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중국 청해성 옥주봉 원정기 5 (6178m 정상에 서다)

산무수리 2006. 8. 24. 22:05
'이런 고요'- 유재영(1948~ )


하늘길 먼 여행에서 돌아온 구름 가족이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잠시 수면에 담그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 생애의 첫여름을 보낸 호기심 많은 갈겨니 새끼들이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수초 사이로 재빨리 사라진다 일순, 움찔했던 저수지가 다시 조용해졌다

고요한 곳 찾기 어렵다. 내 숨소리 들어본 것이 언제인가. 내 발소리 들어본 지 언제인가. 근처에 새가 와서 울어도 그 소리가 반짝이질 않는다. 떠도는 온갖 소리들이 가리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이 잠시도 고요하지 않다면 반성이 있을 수 있을까. 고요의 맑은 거울 속에서만 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것. 갈겨니 새끼들 튀는, 구름 잠긴 저 저수지의 고요, 빛나는 시간이다. 고요 두어 마지기 가꿀 줄 알아야 참 사람이리. <장석남.시인>




 8/6(일)

4시 출발하려던 마음과는 달리 4시에 겨우 기상.

양송이 스프 한 개를 끓여 한그릇 씩 먹은 게 오늘 아침의 전부다.

복장 갖추고 이중화 신고, 생전 처음 하는 12발 아이젠을 끼고 산행을 준비하니 5:50. 다들 자기 신는데 바쁘니 봐 주지도 않는다. 보다 못한 오선생이 아이젠 착용법을 알려줘 겨우 신었다. 서서 신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하는데 머리 쏟아져 두통 올까봐 겁나 픽스로프에 앉아 겨우겨우 신발을 신었다. 
픽스로프 달고 가야하는게 깔고 앉아 있으면 어쩌냐고 지청구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 뭐라 말 하기도 그렇다.

어제 짐 들고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오늘 정상에 꼭 가야겠다 맘을 먹는다. 그리고 일단 정상에 올라가야 하산도 할 수 있으니까.

나 혼자서 쫓아가면 그야말로 민폐인데 신선생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지 정상조에 합류하기로 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이 고소에는 좀 강한 것 같다.

오선생은 정상에 가지 않고 하산을 한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정상 공격에 지장이 있을까봐 삼가는것 같다. 산꾼이 왜 정상에 가고 싶지 않을까....

섭섭하고 안타깝고 고맙고... 만감이 교차한다. 헌데 고소도 고소지만 무릎이 염려가 되는지라 결단을 내리는게 길게 보면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선두 픽스로프 걸고 올라가다 잠시 쉬는 모습

황, 류선생이 픽스로프 한동씩 달고 선두에 올라가고 신선생과 난 그 뒤를 천천히 쫓아 간다. 숨이 찰까바 20발자국 걷고 한참 쉬고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정상이 빤히 보이는데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제법 쌀쌀하고 손도 시려온다. 다들 두꺼운 장갑으로 바꿔 꼈다. 헌데도 손이 시리다.

정상 올라가는 길은 힘이 들어 사진 찍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7시 쯤 되니 해가 떠 오른다.



해가 뜨고...

선두 두사람이 먼저 올라가 snow bar를 설치해 픽스로프로 고정을 하기로 했는데 아래서 본 것 보다는 막상 올라가보니 경사가 급하지 않아 그럭저럭 걸어 올라갈 만 했다.

픽스 로프를 걸고 가는 두사람은 무척 힘이 드나보다. 선두가 계속 바뀌면서 두통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다.

우리 두사람은 거의 맨몸으로 올라가 힘이 덜 드는데도 숨이 차고 기운이 없으니 선두는 얼마나 힘이 들까...

정상 직전 가파른 곳에서 확보를 하고 먼저 올라가 스노우바에 픽스로프를 고정해 주어 우리 두사람은 주마로 올라설 수 있었다.











정상에서

11:50 정상이다.

무척 넓은 정상에 비딱한 철탑이 보인다. 먼저 올라간 두사람은 누워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정상에 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사진을 찍고 잠시 쉬었다 하산을 한다.


하강하기

류선생이 먼저 하강을 하고 그 다음 신, 그리고 내가 하산을 하고 마지막으로 황위원장이 로프를 회수해 내려온다.

올라 올 때도 거리가 영 줄어들지 않더니 내려갈 때도 가깝게 보이던 것과는 달리 하강하는데 아주 오래 걸린다.

팔에 힘이 없어 자일 잡을 힘도 없다. 이미 속은 비어 다들 허기가 지나보다. 특히나 선등하며 힘을 많이 쓴 황위원장은 두통 때문인지 하산하면서 자주 쉰다.









하산하며

6시간 올라온 길을 하산에는 상단부는 주로 하강을 하고 하단부는 걸어 내려왔는데도 젤 후미인 내가 내려온 시간이 14:10.

C1이 빤히 보이는데도 역시나 내려갈 때 보니 정말 길고도 멀었다.

C1에서 텐트 걷고 이중화, 아이젠을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고 짐을 챙기는데 침낭을 혼자 힘으로는 못 넣겠다. 보다 못한 류선생이 도와줘 침낭을 누워서 넣었는데 들고와 뜯지도 않은 초코렛 한봉지, 동결 비빔밥 등이 내 몫이다. 정말이지 내 짐만도 힘든데 짐 쌀때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은근히 화가 난다.
내 딴에는 텐트 폴이라도 들고 가려고 했는데 짐 안 지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말에는 정말이지 화가 났다. 짐 못지면서 왜 왔냐는 식의 늬앙스.
신선생 말마따나 우리가 짐 잘 질줄 알고 같이 온건가?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명이라도 더 같이 오는게 도움이 될것 같아 온건데? 그런데도 6명 밖에 안되는 원정팀인데?
더구나 내려오면 뭐라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빨리 하산해야 한다면서 하산 준비만 하는데 배도 고프고 기운없고 새벽에 먹은 스프 한그릇으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고라?
 
오선생이 텐트 플라이를 걷어서 들고 갔지만 올라올 때보다 짐이 늘어난 황, 류선생은 텐트, 스노우바 등 오선생과 가이드가 들고왔던 짐을 추가로 들고 가야하는 사정을 뻔히 알긴 하지만 먹지도 못할 간식을 왜 그리 많이 챙겨온건지.... 
두 남자들 먼저 내려가고 뒤에 남은 무늬만 중전과 공주마마가 하산시작 (15:30).

문제는 먹은 게 없어 기운이 없어 못 내려가겠다. 특히나 거의 식사를 못한 신선생은 많이 지치나보다. 물도 거의 마시지 않으니 더 지치는 것 같다.



C1에서 BC 가는길에 힘이 빠져서...

나와 신선생은 우리 딴에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내려간다. 그나마 내려가는 길이라 고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고 짐이 무거워도 걸음은 앞으로 나가 지는게 신기하다.

점점 자주 쉬면서 내려간다. 베이스캠프까지 이렇게 멀었나 그 거리가 새삼스럽다. 빤히 보이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더구나 길 대부분이 잔돌이 많아 잘못 밟으면 기운이 없어 미끄러지니 조심해서 걸어야 하니 더 힘이 빠진다. 스틱이 없었으면 몇 번 넘어질뻔 했다.

물 마실 기운도 없고 간식도 먹을 기운이 없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게 유일한 위안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베이스

빙하지대에 드디어 도착. 그 새 빙하도 더 많이 녹아내려 길이 변해 버렸다. 간간히 날씨가 흐리고 우박도 떨어지더니 아래에는 비가 되어 오나보다. 헌데 많이 올 날씨같지는 않아겁이 나진 않는다.

빙하지대를 완전히 내려오니 연락관과 지프 기사와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 우리 두사람 배낭을 져다 주었다. 가이드가 올라갈 때 대장님이 배낭 조금 져다 준게 너무 고마웠었다며 같이 마중을 나왔단다. 휴~~

18:00 후미조도 완전히 하산 완료.


대장님과 오선생님이 축하를 해 주신다. 두분껜 정말이지 고맙고도 미안하다. 오선생님 대신에라도 열씨미 올라갔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단다.

하산 하면서도 몇 번이나 올라갈까 망설이다 그럼 자신 때문에 정상 공격에 차질이 생길까봐 결단을 내리고 하산하는데 발 걸음이 안 떨어졌다고 한다.

하루 더 C1에서 1박을 했다면 충분히 고소 적응이 되 오선생은 물론 대장님도 정상에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 했노라....

헌데 정상에 다녀온 우리는 C1의 하룻밤이 너무 지긋지긋해 빨리 내려오고만 싶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이젠 배가 너무 고프다. 대장님이 쿡한테 부탁한 김치 넣은 라면을 먹는데 정말이지 꿀맛이다. 대장님도 생전 안 드시는 라면을 아침부터 내리 세끼 째 먹는데도 맛이 있단다.
대장님께 어제 늦은시간 BC내려오는데 힘들지 않으셨나고 하니 안 그래도 힘이 들어 무릎이 아프시단다. BC에서 담배 피우려는 가이드를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큰일 난다고 못 피우게 하시더니 하산해서는 바로 흡연모드로 돌아갔단다. ㅎㅎㅎ

베이스가 까마득하게 멀어 우리가 안 보이는 줄 알아는데 쌍안경으로 계속 지켜보는데 선두가 길었다 짧았다 계속 바뀌더란다. 그리고 선두 올라가고 나서 한참 만에 후미가 올라갔다고 너무 느린거 아니냐고 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올라갔는데 아래에서 보기엔 긴 시간으로 느껴지나 보다.
그리고 우리가 정상에서 너무 오래 있었단다. 정상에서 그렇게 오래 있으면 안되는 거란다. 갑자기 날씨가 나빠질 수도 있는 예측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란다.

그동안 날씨가 맑아서 산행에 지장이 없었는데 점점 날씨가 흐려지나보다.

이쪽은 9월부터 눈이 내려 5월까지 눈이 내린다고 한다. 날씨의 변수가 많아 막상 성공률은 30% 정도라고 한다. 8월이면 눈이 가장 적을때이다. 한여름 등반은 많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는 직업 특성상 여름이나 겨울 밖에 원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다음에 프랑스팀 4명이 들어올 예정이란다.
막상 산행이 끝났으니 여기 있지말고 나가자고 제안하신 대장님.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이곳에 있느니 경비를 추가로 내더라도 개운하게 지내는게 어떠냐고 하신다.
베이스에 남아 계시는게 무척 지루하셨나보다.


수고한 팀들과 단체사진


성공 보너스를 사양하는 모습

그동안 수고한 팀에게 감사의 팁과 원정성공 보너스를 지급하려니 팁을 받는게 익숙치 않는지 매우 쑥스러워 한다. 아무튼 우리가 거의 먹지 않아 쿡은 별로 한 일은 없었을거다. 그야말로 굶어가며, 약 기운으로 산행을 했으니 말이다. 1년동안 먹을 약을 여기서 다 먹은것 같다.
라면을 후다닥 먹고 짐도 정리 하기도 전에 jeep에 짐을 싣고 사람들은 2차로 나누어 타고 베이스를 빠져 나왔다.
우리가 타고 온 봉고는 아직 야영 일정이 남아있어 없는 관계로 지프 두대에 나누어 타고 거얼무를 향해서 간다.

들어올 때는 그리 먼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멀다.
노루도 한마리 보고 들쥐 등이 여기 저기서 나타난다.
거얼무 가는 동안 자전거 트레킹, 도보 여행 팀 등이 간간히 보인다. 이곳 청해성이 자전거 트레킹 연습하기 좋은 곳이라는 가이드.
고소 때문에 조심해서 온 길을 나갈 때는 순식간에 지나친다. 곤륜산 입구, 우리가 점심먹은 식당을 지나가니 감회가 새롭다.


샘터에 들려 잠시 쉬는데 우리가 탈 라싸로 가는 천장열차가 지나간다.

빙하 녹은 샘터에서 다시 물을 뜨고 거얼무로 간다. 황선생인 이 물을 먹고 체한것 같다고 입에도 대질 않는다.
해가 지고 밤 10시 경 거얼무 호텔에 도착.
일단 씻고 11시에 모여 원정성공 축하주를 마시자고 한다.


하산 후 축하주 마시기-간식, 부식으로 들고 갔다 그대로 들고온 것 술안주로... 황선생 얼굴이 제일 많이 탔다.

정상에 올라간 사람은 올라간 대로 못 간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못 올라간 사람은 그 나름대로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그런 기분이다. 그래도 네팔 원정때 초장에 submit를 포기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기분좋게 축하주를 마시고 내일 아침 모닝콜은 아침도 굶고 11시에 하기로 하고 꿈나라로.....
길고도 힘든 그러나 보람된 하루였다.

 참고로 중국 원정할 팀을 위한 한마디.


1. 옥주봉의 경우는 8월이 눈이 가장 적을때이다. 스노우바까지는 필요 없고 아이스 스큐류를 준비하면 될 것 같다.

2. 식사문제로 고생을 많이 했다. 미리 준비를 해서 직접 취사를 하는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3. 네팔과 달리 포터가 없어 고소에 배낭 무게로 인한 부담이 많이 있었다. 특히나 우리팀처럼 여자가 2명이라 짐 질 사람이 부족한 팀에게는 이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인다.

4. 간단한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를 배우고 가지 않아 이것도 답답했다. 영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저 손짓발짓과 웃음으로 때우는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