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홋카이도 김사진 2 (8/3~4)

산무수리 2017. 11. 23. 00:04
나팔꽃
-권대웅(1962~   )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
단칸방이어도 신혼이면
날마다 동방화촉(洞房華燭)인 것을
그 환한 꽃방에서
부지런히
문 열어주고 배웅하며 드나들더니
어느새 문간방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갓 낳은 아이
야물딱지게 맺힌 까만 눈동자
똘망똘망 생겼어라
여름이 끝나갈 무렵
돈 모아 이사 나가고 싶었던 골목집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저 나팔꽃 방 속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본 이는 주인과 세입자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다. 전세와 사글세의 차이도 알고, 연탄 냄새와 전기요금 고지서, 수도계량기의 눈금까지를 기억한다. 신혼부부가 첫 아이를 가지는 순간, 그 모든 신산하고 비루한 생의 품목들이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으로 전환된다. 나팔꽃 씨방 속에 들어앉은 똘망똘망한 씨앗을 보며 시인은 오래전 단칸방에 살던 부모를 연상한다. 가난했지만 포근했고, 비좁았지만 살가웠던 그 시절을 우리는 무심코 떠나보냈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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