앞에 있다.   


나. 해석

■ 북한산성 대피소에서 동장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구릉 같은 봉우리가 나온다. 이 구릉을 봉우리로 가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 판단을 유보한다. 현재 미확인. 



6 반룡봉(盤龍峯) (42)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기룡봉 옆에 있다.

-시단봉은 반룡봉 남쪽에 있다.

  

나. 해석

■ 기룡봉의 위치가 확인이 안 되어 기룡봉을 기준으로 한 해석은 어렵지만, 시단봉의 위치가 분명한 만큼 시단봉의 위치를 참고하여 추정이 가능하다. 

■ 시단봉은 동장대가 위치한 봉우리로, 반룡봉은 시단봉의 북쪽 봉우리임을 알 수가 있으며, 이는 동장대에서 북한산성대피소 방향으로 가다가 성벽 밖에 위치한 봉우리를 의미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 반룡봉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진달래능선에서 대동문으로 올라가다 동장대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로 추정이 가능하다.


다. 내용

■ 반룡봉은 등산로에서 비껴 나 있는 봉우리이다. 반룡봉으로 가려면 동장대를 지난 이후 사면길을 따르지 말고 성벽을 따라 계속 진행하여야 한다. 전망이 좋고 쉬어가기 좋은 암봉으로 봉우리에 서면 동장대와 용암봉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반룡봉으로 오르는 길)



7. 시단봉(柴丹峯) (43)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반룡봉 남쪽에 있다. 그 위에 동장대가 있고, 아래에 어수재가 있다.

■ 북한산성 금위영이건기비

-시단봉에는 장대를 만들다.  


나. 해석

■ 동장대의 위치가 명확한 만큼 동장대가 있는 봉우리로 해석이 가능


다. 내용

■ 동장대는 북한산성 3대 장대 중 외부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장대로 그 장대가 위치한 시단봉은 산성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중요한 봉우리이다.

■ 북한산성의 축성을 명령한 숙종은 북한산성이 완공된 후 동장대 등 북한산성을 시찰하며 그 기쁨을 노래한 어제시를 남겼다.


間關十里到行宮 崒崒柴丹卽在東      간관십리도행궁 줄줄시단즉재동

露積峯頭雲未捲 白雲臺上霧猶朦      노적봉두운미권 백운대상무유몽

登彼東臺若上天 千峯削立接雲烟      등피동대약상천 천봉삭립접운연

寇賦非徒不敢近 猿猱亦必愁攀緣      구부비도불감근 원노역필수반연 


험한 길 10리를 걸어 행궁에 이르니

험한 시단봉(동장대가 있는 봉우리)이 동쪽 가까이 있네

노적봉 머리위의 구름은 아직 걷히지 아니하고

백운대 위에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네.


저 동대(동장대)에 오르니 하늘 위에 오른 듯하고

일천 봉우리 깍아지른 듯 서서 구름에 접해있네.

도둑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긴 팔 원숭이도 기어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

(시단봉으로 오르는 길)



8. 덕장봉(德蔣峯) (44)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시단봉 남쪽에 있다.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 봉에 읍하고 있는 것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 申耆의 書啓

-석가봉에 못 미쳐(보현봉에서 백운대 방향으로 설명) 암문 한곳이 있고, 석가봉의 동쪽이 대동문입니다. 여기서 또 솟아올라 동장대가 되고...   


나. 해석

■ 석가봉에 대한 설명이 덕장봉과 복덕봉 아래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덕장봉과 복덕봉은 동장대와 대동문 사이의 봉우리로 추정할 수 있다.

■ 문헌상으로는 2개의 봉우리이지만 실제 능선상 봉우리는 한 개뿐으로 덕장봉에 대한 설명이 좀 더 구체적인 점을 감안하면 덕장봉은 능선상에, 나머지 한개의 봉우리는 능선을 살짝 벗어난 봉우리라 생각됨

■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다 돌아가면서 이 봉에 읍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보면 대동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장대 방향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현재 성벽이 울타리를 치고 있는 봉우리, 제단이 있음)로 판단이 됨

(최근에 제단이 설치된 덕장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



9. 복덕봉(福德峯) (45)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덕장봉 남쪽에 있다. 그 형세와 기상이 덕장봉과 비슷하기 때문에 또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나. 해석

■ 일단 월출봉과 기룡봉 개념과 같이 능선에서 살쩍 벗어나 봉우리로 추정되며, 이런 봉우리들은 얼핏 봉우리로서의 인식을 하기 힘든 경우가 있음

■ 현재 상황에서는 위치를 판단하기 어려움



9. 석가봉(釋迦峯) (46)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동문 밖 청수동 위쪽에 있다.

■ 申耆의 書啓

-석가봉에 못 미쳐(보현봉에서 백운대 방향으로 설명) 암문 한곳이 있고, 석가봉의 동쪽이 대동문입니다. 여기서 또 솟아올라 동장대가 되고... 

■ 이덕형의 중흥산성 형세보고서, 1561~1613)

-사문(중흥사)을 지나 동남으로 가다가 길이 셋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동문으로 통하여 왕래하는 길로 성밖의 수도암, 도성암 등의 암자가 있고 그 아래는 우이동이며,

하나는 동남문 석가현으로 통하여 사을한리로 내려가는 길이었으며

하나는 문수봉을 넘어 창의문으로 통하였는데 탕춘대의 앞뜰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도성암의 상령과 석가현, 문수봉은 지름길이 있기는 하나 사면의 산세가 매우 험준하니, 진실로 10여인이 지키게 되면 적의 무리 수만명이 있어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 해석

■ 신기의 서계에 기록된 표현이 석가봉의 위치를 나타낸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 판단됨. 여기에서 암문이란 동암문으로 추정되며, 동암문은 현재의 보국문임. 따라서 석가봉은 보국문과 대동문 사이의 봉우리로 추정이 가능하며, 이 능선상에는 칼바위능선 갈림길 봉우리가 유일하다. 더구나 대동문의 서쪽에 있는 봉우리는 이 봉우리밖에 없다.

■ 다만, 동문(대동문) 밖이라는 「북한지」의 표현은 산성밖에 위치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어 「신기의 서계」와는 상충되는 의미를 갖고 있음

■ 석가봉이란 이름은 석가현이란 고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사을한리는 현재의 수유동 일대로 수유동으로 하산할 수 있는 길은 대동문과 칼바위능선 밖에 없으나, 위 문구를 보면 석가현은 일단 동문(대동문)하고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칼바위능선상의 고개가 아닌가 추정됨.

■ 따라서 석가봉은 칼바위능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며, 봉우리라고 기록할만한 봉우리는 칼바위능선 갈림길 봉우리 또는 칼바위능선 정상봉우리 밖에 없음

■ 현재까지는 칼바위능선과 주능선이 만나는 지점의 봉우리로 추정되지만 석가현의 위치 등에 대한 검토가 더욱 이루어지면 석가봉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븝 부분임.

(칼바위능선 갈림길 봉우리로 석가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

 

 


10. 성덕봉(聖德峯) (47)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석가봉 서쪽에 있다.

  

나. 해석

■ 성덕봉, 화룡봉, 잠룡봉 등 세 개의 봉우리는 설명이 단순하여 그 자체만으로는 석가봉 서쪽, 즉 보국문의 서쪽에 있다는 정도밖에 파악할 수 없음. 다만, 대성문에 대한 언급이 보현봉에서 처음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위 세 개의 봉우리는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의 봉우리 정도로 추정이 가능함.

■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이 중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갈 때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 즉 「주능선 전망안내판」이 있는 바로 위의 봉우리로 추정됨.

(보국문을 내려가며 바라본 성덕봉 추정 봉우리, 좌측 멀리 형제봉이 보인다)



11. 화룡봉(化龍峯) (48)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성덕봉 옆에 있다.

  

나. 해석

■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세 개의 봉우리 중 성덕봉 다음에 위치한 봉우리로 추정



12. 잠룡봉(潛龍峯) (49)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화룡봉의 부근 서쪽에 있다.  


나. 해석

■ 보국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세 개의 봉우리 중 화룡봉 다음에 위치한 봉우리로 추정되며 바로 옆에 대성문이 있다.



13. 보현봉(普賢峯) (형제봉능선상의 봉우리에 포함)


가. 문헌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대성문 밖에 있다.

■ 申耆의 書啓

-대남문 오른쪽은 보현봉이요...

■ 세종실록

-보현봉의 산맥이 곧게 백악으로 들어왔으니 지금의 경복궁이 바로 명당이 되기는 하나

-백악은 삼각산 봉우리에서 내려와 보현봉(普賢峰)이 되고, 보현봉에서 내려와 평평한 언덕 두어 마장이 되었다가 우뚝 솟아 일어난 높은 봉우리가 곧 백악인데, 그 아래에 명당을 이루어 널찍하게 바둑판 같이 되어서 1만 명의 군사가 들어설 만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명당이고, 여기가 곧 명당 앞뒤로의 한복판 되는 땅이며 (중략)

-영의정 황희·예조 판서 신상·유후 김자지·전 대제학 하연·예문 제학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이 보현봉·백악·목멱에 올라 그 내맥의 가지와 줄기와 제생원의 자리를 살펴보온즉, 보현봉으로부터 멀리멀리 내려와서 기운과 정신[情意]이 백악에 이르러 멈추었으니 그것의 맥의 본줄기이오며 (중략)


나. 내용

■ 보현봉은 삼각산 여러 봉우리 중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봉우리로 인식되어 온 봉우리이다. 이는 보현봉의 맥이 도성으로 연결되는 주맥의 역할을 함깨 유사시 능선을 통해 북한산성으로 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 북한지 원문에는 대서문 밖이라 되어 있으나 대성문의 잘못된 표기가 확실함.

■ 백악(현재의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근원은 보현봉임

■ 보현봉이란 명칭은 보현보살에서 나온 것으로 대부분 문수봉과 나란히 하고 있음. 이는 대웅전에서 중앙에 석가여래불,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협시불을 함께 한치하는 모양과 같은 이론임.

■ 보현봉은 형제봉능선과 사자능선의 분기점


출처 : 북한산연가
글쓴이 : san001 원글보기
메모 : 그냥 지나만 다녔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