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기타등등

[스크랩] 꽃 흐드러진 저산에 미치도록 살고싶네

산무수리 2006. 4. 20. 11:40
꽃 흐드러진 저산에 미치도록 살고싶네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 봄날 열정 담은 신작 시집 내
“매화·산수유·벚꽃이 요새는 동시다발로 피네
자연이 철이 없으니 인간도 철이 없어지네”

   “올해는 유난히 연분홍이네. 꽃도 탐스럽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김용택(59) 시인은 봄향기에 취해 꿈길 걷듯 거닌다. 김 시인이 고향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북 임실군 덕치 초등학교 운동장. 벚꽃 나무 오십 그루가 빚어낸 연분홍 물결이 눈부시다.

   전교생 31명 중에서 김 시인이 가르치는 2학년 1반 학생은 모두 3명. 기자가 찾아갔을 때 시인은 아이들에게 동시 쓰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 여자 아이에게 “시인 선생님에게 시 쓰기를 배우니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했더니 그 아이는 당돌하게 대꾸했다. “무슨 행운이에요, 잔소리만 많은데…”라며 입을 삐죽이면서 슬쩍 선생님 눈치를 봤다. 그런데 시인 선생님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야가 내 동시를 좋아하고, 책도 많이 읽어”라고 자랑했다.

   섬진강 따라 펼쳐지는 자연과 농촌 공동체의 삶을 노래해 온 김용택 시인이 꽃피는 봄날을 맞아 신작 시집 ‘그래서 당신’(문학동네)을 최근 펴냈다. “지난해 10월부터 꽃피는 계절에 내놓으려고 다듬은 시들만 모았다”는 시인의 말처럼 봄날의 열정과 허무를 담은 시집이다.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  나는 목하 진행 중)

 

   시 ‘방창’(方暢)이 시집의 핵심을 분출한다. 눈부신 봄날부터 눈발 날리는 겨울까지 계절 변화를 통해 뜨거운 생명이 고요하게 자연 회귀에 이르는 과정을 노래한 것.


   “삶이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일장춘몽이란 허무에 빠지게 하지만, 그래도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매번 신기하기만 하고, 마치 운명적 사랑을 느끼게 하는구먼.” 그래서 시집 제목이 ‘그래서 당신’인 것.    

   마침 방과 후 학교 부근에 사는 시인의 노모가 교실을 찾았다가 ‘그래서 당신’이란 시집 제목을 소리내어 읽자, 곁에 있던 시인의 부인(이은영)이 가슴을 가리키며 “어머니, (그 당신이 바로) 나여”라며 나선다. 왜냐하면 ‘내 여자’라는 시에서 시인은 ‘나는 그대가 좋답니다/ 은영아!하고 산에 대고 부르고 싶지요’라며 부인 이름을 대놓고 썼기 때문이다. “저는 이 시가 너무 좋아요”라는 부인을 가리켜 시인은 “성격이 선들선들해서 우리 엄니도 좋아해”라고 치켜세웠다. “물론 팔불출이란 말 나도 알어.”

   고향인 임실에서 30년 가까이 교사로 살면서 생태 변화를 체감해 온 시인은 지난해부터 봄꽃 피는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요즘 봄꽃은 철이 없어. 매화가 먼저 피고 나서 산수유, 살구꽃, 벚꽃이 ‘형님 먼저 피소, 나는 나중에 필라요’ 하며 순서대로 나와야 하는데, 요새는 동시다발로 피네. 아마 지구온난화 영향이 아닌가… 자연이 철이 없으니, 인간도 철이 없어지는구먼.”

조선일보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