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2018일기

봉화 외씨버선길 걷기 (8코스-보부상길, 8/8~10)

산무수리 2018. 8. 15. 20:20
여백                 
-박철(1960~ )  
      
     
어둠을 밟으며 책장이나 넘기다가
되잖은 버릇대로 여백에 몇 자 적다가
아 시립도서관서 빌려온 책 아닌가
화들짝 놀라니 해가 떴다
 
식어가는 어깨 너머 창밖을 펼치는데
아 내가 그제 헌책방서 산 거지 
두 번 놀라자 속이 쓰렸다
어느덧, 내 사랑
이리 되었구나

 
 
읽던 책에 메모를 하다가 빌린 책인 줄 알고 놀라다 보니, 밤이 지나갔다. 그러나 헌책방에서 사 온 책이었다. 시간은 가고 인간은 늙고 기억은 흐려진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란 사실이 이 사람을 아프게 한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던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머릿속을 다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의 여백에 숨었다가 불쑥 나타나, 방심한 마음을 찔러 멈추게 한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올 여름에는 차영샘과 둘이 노는 스케줄이 많아졌다.

우선 연수 5일 함께 받았고 지리산 3일 잘 다녀왔고 마지막 프로젝트 4일 일정으로 봉화 외씨버선길 일부를 걷고 마지막날 일월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춘양행 7:40 동서울발 차표는 진작 예매를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워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어 1코스인 주왕산부터 할까 고민도 했는데 계획 짜는것도 힘든데 그냥 예정대로 가자고 했다.

버선길 오기 전 승부역 근처 팬션에서 친구들과 2박 한 차영샘 왈, 날이 너무 더워 걷기는 엄두를 못내고 거의 팬션에서 놀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날까지 취소하자는 전화만 기다리다 연락이 없어 할 수 없이 짐싸고 왔다고.


예습 안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 찾아 읽어보니 뭔가 사먹을 곳이 없다고 해 코펠, 버너, 누룽지, 빵, 얼음물에 갈아입을 옷 등을 챙기고 나니 배낭이 지리산 보다야 가볍겠지만 무거웠다.

예전 2월 청산도에서도 가게 문을 안열어 굶어 죽을뻔했는데 코펠, 버너를 가지고 가 유용하게 쓴지라. 헌데 동서울에서 만난 차영샘 뭘 그렇게 들고 오냐고 사먹어야지... 하는데 괜히 무겁게 들고 와 개고생 하나 싶은 걱정이 된것도 사실이다.



차는 휴게소 쉬고 봉화에서 쉬고 춘양에 가니 3시간 조금 더 걸린것 같다.

둘레길 기점인 면사무소를 물어 찾아가니 우리가 가는곳이 춘양쪽이 아니라 9코스 안내판만 보이고 어디로 찾아가라는데 면사무소 직원은 잘 모르는 눈치다.




결국 땡볕 시내에서 헤매며 시간 허비하다 어르신 한분이 길을 알려주고 중간에 만난 지역 주민에 알려줘 겨우 안내표지판을 만나느라 식당을 놓치고 초장부터 점심을 빵으로 때우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초장 춘양역 철로를 가로 지르고 동네 부처님도 뵙고 길게 느껴진 마을길 구간.

하긴 보부상이 마을을 돌아야 물건을 팔겠지.......








드디어 숲을 만났고 안내표지는 아주 잘 되어 있고 스틱도 꺼내 들고 숲인지라 덜 덥지만 길을 걷다보니 나오는 모래재.

오늘 목적지인 분천역까진 아직 15키로도 더 남았다.














다시 길을 만났고 더러 마을 주민도 만나고 더운데 고생한다는 말도 들어가며 아직은 그래도 기운이 있는지라 웃어가며 길거리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가다보니 다시 숲이 나왔고 지도에 나온 자작나무숲이 뭐 아주 울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긴 숲길 임도를 걷다보니 다시 집이 나오는데 여긴 성수기에는 장사도 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굳게 닫혀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오니 뜬금없는 의자가 나오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시원하다. 여기가 높은터라고 한다.

한참 쉬었다.










높은재에서 내려오다 개가 짖는 바람이 왼쪽 버선길을 놓치고 한참 내려가다보니 표지기가 안 보인다.

한참 내려갔는데.....

되돌아 올라와 버선길을 찾아 올라가는데 이 구간은 침엽수가 멋진 길이 나와 놓치면 후회할뻔 했다.

산길은 길지 않았고 살피재 끝나고 마을이 나왔다.



헌데 소나기가 내린다. 물도 달랑달랑 한데 가게도 없다.

농사짓는 분 마당에서 물을 얻고 처마가 큰 집에 가 비를 잠시 피해 가기로 했다.

사람은 젖어도 되는데 신발이 젖을것 같아서......




비가 그친것 같아 다니 나섰는데 다시 내려 결국 신발을 적셨다. 가게는 나올 생각을 안하고 계속 길로 이어지는 버선길.

식당, 편의점이 있는 동네가 나왔다. 여기가 소천면이다.

점심을 못 먹은지라 김밥과 커피를 사서 요기를 했다. 날은 어느새 개 다시 더워졌다. 그래도 소천면이니 곧 현동역도 나오고 분천역도 곧 나타날 줄.










소천면은 벽화를 재미나게 그려놓았다.

벽화 따라 걷다 다시 오르막 길을 올라가니 철길이 나오고 현동역을 가로지르는 코스다.

길 재미나게 만들어놨다 생각하며 즐겁게 이야기 하며 오는데 미니 버스 한대가 우릴 태워주려는지 기다린다. 안 탄다고 하니 지나간다.








오른쪽으로 낙동강을 끼고 걷는데 땡볕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소수력 발전소라는 안내판이 있고 황토민박도 보이는 길을 가로지르는데 수력발전소는 안보이고 태양광 집열판만 보인다.

빈 민박집 마루에 잠시 누워 땀을 식히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니 다시 길을 만난다.

다행히 여기 천막 안에서 식혜와 옥수수를 팔고 있어 잠시 쉬며 간식을 먹는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 지역 유지들인가보다.

한 사람은 황토민박 사장님이고 한 사람은 분천역 앞 카페를 한다는데 민박집은 2개가 있는데 어제는 방이 없었는데 오늘을 있을 거라고.....

식당은 지금 한 곳은 문 열고 있고 작은 슈퍼 하나가 있는데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 걸을만 할거라고 해 그런줄.










찻길 옆으로 걷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토끼굴을 지나 다시 산으로 붙는데 제법 가파르다.

욕 나와가며 결국 집어 넣었던 스틱을 다시 꺼내고 나와보니 분천 터널을 넘어오는 코스다.

그래도 이젠 거의 끝난것 같아 기뻤다.





여기서 분천역을 갔어야 했는데 이정표를 대충 봐 내일 갈 코스로 가다보니 이상하다.

반대편이라고 해 알바까지 하고 분천역으로 가니 민박집이 보이는데 한가하고 주인은 전화를 해야 한단다.

일단 식당 문 닫기 전 우거지탕으로 밥을 먹고 여기서 좀 더 가까운 민박집이 더 저렴한지라 민박집 정하고 마트에서 내일 코스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요기할 만한 것이 없다.

물,  포카리, 양갱, 초코바를 사고 남은 빵으로 내일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발에는 물집이 하나 잡혀 실로 뚫고 반창고 붙이고 신발도 어느정도 말랐다.

민박집은 문간방인데 화장실도 따로 있고 빨래를 하니 탈수를 해 주어 널고 내일 아침 일찍 누룽지 끓여 먹고 더워지기 전 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