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마라톤

여의도에서 서울마라톤 뛰던날

산무수리 2006. 3. 6. 22:09
'이른 봄'- 김광규(1941~ )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짝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 듯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난다

봄빛은 연한 알 같다. 신비롭다. 새로운 시간은 햇잎처럼 반짝인다. 봄에는 어린 소녀들이 바빠진다. 물총새보다 예쁜 그네들은 봄을 더 빨리 알아챈다. 내 맏딸도 문을 나설 때마다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좀 이르다 싶어도 빛깔이 고운 꽃잎무늬 치마를 꺼내 입었다. 겨우내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궁금했을까.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아. 봄은 안팎이 눈부시다.문태준 <시인>


살면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마라톤 완주라는 보살.
하면되지요?
처음부터 풀을 뛰는건 무리인지라 하프에 도전해 보라고 했다.
마라톤에 관한 한 살아있는 백과사전인 은계님에게 어느 대회가 제일 좋으냐고 하니 서울마라톤이란다.
참가비를 전액 러너에게 되돌려주고, 시간 제한도 없고 축제 분위기의 운영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동마 한 주 전이다.
은계님 부부는 동마를 뛰지 않고 봄에는 서울마라톤, 가을에는 춘마를 뛴다고 한다.

난 동마를 이미 신청한지라 고민 끝에 보살과 함께 하프를 뛰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연습 전혀 못하고 그나마라도 뛰긴 뛰었다.

대회 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다.
그럼 뭘 입어야 하는거야?
정말이지 사서 하는 걱정도 여러가지다.
추울때, 안 추울때 두가지 경우를 대비해 옷을 일단 꺼내 놓았다.

아침 다행이 비는 그쳤다. 날이 흐린데 추운 날씨도 아니란다.
그래서 발목 나오는 추리닝에 긴팔 얇은 티를 입고 뛰기로 했다.

은계언니 8:30 경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문자.
한참 가고 있는데 보살 여의나루역에 도착했단다.
9시 보살과 만나 은계언니 부부와 인사를 하고 급하게 사진 한장 찍고 우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가방을 맡겼다.



문제는 새로 산 내 추리닝에 주머니가 없네?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네?
그래서 미모지킴용 버프, 마스크 다 포기했다.
보살은 새로 산 러닝화에 쫄 추리닝을 입었는데 바지 사이즈가 커 쫄인 줄도 모르겠다.
상의를 빨간 등산용 반팔을 속에 잆고 겉에 긴팔을 입는다는데 그럼 뽀대가 너무 안나 내가 혹시나 해 들고 간 나시티를 속에 입으시라고 빌려드렸다.
그리고 파워젤도 하나 비상용으로 챙겨 드렸다.

학교, 주한미군등 단체로 참석을 많이 한것 같다.
하프와 풀 출발지점이 다른가보다.
아무튼 풀 10시 출발하고 하프도 시간대별로 출발시킨다.
우린 거의 16분 정도에 출발한것 같다.

 

연습 안했다던 보살, 손 안 시렵다며 장갑도 안 낀다고 아예 안 들고왔다.
모자도 답답해 원래 못 쓴단다.
땀이 많이 난다고 손수건만 준비해 오셨다.
아무튼 3K 지점까지는 내 속도보다 오히려 빠른듯 하네?
연습 안했다더니 엄살이었나?
헌데 6K 반환점인 3K 지점에 오더니 딱 멈추어 서서 이젠 혼자 갈테니 나 먼저 가라시네?
그러더니 걷네?
아니, 지금부터 걸으면 아니되옵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하면 뛰기 더 힘들어요. 그러니 천천히라도 뛰어야 한다니까요?

4K 지점 애주가 마방님이 자봉을 하고 계시다.
보살은 손이 시린지 소매속에 손을 넣고 뛰시네?
마방님 장갑을 강탈해서 보살에게 드리고 안 먹으려고 하는데도 억지로 물, 초코렛을 먹게 했다.
속도를 천천히 하니 자연 후미그룹이다. 거의 비슷한 속도로 한 그룹을 형성해 가는것 같다.
7K 지점인가?
애주가 단체 자봉을 하고 계시다. 거의 20여분 나와 계시나보다.
회장님인 건달님이 제일 먼저 눈에 뛴다.
다들 반가워 해 주고 응원을 해 주신다.
아싸, 이런 날도 있구나~~

보살, 이젠 어찌 뛰는지 알았단다. 날 보고 먼저 가란다.
반환점 까지만 같이 갈께요, 그 다음엔 혼자 뛰어 오세요.
반환점이 나타날듯 안 나타난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중간 중간 자봉자들이 '얼마 안 남았어요, 힘 내세요'를 외쳐준다.
정말 처음 뛰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겠다.

11시30분도 지난것 같다.
조금 속력을 내 한 두명씩 추월해 가면서 뛴다.
땀이 난다.
다시 애주가팀을 만났다.
화이팅을 외쳐준다. 정말 고맙다.
그들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뛴다. 물론 맘같이 발이 빨리 가지는 않지만...

5K 남은 지점에서 예쁜이님을 만난다.
처음 하프에 도전하는데 좀 지친 기색이다.
예쁜이를 추월하고 다시 마방님 자봉장소에 가서 장갑을 돌려 드렸다.
같이 뛴 사람은 어째고 혼자냔다.
반환점에 버리고 혼자 뜁니다.
간식 먹고 놀다 가란다. ㅎㅎㅎ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 단축할 욕심이 좀 나는지라 부지런히 땀 나게 뛰었다.
전광판 시계가 2시간 25분.
30분 전에 들어와서 다행이네...
나중에 시간을 확인하니 편하게 뛴거나 열씨미 뛴거나 5분 차이네?
그 5분 단축하기가 이리 힘이드니 풀 기록 단축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이겠지?

칩 반납하고 옷 갈아입고 디카 챙겨 보살을 기다린다.
헌데 안온다.
기다려도 안온다.
예쁜이님은 바로 내 뒤라 옷 갈아입는 새에 들어와서 역시 못 보았다.


시각장애자를 데리고 함께 동반주 해 주는 자봉자들..

시각장애인, 발목에 장애가 있는 분들도, 아주 고령의 할아버지도 들어오셨는데 보살은 안 들어오네?
너무 일찍 버렸나?
헌데 제한시간 전에 드디어 보살이 보이네?

 
수고 많이 하셨사옵니다~~

넷타임 2.46.
연습할때 쭉 뛴적이 없고 뛰다 걷다를 반복했단다.
사람은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달았단다.
아무튼 무사 완주하신게 무지 기쁘신가보다.
물도, 떡도 다 생각 없단다. 간식을 많이 먹었고 파워젤도 15K 지점에서 기운 딸려 먹었단다.

 
아자~~

완주메달, 음료수, 떡, 대형타월에 파스까지...
정말이지 푸짐하다.
가방 작은거 들고 온 보살은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단다.

 
그녀는 너무 멋졌다~~

뉴 밸런스에서 신발을 골라주나보다.
우리도 줄을 서서 발 사이즈 재고 족형을 봐 준단다.
두사람 다 정상 발이란다.
한 남자보고 운동을 더 하라고 하니 이 남자 기가막혀 하면서 이 이상 더 하냔다.
-3 주자란다.
측정자 말에 의하면 -3 주자는 3점이 찍힌단다.
아무튼 신발 닳은것, 족형을 보고 기록도 참고해서 운동화 모델을 적어준다.

 
보살의 족형

 
포즈 취하는 이 여유~~

마음 같아서는 은계언니를 기다리고 싶은데 갑자기 배가 너무 고프다.
그래 보살과 함께 영등포 롯데에 가 회냉면과 빈대떡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마방님 전화.
애주가 자봉 끝내고 함께 회식하러 가면서 회장님이 내가 걸려하셔서 전화를 하셨단다.
정말이지 자봉 한번도 안해 늘 죄송한데 이리 신경을 써 주셔서 너무 고맙고 미안타.

집에 오는 전철에서 졸다 또 못 내릴 뻔했다.
집 근처 목간통에 들려 냉온탕을 들락 거렸다.
헌데도 후반부 좀 빨리 뛰었다고 다리, 허리가 뻐근하다.
이래가지고 풀 어찌 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