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정윤천(1960~ )
천천히 와
천천히 와
와, 뒤에서 한참이나 귀울림이 가시지 않는
천천히 와
상기도 어서 오라는 말, 천천히 와
호된 역설의 그 말, 천천히 와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건네준 말
천천히 와
오는 사람의 시간까지, 그가
견디고 와야 할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마저도
자신이 감당하리라는 아픈 말
천천히 와
아무에게는 하지 않았을, 너를 향해서만
나지막이 들려준 말
천천히 와
천천히 와, 보고 싶은 마음에 버선발로 뛰쳐나온 ‘와’를 슬쩍 뒤에서 잡아당기며 호되게 단속을 시키는 말, ‘천천히’는 기도다.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 걱정에 그리움에 돌을 얹고 기다리는 지극한 자세다. 그 앞에 켜놓은 촛불 같은 말, 정화수 같은 말. 흔하게 주고받는 말 한마디에 이토록 저린 뜻이 숨어 있었구나. <손택수·시인>
산행일; 2010.11.21 (일)
코스개관: 구티재-작은구티재-돌탑봉-시루산-구봉산-벼제고개-대안리고개-쌍암재 (9:40~17:40)
멤버: 당나귀 13명
날씨: 늦가을 치고는 다소 더운듯함
11월 첫주 마라톤때문에 한번을 빼먹으니 오랫만에 만나는것 같다.
차를 타 보니 게스트가 2분이나 계신다. 이작가님이 당신이 다니는 산악회 회장님, 국장님을 초빙해 오셨다고...
헌데 그만큼 고정멤버가 빠져 오늘도 13명. 휴~
차 타고 자다 깨다 하면서 구태재까지 갔다.
구티재에서 출석부 찍고 출발.
오늘 날씨 전혀 춥지 않고 더울듯한 분위기.
오늘 산행이 거리는 길지만 오르내림이 많지 않아 빨리 진행되 7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이대장.
정말? 지난번 산행은 4시경 끝났다고...
완만하다는 산은 초장부터 급경사 오르막을 쉬지도 않고 올려친다. 더구나 낙엽이 쌓여있는 오르막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아무튼 앞사람에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어라 올라가니 아무것도 없다. 올라간 만큼 낙엽쌓인 급경사를 내려서니 길이 나온다.
지난번 어기까지 해도 좋을뻔 했다는 사람들.
초장부터 귤을 파는 강사장님. 짐 줄이기 작전 성공이라 웃었다.
오늘 새 등산복, 배낭으로 싹 개비한 정임씨. 헌데 옷이 완전 동계모드라 땀 좀 흘렸다.
이대장은 초장부터 내달려 보이지 않고 그 뒤를 경림씨 죽어라 쫓아가 보이지도 않는다. 무릎 아프고 허리 아프고 오늘은 감기까지 걸려 죽을 뻔 했다면서 산에만 오면 내 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웃었다.
초장부터 더덕슬러쉬 내 놓으라니 동안총무님 올해 마지막 더덕이라며 한잔씩 서비스.
더덕 슬러쉬 마시고 있는데 앞에 있어야 할 이대장이 뒤에서 나타나다.
또 알바? 정말 못말리는 이대장이다. ㅎㅎ
아니 그럼 경림씨는? 한잔 마시자마자 경림씨 잡으로 이대장 또 내 달린다. ㅎㅎ
금북 첫구간 천왕봉에서 내려선 다음부터는 이렇다하게 높은산도 없고 멋진 풍경도 없는듯 하다.
죽게 올라간다 싶으면 어느내 내리막이고 좀 평지다 싶으면 또 올려치고. 헌데 이런 구간이 제법 사람 힘을 뺀다.
조망도 별로 없고 시계가 트인곳도 없고 단풍이 남아 있지도 않고. 이런 길을 왜 만들었을까?
아마도 정맥은 자학하는 인간들이 만든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명산 가다 가다 더 갈곳이 없어 남들 안하고 모르는 곳 생각해 낸건 아닐까.
어쩌다 시계가 트이면 횡재한것 같은 기분.
이대장이 앉아 있다. 밥 먹고 가자고 한다.
오늘 밥 먹인다고 모처럼 참석한 성사장이 김치찌개를 끓어준다. 그거 끓여주고 하산한다고... 발목이 산행을 조금만 길게 하면 퉁퉁 붓는데 병원에 가도 뽀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마눌님 캄보디아 갔다 오늘 새벽 공항에 내렸다는 박사장은 두 아들과 세 남자가 일주일동안 먹고 사느라 정말이지 죽을뻔 했다고 한다. 오늘도 밥 못 싸오고 라면에 복분자주와 막걸리를 싸 왔다.
목 마른 김에 막걸리, 복분자주를 연거퍼 마셨더니 취해 헤롱대는 날 보고 사람들이 웃겨 죽겠단다.
아무튼 따땃한 햇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며 이것저것 계통없이 너무 많이 먹은것 같다. 성사장이 단감까지 내준다. 자긴 여기서 하산한다고...
성사장을 차 타는곳까지 배웅하고 오는 동안총무를 보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한번도 힘든 산을 몇번씩 오르내리냐고 한탄인 안샘.
현생에 복 많이 지으니 내생에는 부처로 태어나는거 아닐까?
시루 묻혀있는곳 지나 봉우리 하나 올라가 여기가 시루붕인가 했더니 시루봉이아닌 돌탑봉이라고 친절하게 써 있다. ㅎㅎ
여기가 진짜 시루봉. 정작 시루봉에 올라와보니 정삭석도 없었다.
갑자기 낭떠러지 같은 곳이 나오는데?
돌을 채쥐했던 장소인것 같아. 구들장으로 사용하는 납작한 돌들이 여기저기 지천이다. 그래서인지 경치도 조금은 특이한 모습.
여기서 멀게 느껴지고 산불감시탑, 초소를 지나서 비로소 나타나는 오늘 산행 중 제일 높은 구봉산. 줄곳 400대 높이였는데 이곳은 500대.
구봉산에서
벗재에서 게스트 2분 또 하산하고...
게스트 한분이 도가니가 션찮다고 두분이 하산한다고 해 동안총무 또 차 태워 보내고 쫓아 올라왔다.
낙엽 쌓인 급경사를 넘어가니 우리 버스가 서 있다. 오늘 버스를 세번째 본다는 동안총무. 순간 이곳에서 산행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헌데 선두는 벌써 올라가고 있고 막상 도중하산을 하면 후회할게 뻔한지라 마지막 힘을 쥐어짜 올라가기.
헌데 그 마지막 급경사 오르막은 정말정말 힘 들었다. 여태 산행중 오늘이 제일 힘든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사장님이 앞산은 안 올라가는것 같다더니 웬걸? 바로 길이 오른쪽으로 꺾이더니 바로 그 앞산이 오늘 산행중 크럭스. 도중 하산 잘했다 싶었다.
우리가 죽게 올라갔던 봉우리가 유난히 높아 보이고...
이곳이 금북과 금적지맥갈림길이라고.. 이젠 정말 하산만 남아있다고...
끝날듯 끝날듯 끝나지 않을것 같은 산길이 지맥과 갈림길을 만나면서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해 지기 전 무사 하산을 하나보다.
끝 지점에 줄줄이 매달린 표지기들. 다들 여기서 지쳐서 산행이 끝나 너무 기뻐 붙인건 아닐까?
표지기 매달아놓은 곳에 얼굴을 걸고 사진 찍으면서 오늘 산행도 정말 끝났구나 하는 행복한 마음. 바로 이 기분때문에 정맥을 이어가는것 같다.
마을이 보이고 보름달도 떠 있고 우리 버스도 보였다.
오늘도 산행 8시간. 버스를 타고 회인면으로 찾아들어가 보은에 전화로 알아놓은 '제일정육식당'에서의 삼겹살 파리.
주립대 학장님 수준인 이대장도 요즘은 술 양이 엄청 줄어들었다. 박사장 본인도 한 술 하다 조금엔 거의 마시지 않으면서 아무래도 양조장이 곧 문을 닫을것 같다 웃긴다.
술을 덜 마시면 뒷풀이 시간도 짧아지고 좋다.
회원 중 그래도 영업실적이 제일 좋은 사람이 이대장과 안샘. 문제는 산행이 빡세 한번 온 사람은 다시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것. 나들 나름대로 여기저기 영업도 해 보지만 회원 한명 늘리는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는데 다들 공감.
이대장 왈, 당나귀 여전사들은 웬만한 다른 산악회 가면 일당백은 못해도 10은 할꺼라나 뭐라나?
그래서 후미에서 쫓아 다니느라 얼마나 땀나고 힘드는데?
오늘 회장님의 이벤트 산행 공약을 이야기하다 조금 늦었다. 빨리 출발해야 버스전용 차선으로 갈수 있다 재촉에 7시 겨우 출발.
버스 안에서 해남쪽 산에가면 먹을것 채금져 주신다는 회장님, 가끔 이벤트로 남쪽나라에 가 멋진 산행도 하고 근사한 먹거리도 먹자는 회장님.
산행 계획 말만 들어도 배가 부른 느낌. ㅎㅎ
전용차선도 밀리는 극정체였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평촌에 도착하니 10시가 좀 넘은 시간.
오늘도 정맥 한 구간을 이었다는 기쁨. 감, 고, 사~
-이 작가님 사진, 동영상 추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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