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12 산행일기

산이 좋다고 힘이 안들까... (호남정맥, 곰치-피재, 7/15)

산무수리 2012. 7. 17. 22:00

새벽부터 내리는 비 - 김승강(1959~ )

비야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누이의 발길을 돌려놓아라 새벽에 꿈결에 깨어 어 비가 오네 하고 미소 지으며 달콤한 잠 속에 빠지게 해라 비야 노동판을 전전하는 김 씨를 공치게 해라 무더운 여름 맨몸으로 햇빛과 맞서는 김 씨를 그 핑계로 하루 쉬게 해라 비야 내 단골집 철자의 가슴속에서도 내려라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꽁꽁 감추어둔 철자의 첫사랑을 데려다 주어라 비야 내려라 내려도 온종일 내려 세상 모든 애인들이 집에서 감자를 삶아 먹게 해라 비야 기왕에 왔으니 한 사흘은 가지 마라 그동안 세상 모든 짐은 달팽이가 져도 충분하게 해라.


어려서 들일 할 적에 기다리던 비. 구름아 몰려와라. 비야 퍼부어라. 빨갛게 달구어진 밭뙈기를 쓸어가 버려라. 이건 물론 못된 생각이었지만, 일만 하고 어찌 산단 말이란 말인가. 일만 하라는 세상은 몹쓸 세상이다. 실업도 비정규직도 알고 보면 더 혹독한 부림이다.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할수록 더 강하게 일에 예속되니까. 일 속에 기쁨을 모시는 법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비야 쏟아져라, 누이와 김 씨와 철자의 버거운 노동의 나날에. 저는 몹시 출근하고 싶었습니다만 부장님, 십장님, 보시다시피 비가, 무슨 놈의 비가… 느긋하고 떳떳한 핑계를 대게 해라. 연인들이 서로의 입에 감자를 넣어주며 가슴이 오그라드는 동안 세상은 달팽이 차지가 되겠네. 찾다가 찾다가 짐을 못 찾아 달팽이는 제 집만 지고 가겠네. <이영광·시인>

 

 

산행일: 2012.7.15 (일)

코스개관: 곰치-백토재-국사봉-깃대봉( 448m)-노적봉(땅끝기맥 분기점)- 삼계봉-장고목재-가지산북릉-가지산-피재 (10:40~16:40)

날씨: 한바탕 비가 지나간지라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매우 습하고 은근히 더웠던 날

멤버: 당나귀 12명

 

토욜 비가 억수로 내린다. 비 많이 오는데 산에 간다고 아우성이다. 지리산은 입산 통제 되었다고 하고...

비가 오면 멤버가 더 줄어들거 잘 알기 때문에 빠질 수가 없다.

아우성을 뒤로 하고 어제 저녁 잘 먹은지라 아침 생각도 없어 도시락만 싸고 얼렸던 물도 한개만 싸고 하나는 얼지 않은 물를 쌌다.

과일도 안 먹힐것 같아 빵만 몇개 들고 갔다.

아침 버스 타는데 가는 동안 바지가 젖어 버렸다.

버스 안은 예상대로 헐렁해 12명. 일단 잤다. 바지가 젖어서 춥다.

날이 썰렁한지라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 여산휴게소에서 쉬는 김에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밥을 온전히 굶기는 또 그래 빵을 사 아침 대신 먹고 출발.

산행 사직도 하기 전 경림씨 속이 안 좋다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 약도 주고 사혈도 했는데 돌팔이 라는게 또 증명 되었다.

거의 문 닫기 직전인 곰치 휴게소에서 화장실 들렸다 산에 안 간다는 경림씨 달래 산행 출발지점에 가니 휴게소에서 지척이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데 손사장이 테이프까지 들고 와 신발 방수를 책임진다고 몇몇 사람은 비닐봉다리에 테이프 까지 붙이는 아주 웃기는 패션이다.

그래서 신발 인증샷.

 

 

 

 

 

 

 

 

 

 

 

 

 

 

오늘 구간은 2구간 정도 건너 뛰어 좀 짧은 구간을 가는 거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말발굽 모양의 산세다. 길로 따라가면 아주 가까운 거리.

오늘 코스는 짧지만 은근히 업다운이 심하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처음부터 올라치고 내리막도 가파르다.

처음엔 중간에서 따라 갔는데 갈수록 처져 결국 맨 후미가 되어 한 봉우리 올라가면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저질 체력이 조금씩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멤버가 많았다면 진작 정리 해고 되었을 텐데...

그래도 오늘 산길 참 예쁘다. 산이 좋아 산에 오지만 늘 힘들다. 그걸 알면서도 또 산으로 온다.

 

아침에 체했다는 경림씨는 산에만 오면 없어져 버린다. 진정한 산미인인것 같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신발에 물 들어가지 않는 방비를 했는데 비가 오지 않으니 대부분은 덥다고 걷어 치웠고 바지라도 좀 덜 버릴까 싶어 빼지 않았는데 산행 후 보니 별 차이도 없다.

손사장 a/s 가능하다며 테이프를 갖고 와 떨어진 사람 수리까지 해 준다. 졌다.

지난번 산행에서 자신이 오늘 산행에 안 오는데 내기를 걸어놓고 나타나 스스로 내기에 졌다. 이렇게 산을 좋아하며 그동안 어찌 안 왔을까 싶다.

오늘 비 온다고 얼린 맥주도 없어 다들 아쉬워 한다. 나 조차도...

 

오늘 코스에 호남과 땅끝 갈림길이 나온다고 한다. 호남 첫구간 뭔가 갈림길이 있다고 이야기 들은게 생각 난다.

갈림길 못미쳐 좁은 공터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해가 쨍하기까지 하다.

다들 습기때문에 더운 날씨에 지쳐 동안총무표 쌈에 손사장네 고구마묵에 박연씨의 메밀전까지 있는데도 다들 밥을 제대로 못 먹고 대부분 남겼다.

나만 힘든건 아닌것 같다.

 

 

 

 

 

 

 

 

 

 

 

 

 

 

 

 

 

 

 

 

 

 

 

 

 

 

 

 

 

 

 

 

 

 

 

 

 

 

 

 

 

 

 

 

 

 

 

 

 

 

 

 

 

 

 

 

식사 후 조금 올라가니 땅끝 갈림길인 바람재가 나온다. 이렇게 가까운줄 알았으면 여기 와 밥 먹을걸 후회 했다.

아무튼 밥은 먹었으니 산행은 반만 남은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산행 종점이 나올테고....

한참 힘들게 올라가니 나오는 삼계봉. 그리고 곧 나오는 장구목. 그리고 철탑이 나온다.

여기서도 한참 더 가서 나온 가지산.

가지산 가까니 가니 약간의 암릉이 나와 그런줄만 알았다.

가지산 정상지나 갈림길이 나오는데 가지산 정상과 피재 방향. 정맥 진행방향은 피재인데 가지산 정상이 200m라고 씌여 있다.

힘이 없어 포기하려고 했는데 조망 좋다는 총무님 코스 소개를 본것 같다. 배낭을 버리고 올라가니 생각보다 빨리 가지산 정상이 나오는데 조망이 환상이다.

사방이 트였고 암릉도 예쁘고 건너다보이는 능선의 바위들 모습도 아주 예쁘고 우리가 온 길과 갈 길이 한눈에 보인다.

달려야하니조는 아무래도 이 정상을 빼먹고 내달린것 같다.

 

정상석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총무님이 들고 라운드걸 흉내까지 내 한바탕 웃고 내려가는길은 간간히 조망이 트였도 날도 좋아져 눈이 즐겁다.

얼음물이 부족해 여기저기 물도 얻어 먹고 과일도 얻어 먹고 민폐 산행을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빨리 피재가 나왔다. 피재는 한참 길 넓히는 공사중이다. 다음에 오면 지도가 완전히 달라질것 같다.

기사님께서 신발의 흙을 일일히 닦아 주신다. 너무 고맙다.

땀이 너무나 씻고 가야 겠는데 마땅치 않다. 아침에 잠시 머물렀던 곰치 휴게소에서 남자들은 계곡에서 씻고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간이로 씻고 옷만 갈아입었다.

저녁은 화순에서 먹고 고속도로를 탄다고 한다. 화순군청에서 추천한 시골집이라는 보리밥집.

 

 

 

 

만연산 자락이라는데 안양의 모락산 분위기인것 같다.

막상 찾아가보니 지난번 찾다 버스 못돌려 생쑈했던 바로 옆 길이다.

시골집은 허술한데 새장처럼 올라앉은 곳에서 조류와 비조류 나누어 앉아 보리밥을 먹었는데 반찬이 환상이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다들 백숙을 한 마리씩 먹고 있는데 아주 맛 좋아 보인다.

반친도 넉넉하고 맛도 좋아 배부르게 잘 먹었다. 동안총무님이 쐈다.

배부르고 등 시원하고 이젠 버스타고 잘 일만 남았다.

잘 자고 10시 반경 평촌 도착. 한여름 힘든 산행 한 구간을 무사히 이어갔다.

 

-이작가님 사진, 동영상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