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산 묘적사에서 띄우는 편지 ♣
밤새 오므렸던 풀꽃들
꽃잎 부드럽게 열리면서 신선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입니다.
서툰 종이 학을 접듯 산허리 눌러 오르다보면
어떤 꽃잎은 이미 제 꽃잎에 스님의 독경소리를 닮았거나
또는 담기 위해 막 꽃잎을 열고 있는 이 아침,
일찍 잠을 깬 새들이 아침을 물고 날아가고 있는데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세요
바람이 산을 열고,
물소리도 귀를 열어 스님의 독경소릴 듣습니다.
여기 잠자던 나뭇가지들은 눈부신 날 빛을 피워 올리기 위해
탯줄처럼 흔들리고 이미 피어있는 나뭇잎은
잎새에 새겨진 손금대로 제 운명의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 저기 숲 속으로 "묘적사"가 보입니다.
입구 좌측으로 조그마한 연못 가운데
좌상의 석상 하나가 물위에 앉아있네요
눈은 발아래 물을 바라보고 굳게 다문 입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아마 이승에 앉아 저승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문득 "새치 아래가 저승"이란 말이 생각나는군요
조각배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며
삶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말 말입니다.
고깃배의 판자 두께의 세 치,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요.
더 줄이면 "날숨(呼)과 들숨(吸)"의 사이쯤 되겠지요.
"삶과 죽음의 공존"
그것을 불가에서는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하던가요?
아마도 아귀다툼이 끊어지지 않긴 해도 지금 이곳에서의 삶과 무관한
"니르바나"란 없다는 말이겠지요.
절 안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군요
대웅전과 함께 요사채도 다듬지 않는 원목을 그대로 사용해
세운 기둥들이 참 정겹고 자연미의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마당 가운데는 남양주의 향토유적 제1호라는 "팔각칠층석탑"이
고찰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랜 세월을 이고 서 있습니다.
보살 님 한 분 염주 알을 굴리며 탑을 돌고 있네요
오랜 세월을 굴러온 염주 알이 유난히 반들거립니다
저만치 스님 한 분 마당에 깔린 햇살을 쓸고 있군요
보푸라기 같은 삶의 찌꺼기들이 묻어 나오고 있습니다
물소리 발로 차며 묘적사를 내려옵니다.
바람에 칡넝쿨들이 흔들릴 때마다
엉켜있던 길들이 주루룩 풀려 나오고
가슴속 그 무엇하나 털어 내지 못한 탓일까?
나무잎새에 묻어있던 불경소리는 내 몸이 잔가지를 스칠 때마다
경전(經典)을 들어 나를 후려치는데..........
그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아스라이 벼랑에 피어있는 몇 점 아픔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 묘적사: 와부읍 월문리 222번지 묘적산 아래에 있는 절로써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절
-* 雲 山 *-金澤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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