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박작가의 숨은벽 단상 (10/17)

산무수리 2009. 10. 19. 23:39

 

 

 

 

 

 

 

 

 

 

 

 

 

 

 

 

 

 

 단풍 구경하셨는지요?
안녕하십니까?
영등회 선생님들(우리 교직원은 아무나 갈 수 있죠.) 열 분이서 그제 토요일에 북한산 백운대에 다녀왔습니다.
샘들이 출발하기 위해 후문에 모일 때부터 벌써 들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산에 올라가면서 보니까 벌써 단풍이 들어 있대요. 도시의 고층 건물 사이에서 살다 보니 세월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만 보기 아까워서 여기에 올립니다. 아마 이번 주가 최절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리적으로 위도와 고도와 따라 시기가 다르겠지만 서울 주변이 그럴 것 같다는 거죠. 하얀 화강암 산들이 예술처럼 신기했으며, 짙은 붉은 단풍은 처연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얀 화강암 산 중 숨은 벽이라 하는 산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다른 산에 가려 보이지 않아 이를 숨은 벽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이 숨은 벽에 대한 시를, 산을 사랑하는 박샘이 보내 주셔서 여기에 소개해 올립니다. 조금은 슬픔 같은 게 느껴지네요.

 

'숨은 벽' - 이성부

 

내 젊은 방황들 추스려 시를 만들던
때와는 달리
키를 낮추고 옷자락 숨겨
스스로 외로움을 만든다
내 그림자 도려내어 인수봉 기슭에 주고
내 발짝 소리는 따로 모아 먼 데 바위뿌리로 심으려니
사람이 그리워지면
눈부신 슬픔 이마로 번뜩여서
그대 부르리라

 

백인 젊은이들도 상당 수 백운대에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정상에서 소주병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어서 나는 그들을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저는 반세기 살아오면서 백운대를 아마 처음 올라가지 않나 싶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한 번쯤 올라왔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여러 번 올라온 사람들은 그만큼 복 받은 거겠죠. 저는 백인 젊은이와 아마도 똑같이 백운대 등반 1회를 기록했지만, 소주 대신 막걸리를 마셨고, 떡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영고, 영랑, 영등 등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백운대 서쪽에서 바위 능선을 따라 올라갈 때는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많이 무서웠습니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던 최귀종 샘은 몸무게를 늘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교무실 옆 자리의 김정옥 샘은 생각보다 잘 올라갔습니다. 백운대 아래에서 못 올라가겠다고 버티다가 여러 사람들이 달래고 압박을 가하여 결국 꼭대기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운대 남쪽의 바위 꼭대기(박샘이 염초봉이라고 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염라대왕이 초대하는 바위라는 뜻이라고 합니다.)에 몇 명이 새처럼 올라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거기에 올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구름도 잔뜩 끼어 있었는데 서울 남쪽의 하늘에 높이 걸린 층적운이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11월에는 청계산에 간다고 합니다. 단풍이 떨어지고, 조금은 쌀쌀한 산이 우리를 맞이하겠죠. 청계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과 달리 편마암 산지이기 때문에 바위가 별로 없고 부드러운 흙길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자연 속에서 서로 오고가는 정을 두텁게 해도 좋겠습니다.

 

-인물 사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