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동계 지리에 들다 2 (1/5)

산무수리 2009. 1. 8. 22:17
‘달이 걸어오는 밤’-허수경(1964~ )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 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화자는 몹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어두웠나 보다. 달이 아스피린 같고,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니. 그 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다가 화자는 또 찌르르 통증을 느낀다. 이번엔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젖몸살을 앓는 달의 통증이다. 달 어머니의 젖을 먹고 회복한 화자는 이제 온 세상이 다 제가 낳은 자식처럼 애틋하고 미쁜 것이다! <황인숙·시인>


 

  
저녁 7시부터 거의 11시간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처음엔 춥더니 차차 더워지는건지 더워진다. 양말, 잠바 등을 벗고 잤다.
6시 여산의 전화. 어제 해 놓은밥 들고 취사장에 왔으니 찌개 들고 나오란다.
가스, 반찬 등을 들고 취사장에 나가 밥 데우고 어제 끓여놓은 김치찌개 데우고 있는데 울산 아자씨께서 지금 출발한다고 인사를 한다.
아자씨 밥도 여기 들어있어 드시고 가야 한다고 해도 원래 아침 안 먹는다고 막무가내다. 정말 참 대략난감이다.
자기 명함을 주더니 여산보다 명함을 달라는데 명함이 어디있으랴....
명함 뒤에 연락처를 적어주고 출발하려는데 그 새벽에 산행을 하다 들어오는 두사람.

어제 저녁 8시부터 대원사에서 무박 화대종주를 하고 있노라고...
식사는 초코파이로 대신한단다. 울산 아자씨 때문에 남은 밥을 드시라고 하니 매점도 열지 않은지라 사양하지 않고 식사를 함께 했다.
누룽지까지 끓여 숭늉까지 마시며 왜 이 밤에 이짓을 하냐고 하니 J3라는 다음카페가 있단다.
J3는 지리산 3대 종주, 화대, 태극, 왕복종주를 말하는데 잠을 자면 인정이 안된다나? 무박으로 해야 한다나?
우린 해 떨어지면 절대로 산행 안하는데 참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싶다.
배낭은 작은데도 둘 다 제법 큰 디카를 목에 걸고 있다. 대피소 풍경이라며 우리가 밥하는 사진까지 찍는다.
기록을 위한 산행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도 출발하고 우리도 코펠, 바나 챙기니 그때서야 부자팀이 일어난다. 이 팀은 오늘 장터목까지 갔다 내일 천왕봉 찍고 백무동으로 하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짐 챙기고 출발을 하니 7시가 훨씬 지났다.
곧 날씨가 희부염해 지는게 오늘도 일출을 보긴 틀린것 같다.

 
산행 시작하니 이미 여명이다..

눈이 있는곳도 있고 맨흙이 드러난 곳도 있고 한 길을 계속 오르내린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의 길도 참 길다. 원래 긴데다 저녁에 갈때는 지쳐 정신없이 가고 새벽에 가면 바삐 가서 그러는지 이길은 늘 낯설기만 하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사람도 없다. 우리밖에 없는것 같다.
한참 가다 부부 한팀을 만났는데 산이슬과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팀은 세석에서 자고 반대로 넘어오고 있었다.

 
해가 많이 퍼지고 어제와 달리 오늘은 아침부터 맑음.

해가 높게 올라가고 기온도 어제와 비슷한것 같다. 날씨도 쾌청한것 같더니 구름이 몰려오고 몰려가고 한다. 여산 구름때문에 조망이 가릴까 염려가 되나보다. 우린 구름이 적당히 있는데 더 멋져 보이더구만....

 
어디를 쳐다봐도 푸른빛은 눈을 즐겁게 하고...

작년 눈에 쌓인 지리는 아니지만 파란 하늘과 구름과의 조화. 멀리 보이는 산겹살의 모습들.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눈이 맑아지는 느낌 그 자체.

 

 

 
드디어 세석이 보이고...

세석가는 멀고 먼 길. 영신봉이 보이면 없던 기운이 난다.
세석에 도착해 보온병에 가져온 물로 차도 타 마시고 물도 가득 떴다. 장터목에서 점심에 쓰고자...
한 남자가 반대편에서 오는데 장터목에서 자고 천왕봉 일출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오늘 일출은 구름이 좀 끼었다고 하면서 우리보고 어디까지 가냐고 해 하산한다고 하니 일출 안보고 하산하냐고 한다.
우리가 안 봐도 해 잘 뜨더라 했다.

 

 

 

 
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이 지리 주능선 종주의 백미인것 같다...

세석에서 장터목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거리도 가깝기도 하거니와 경치도 이곳이 제일 멋진것 같다.
나무 터널을 이룬곳에 촛대봉에서 내려가는 길과 장터목 직전의 터널. 이곳은 우거질때도 좋지만 눈터널일 때는 정말이지 죽여주는 코스.

 
야, 장터목이다~

장터목은 정말 장터목인가 보다. 바람이 세서 세석에서는 밖에 앉아 있어도 별로 춥지 않았는데 이곳 바람은 밖에 있기 힘들다.
취사장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버글거린다.
전국 연합 교회 행사에서 온 학생들이 라면 끓여 먹느라 바쁜 모습이고 아직도 후미팀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다.
화장실 다녀오는데 한 학생이 손 씻는곳이 어디냐고 한다.
손? 먹을 물도 귀한곳인데? 이곳은 설것이나 손 같은거 안 씻는 곳이야...

우리도 라면 먹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누룽지를 끓여 먹기로 했는데 그곳에 떡국떡을 넣더니 김치까지 넣어 먹자고 한다. 졸지에 개밥 모드가 된 점심. 그래도 라면보다 훨씬 맛 좋았다.
가스도 한통 다 썼고 쌀도 거의 다 먹었고 남은 과일까지 먹고나니 짐이 정말 많이 줄었다.
이젠 마지막 천왕봉만 오르면 된다. 룰루 랄라...

 

 
구름 끼던 날씨가 쾌청해 지며 제석봉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의 경치가 되고..

세석에서 장터목 경치 다음으로 멋진 제석봉. 오후가 되니 날도 쾌청해져 푸른 하늘과 고사목, 산겹살의 조화로 여산이 사진 찍느라 올 생각을 안한다. 우리 두사람이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이곳은 사람들도 제법 사람도 많이 오르내렸다.

 

 

 
천왕봉 가는길의 멋진 모습들

천왕봉 가는길은 여러번 왔지만 올때마다 그 느낌과 감회가 남다른것 같다. 이번 산행은 날씨가 맑아 산겹살은 눈 시리도록 본것 같다.

 


드디어 정상.

정상이다. 사진 찍고 2시부터 하산 시작.
법계사쪽에서 올라오는 한팀들이 힘들어 죽겠나보다. 헌데 올라오는 사람들 반은 아이젠을 하지 않고 있다. 눈이 별로 없나?
디카는 정상에서 부는 바람에 배터리 방전으로 사진도 찍을 수 없다.
년말 탁구 시합하다 삔 발목이 많이 아픈것 같아 파스도 붙이고 발목 아대도 해 주었는데 하산하는데 걷는 모습이 영 불편해 보인다.

아이젠을 두번이나 뺐다 꼈다 하는 사이에 여산은 앞서서 가 버렸다. 아픈 사람 맞는거야?

 
법계사 직전

법계사에서 여산이 들어갔으려나 싶은데도 우리가 늦어 그냥 가기로 했다. 올라오는 사람보고 콧수염 난 남자 못 봤냐고 하니 못 봤단다.
이 사람이 법계사로 들어간다. 혹시 수염 난 남자 있으면 녀자들이 먼저 하산한다 전해달라 했다.


마지막으로 천왕봉과 법계사를 올려다보고...

로터리 대피소 지나고 계곡길과 만나는 곳도 지나고 거의 쉬지도 못하고 내려와 포장도로에 서니 16:30.
여산 전화를 해 봐도 전화기도 꺼져있다. 5분 정도 내려오니 중산리에서 원지 나가는 버스 시간이 적혀 있다. 우리는 17:05 버스를 타면 될것 같아 여산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지 나가는 버스 시간표

버스 정류장 거의 다 내려갔는데 여산의 전화. 어디냐고 하니 1915라고..
아니 아직도 산?
1915 편의점이란다. 우리보고 왜 이제 내려오냐고...
편의점에 가 보니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기다리고 있노라고. 법계사 들렸냐고 하니 발목 아픈데 미쳤냐고 한다.
버스 놓칠까봐 그러냐고 한다. 버스가 문제가 아니라 아프다고 한 사람이 안 보여 걱정되서 그런거지 사람을 어디다 취직을 시키는거야?

버스 타고 나가며 원지에 전화로 18:50 버스 예약.
원지 나가 늘 가던 식당에 가 된장백반을 시켰는데 반찬이 아주 잘 나온다.
밥 잘 먹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산이슬 버스가 5분 먼저 와 진주행 버스타고 가고 우리도 버스 곧 도착해 타고 오는데 몸은 피곤한데 잠은 잘 오질 않는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22:00. 집에 오니 23:00.
하루를 아주 꽉 차게 산 날이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 집 놔두고 허구헌날 무거운 배낭 지고 산으로 가며 좋다 하는건지.
혼자 가도 좋은 산을 맘에 맞는 친구들과 동행하는 복은 또 언제 지은건지....
산이 좋다, 친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