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동계 지리에 들다 (1/3~5)

산무수리 2009. 1. 8. 08:27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 (1941년생, 1988출간)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히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나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산행일정: 2009.1.3 (토) 22:50 용산역 출발-1.4 (일) 3:30 구례구 도착-성삼재-노고단-반야봉-연하천-벽소령(1박)-세석-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
날씨: 1.4 은 오전 흐리다 오후에 개고 1.5 은 맑다 구름이 많아졌지만 시계는 좋았음. 2일 다 동계 지리 치고는 춥지 않았다. 눈이 부족해 상고대는 구경도 못한게 옥의 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짱해피와 동계 지리에 들기로 해 날짜를 잡았었다. 헌데 휴가 일정이 바뀌어 갈 수 없다고 한다. 나무천사도 크리스마스에 무박으로 다녀온지라 안 간다고 해 결국 셋맛 가기로 했다.
나무천사가 없으니 자연 짐이 늘어난다. 겁나 부식도 한개씩 뺐고 (사과, 쌀, 커피..) 코펠은 여산이 가져온다고 해 그나마 짐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다행이었다.

헌데 저녁 짐을 챙기는데 지퍼에 주머니가 씹혀 움직이질 않는다. 지퍼를 한쪽으로만 내려야 하니 물건을 넣고 꺼내는데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쌀 수도 없고 일단 그냥 가기로 했다.

20시 경 여산의 전화. 뭘 가져가면 되냐고 코펠은 챙겼고 쌀만 본인것 4끼 챙기라고 했다.
헌데 출발시간이 23:50 아니냐고 내가 멜로 그리 보냈다고 한다. 22:50 인데?
하마트면 큰일 날 뻔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철로 가고 있는데 나무천사 전화. 설악 공룡을 친구와 둘이 타고 하산했는데 같이 간 친구가 너무 좋아한다고 대포항에서 회 먹고 있다더니 버스타고 오고 있다고 한다.
집에 지킬게 너무 많아(!) 교대로 집 보는 시스템인가 보다.

용산역에서 여산 만났다.
등산복 차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금욜과 토욜의 차이인것 같다.
아무튼 차 타고 비몽사몽 가다 뒷자리가 비어 아예 누워서 갔다. 혹시나 못 일어날까봐 모닝콜까지 해 놓았다.

모닝콜 소리에 깨 짐 챙기고 구례구에 내리는 사람은 20 여명 정도. 동계에는 성삼재 가는 버스는 아예 없다고 한다. 택시 1인당 만원이라고 3만원 흥정하고 찜질방에 와 있을 산이슬한테 전화를 하는데 받더니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하니 받는데 자다 깬 목소리다. 찜질방에서 잠이 든 줄 알았다. 헌데 집이란다.
아니 왜?
아파 못 오는줄 알고 깜짝 놀랬다. 날짜를 하루 착각 해 내일 출발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 아파서 못 오는거 아니니 일단은 다행이다 싶었다.
일단 정신 차리라고 전화를 끊었다.

여산에게 어쩌냐고 하니 둘이서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긴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도 없고.
문제는 부식을 산이슬이 다 가져오기로 한것. 아침도 노고단에서 떡국 끓여먹기로 했는데 뭘 먹나...
혹시나 싶어 반찬 몇가지 가져와 천만다행이다.

차비도 둘이라도 3만원 내야 한단다.
편의점에 잠시 세워 줘 라면3개와 고추참치 통조림 1개를 샀다. 그리고 성삼재 올라가니 4시경.
관리공단 사람이 나와 있는데 5시나 되야 입장 시킨단다. 춥지 않은 날씨라지만 그래도 새벽이라 쌀쌀한데 어디서 기다리라고?

20분에 들여보내 준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아이젠 해야 하냐고 하니 미끄럽다고 한다. 스패츠도 착용해야 할거라 한다.
사람들 아이젠 하느라 바쁘다. 한 가족 팀은 아이젠을 오랫만에 사용하는지 거꾸로 하고 난리도 아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착용하고 출발해 노고단에 오는데 40여분 소요. 여기까지 오는데도 숨찬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도 물이 부족한지 안에서는 아예 물을 쓸 수 없게 해 놓고 밖에 두군데만 물을 받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아 많이 가물다고 한다. 임걸령 샘도 말라 연하천까지는 물이 없다고 한다.
지리산의 미덕은 물이 풍부해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건데 이젠 그것도 과거의 일이 되는건가?

오늘 1박 하는곳이 벽소령이라 시간상 여유가 있다. 아침메뉴인 떡국 대신 짐도 줄일 겸 밥을 해 먹기로 했다. 여산이 불고기까지 재 가지고 왔다고 해서 밥을 하다 뜸 들일때 불고기를 밥 위에 얻는 이상한 덮밥을 했다.
김치와 함께 먹으니 맛이 좋다. 양념도 직접 했다는데 나보다 낫다. 밥 먹고 물까지 끓여 커피까지 마시고 났는데도 6시.
해 뜨면 일출을 보고 갈 모양이다.

대피소 대표메뉴는 햇반과 라면인지 대부분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같은 기차에서 내린 단체팀은 진작에 떠났고 부자팀도 훤할 때를 기다리는지 떠나지를 않는다.
우리도 의자에 앉아 비몽사몽 앉아 있으려니 찍사들인지 단체팀들이 오는데 약수터 패션도 있고 겁나게 큰 배낭 든 사람들도 있다. 헌테 큰 배낭은 카메라 전용 배낭인것 같고 한 사람 배낭에서는 코펠 대신 노란 양은냄비 두개가 나온다.

 

 

 
노고단에서

7시가 넘었다. 우리도 노고단에 올라가 일출을 보기로 하고 올라갔다.
동쪽 하늘은 벌겋게 보이는데 일출이 썩 잘 보이는 위치는 아닌것 같다. 그나마 구름에 가려 제대로 된 일출은 보기 힘들것 같다.
해가 뜨기 전 하늘이 빨갛게 커튼처럼 물들다 차츰 연해진다.
오히려 반대편 산겹살 색상이 등푸른 생선같다는 여산.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나마 날이 춥지 않은 편인데도 역시나 해 뜨기 전은 춥다.
거의 1시간 있었나보다. 8시 되어 출발.

 
노고단보다 돼지평전이 조망이 더 낫다...

일욜 산인데 참으로 조용하다. 돼지평전을 지나니 진달래로 가렸던 조망이 보인다. 오늘 남쪽 하늘은 계속 붉은 빛이다.
구름이 중간에 걸려있긴 하지만 비도 내리지 않고 날도 춥지 않고 시계도 좋은편이다. 이만하면 복이지 싶다.

 
눈은 별로 없었다...

등산로는 눈이 산행하기 딱 좋을 만큼만 있다. 잔돌이 많은곳은 흙이 드러나 아이젠 하고 산행하기 좀 거시기 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할만했다.

 

 

 
산겹살은 자꾸 셔텨를 누르게 하지만 찍어도 찍어도 양에 차진 않는다...

장소에 따라 해가 떠 오를 수록 보여주는 산겹살의 변화. 조망에 목숨 거는 여산은 물론이고 나 조차도 자꾸 사진을 찍게 되는데 아무리 찍어도 성에 차질 않는다.
더군다나 넷이 하던 산행을 둘이 하다보니 좀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전 같으면 혼자 앞으로 가버리는 여산이 오늘은 뒤를 봐주어 고맙다.
노루목에서 부자팀을 만났다. 아들이 4학년이라는데 아빠 배낭은 집채 만하다. 꼬맹이어서 인지 자주 간식 먹고 자주 쉰다.
우리는 반야를 가기로 합의를 본지라 반야에 간다고 하니 이 팀은 그냥 간다고 다녀오시라 한다.



 
반야에서

10:00 노루목 출발해 삼도봉쪽 하산길에 배낭을 버리고 빈몸으로 올라가는데도 반야 가는 길은 만만하지 않다. 갈수록 멀게 느껴진다.
헌데 반야 거의 다 올라갔는데 젊은 커플팀이 집채만한 배낭을 지고 내려온다. 우리가 빈몸인걸 보더니 배낭 놓고 올라오면 된다고 하니 아주 억울해 한다.

반야에 올라가니 홀로 온 등산객 한명만 있고 아주 조용하다. 역시나 반야에서의 조망도 멋진지라 여산은 사진 찍느라 지체하고 잠바를 벗고 올라간지라 먼저 내려오는데 한 팀이 반야를 향해 올라간다.
벗어놓은 배낭을 다시 메고 삼도봉쪽으로 가니 반야 올라가다 만난 커플을 만났다. 아주 지친 모습이다.




삼도봉에서

배낭이 전문 산악인용으로 보여 지리에 많이 와 본 줄 알았는데 처음이란다. 누가 이 배낭 들고 가라해서 들고 왔단다. 아이젠 한 발이 하도 아파 아이젠을 빼고 있는데 삼도봉 지나자 마자 바로 나타나는 눈길.

화개재에서 부자팀을 다시 만났다. 아들이 힘들어하는지 아들 배낭까지 아빠가 지고 올라간다.
이 아들도 지리산 처음이라는데 하계 지리산에서는 부자팀을 많이 봤지만 동계에서는 처음인것 같다.
간간히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넘어오긴 하지만 일욜 같지 않게 한적한 지리가 정말 좋았다.
우리도 간식먹고 잠시 쉬었다.


천왕봉 중봉이 손에 잡힐것 같이 빤히 보이는데...


토끼봉에서

예전엔 토끼봉 올라가는 길이 정말 힘이 들었는데 요즘은 토끼봉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고 대신 연하천이 점점 멀게 느껴진다.
점심은 천상 연하천에서 먹어야 하는데 배는 별로 고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어줘야 하는데...
여산은 토끼봉 지나고 앞서서 휙 가버려 보이지도 않는다.

그나마 기운 나는 일은 산이슬이 음정에서 벽소령으로 직접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우린 연하천에서 점심 먹고 가야하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라 문자를 보냈다.

 
겨우 연하천에 도달하니...

13:30 드디어 연하천.
여산 느긋하게 앉아 땀 식히고 있다.
울산에서 홀로 지리산 종주를 온 아자씨가 코펠, 버너가 없다고 우리랑 같이 끓여 먹자고 하는 여산.
이 아자씨 코펠 빌렸다면서 햇반 한개를 사 들고 나온다. 헌데 넘의 코펠에 잠시 담궜다 꺼내봐야 햇반이 그리 쉽게 데워 지던가?
우리 누룽지 라면 끓이는데 넣으시라 했다. 아주 주저주저 하면서 넣는다.

그래도 수저는 들고 왔고 김치, 참치 캔 등 무거운걸로만 골라 가지고 오셨다.
함께 라면 국물과 드시라고 했는데도 정말이지 이것도 주저주저 하면서 드신다.  먹고 남은 김치는 내 김치통에 담았다. 일회용 포장에 싸 가지고 오면 이게 문제다.

이 아자씨 배낭 제법 크다. 헌데 배낭 헤드에 큰 침낭을 달고 계신다. 여산 말로는 60만원짜리 라는데 그 비싼 원정용 배낭을 비닐봉지에도 넣지 않고 달고 오다니. 그러다 비나 눈이 오면 어찌하오리까...
이분도 벽소령에서 1박 한다고 한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화엄사로 와 1박 하고 아침 택시타고 성삼재 올라와 산행 시작한거라고 한다.
여산이 앞질러 연하천에 왔고 그 뒤에 내가 나타나니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ㅎㅎ
벽소령 물이 없다고 해 패트병 하나 가득 담아 가지고 다시 출발.
출발 전 반야에서 본 커플팀이 먼저 도착했고 출발하는데 부자팀도 가까스로 도착. 벽소령에서 만나자 했다.

 
벽소령 가면서 보이는 경치

산이슬은 벽소령에 진작 도착해 책 읽고 있다 한다.
헌데 벽소령 가는길 초입에 음정 가는길 표지판이 보인다. 음정에서 벽소령으로도 올 수 있지만 연하천으로도 올 수 있나보다. 진작 알았다면 연하천으로 올라와 함께 점심까지 먹을 수 있는데 아깝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하천에서 음정 가는길은 꽤 길이 험하고 거칠다고 한다. 반면 벽소령 오는 길은 임도로 아주 널널했다고....

 
지리에서 첫번째 포토라인

 
마음은 바쁘지만 멋진 경치는 자꾸 날 붙들고...

벽소령 가는길은 내가 맘이 급해서인지 여산이 작품활동을 해서인지 내가 빨리 도착.
15:45 벽소령 대피소를 보니 어찌 그리 반가운지...




벽소령에서




산이슬을 만나고..

곧 산이슬이 취사장쪽에서 올라온다.
다행히 택시를 타지않고 함양에서 버스를 타고 왔는데 전에 우리가 지리산 7개 사찰 순례때 타려다 못 탄 양정가는 버스라고 한다.
우리 맨밥 먹을까봐 왔다는 산이슬. 인터넷 검색해 이렇게 빨리 나타나 주니 정말정말 반갑고 고맙고.....

셋이 기념촬영 하고 일단 대피소에 들어가니 조금 기다리니 바로 자리 배정을 해 준다.
울산 아저씨도 진작 들어와 있다. 여산 바로 옆자리인것 같다. 여자들은 2층에 배정.


취사장에서

벽소령은 밥 할 물은 주는데 마실 물은 사 먹어야 한단다. 큰 패트병은 진작 동났고 500cc가 1500원이라고 한다. 돈 벌었네, 돈 벌었어. ㅎㅎ
취사장에서 내일 아침밥까지 해 놓자고 한다. 거기다 울산 아저씨 밥도 해 같이 먹기로 했다. 우리도 짐 줄어야 한다고 사정사정 해 가면서...
원래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인데 여산표 불고기가 남은지라 오늘은 불고기 백반을 먹기로 했다.
이 불고기가 지리산에서 숙성해 더 맛이 좋을거라는 여산.

저녁 해서 먹는데 부자팀 밥 하러 들어온다. 일단 우리가 한 밥을 좀 나누어 주었다.
이 팀은 오마니가 부식을 챙겨주었다는데 햇반, 고기완자, 봉지에 든 삼계탕. 아주 무거운 걸로만 준비한것 같다.
여산 날 가르키며 이 아줌마한테 잘못 걸리면 인터넷에 다 올라온다고 겁준다.
올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들어와 보지도 않으면서 본것처럼 말하네?
커플팀은 그제서야 밥 해 먹으러 내려온다. 오늘 대피소에 여자는 셋이 전부인가 보다.


사진 한장 찍고...

저녁 잘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19:00.
할 일도 없어 잤다.
사람이 많지 않아 코고는 소리도 크지 않았고 나도 그 소리에 일조를 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