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중국 청해성 옥주봉 원정기 4 (BC~C1)

산무수리 2006. 8. 24. 22:01
'원두막(園頭幕)'-김종삼(1921~84)



비 바람이 훼청거린다

매우 거세이다.



간혹 보이던

논두락 매던 사람이 멀다.



산마루에 우산

받고 지나가는 사람이

느리다.



무엇인지 모르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

머지않아 원두막(園頭幕)이

비게 되었다.

최고의 집은 원두막이다. 가식이 아니다. 참이다. 미학적으로도 그렇고 풍수적으로도 그렇다. 참이다. 그 집은 건설회사가 지을 수 없다. 명령이 지을 수 없고 시기와 오만이 지을 수 없다. 슬픔도 기쁨도 지을 수 없다. 오직 담담(淡淡)한 마음과 담담한 손길과 조용한 말들이 모여서 지을 수 있는 집이다. 그 집이야말로 '무엇인지 모르게 평화'를 주는 집이다. 이즈음 창씨개명한 많은 아파트와 주소들(대볼까?)과는 다른 집. 그런 집에 투기해야 하지 않을까? 위선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참 부자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산수화에 쌉쌀한 평화가 깃들었다. 원두막 주인은 어딜 가시었을까? <장석남 시인>
 

8/4(금)


이뇨제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밤에 한, 두 번씩 깼단다. 밤에 속이 좋지 않아 나도 한번 일어났는데 류선생은 사태가 심각해 설사를 하고 구토까지 했나보다. 고소에다 음식과 물이 입에 맞지 않아서 인 것 같음. 오선생도 열도 나고 두통에 시달림.

대장님도 입맛을 잃고 현지식을 못 먹겠다고 하고 늘 씩씩하던 황위원장 마저도 뒤늦게 탈이 나 식사는 손도 대지 못함.

아마도 아침에 나온 우유가 몸에 맞지 않아서 인 것 같음. 준비한 소화제가 동이 날 지경임.

원래 계획은 오늘 C1에 올라가 고소 적응을 한다고 했는데 BC에서도 거의 누워있다 시피 했음. 특히나 대표선수인 류선생이 퍼진걸 보고 하산을 심각하게 고려하기까지 했음.


 
우리가 가야할 옥주봉이 빤히 보인다. 저 만두 꼭대기에 올라가야 하는데...

 
식사는 못하고 멜론으로 속을 채우는 중

 
건너편 산에 올라간 황, 오선생의 모습

 
우리 베이스 캠프가 내려다 보임

 

공주와 황제 그리고 왕자네 황족 패밀리?

오후 좀 정신을 차리고 신선생과 함께 뒷산 산책 하기로 함. 그나마 움직여야 내일 산행에 고생을 덜 한다고 함.

늘어졌던 류선생도 일어나 움직이고 황, 오선생은 건너편 산에 다녀왔는데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고 함.


 
점심도 죽과 싸 가지고 온 반찬먹기

저녁 무렵 다 같이 빙하지대까지 다녀옴. 그나마 컨디션이 조금씩 나아져서 다행임. 쪼그리고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나니 다리 저린게 오래 간다. 산소 부족 증세인것 같음.
식사는 여전히 못해 아예 반찬을 하지 말도록 하고 밥이나 죽만 끓여 달라고 해 우리가 준비한 반찬으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연명하고 있음.
거의 다 누룽지로 연명(!) 하고 있음. 기운없어 내일 산행이 걱정이네...
 


 

 
빙하지대에서


 
천지처럼 물이 고여있는 곳이 군데 군데 있다.

내일은 드디어 C1에 도전하는 날.
원래 오늘 C1에 올라갔다 오기로 했는데 다들 컨디션 난조로 내일 막바로 C1에서 야영하고 그 다음날 정상공격을 해야 한다.
대장님은 C1 까지만 올라갔다 오신단다. 
 

8/5(토)


8시 기상 해 아침을 먹고 C1으로 가는날.

아침으로는 우리가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서 밑반찬으로 먹음. 대장님도 중국 음식을 못 드시겠다고 함.

10:00 C1에서 야영할 준비를 하고 출발하려니 짐이 한가득이다. 침낭, 오버복, 이중화, 아이젠, 장갑, 모자, 하네스, 카라비나, 주마, 간식, 수통.....
침낭을 옆으로 넣어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는 넣을 수가 없다. 오선생이 도와줘 있는 짐을 무사히 배낭에 넣을 수 있었다. 신선생은 배낭이 나보다 조금 큰 죄로 코펠을 지고 올라가야 한다.
내 배낭이 제일 가벼운데도 메고 가기 벅차다. 더구나 배낭무게에 고소까지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미리 숨이 차다.

대장님은 C1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해 5인용인 텐트 한동만 들고 가기로 함.


연락관과 후미 가이드가 픽스로프를 한동씩 C1까지 올려다 준다고 함. 로프 무게만 해도 5K씩 된다.
고소 적응된 사람은 2시간 이면 C1까지 갈 수 있다고 함. 5시간 내에 도착 못하면 도중 하산 해야 한다고 함. 가이드 정경원씨가 텐트를 져다 주기로 함. 사실 가이드는 C1에 안 올라가도 그만인데 짐을 들어다 준다니 너무 고맙다.
우리가 짐 질 사람이 부족해 사양할 형편이 아니다.

 
짐을 챙기며

 
출발 전 기념촬영
 

오선생은 무릎 상태가 아직 회복이 덜 되어 무거운 짐을 지면 안되지만 짐 실 사람이 없다. 네팔과 달리 이곳은 포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배낭 무게와의 싸움이 될 것 같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책임감으로 연락관을 바짝 쫓아가는 황위원장과 류선생. 대단한 정신력이다. 난 마음과는 달리 꼴지로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하도 힘들어 하니 대장님이 좀 져다 주신단다. 너무 처져서 미안함을 무릎쓰고 10분 정도 배낭을 바꿔 맸나보다.
헌데 제일 가벼운 내 배낭을 진 대장님 왈, 당신 평생에 이렇게 무거운 배낭은 처음 져 본다며 어깨 근육이 찢어져 나가는것 같다며 다시는 배낭 바꾸자는 말씀이 없으시다.
그래도 난 배낭을 잠시 바꿔 매서인지 좀 가볍게 느껴진다. 아마 고마움 때문이이라.....


 
고소에 배낭에 대한 무게때문에 퍼져 버리다...

 
식사를 거의 못한 신선생은 더욱 힘들었을거다...

 가이드는 물이 진작에 바닥 나 목이 너무나 말라 갈증이 해소될 때 까지 누워있다 오느라 더 늦어졌다고 함. 체격도 큰데다 산행경험이 거의 없어 무척 힘들어 함.

물을 얻어먹으려고 올라오면 우리가 올라가 버리고 해서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고 함.

 
대장님이 한발 앞서 올라가시더니 되돌아 내려와 가이드 텐트를 들어다 주심.

 
배낭 무게와 고소 때문에 완전히 지쳐버린 오선생.

 
먼저 올라간 사람들도 고소 때문에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다

 
힘들어 하는 오선생 마중 나온 신선생. 과일만 먹어 과일공주라는 별명까지 얻은 신선생은 나보다 한발 앞서 올라가더니 내 배낭을 받아주었다. 정말이지 정신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15:30 후미인 가이드까지 겨우 도착. C1의 높이는 5700M.
연락관과 후미담당은 진작에 내려가 버리고 미리 올라와 휴식을 취하던 황, 류선생은 고소 때문에 힘이 든데도 텐트 설치하고 물 떠와 끓이고 식혀 가면서 식수 만드느라 분주하다. 늦게 도착한 우리들은 너무 힘이 들고 두통 때문에, 그리고 고소가 올까봐 겁이 나 구경만 해야 했다.

기념사진 찍고 대장님과 가이드는 해 지기 전에 하산.


 
텐트 설치

 
대장님 하산 하기 전 기념촬영
 

아침 누룽지 한 그릇만 먹고 이 시간까지 있으니 정말이지 허기져 더 힘이 들었다.

텐트에 누워있다 저녁에 남은 누룽지를 끓이고 대장님이 져다 준 스팸 한개를 구워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헌데 다 좋은데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 혹시나 해 물어보니 다들 머리가 너무 아픈데 자신만 아픈줄 알고 다들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diamax와 타이레놀을 한알씩 먹음.
걸을땐 배낭 무게와 올라가는 부담 때문에 두통도 오지 않았는데 막상 오늘 산행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정말이지 많이 아팠다. 약을 먹고나니 그나마 두통이 좀 가셨는데
오선생은 그래도 두통이 낫질 않아 타이레놀 추가로 2알을 더 복용.


해가 있을땐 덥더니 해가 지니 추워진다. 5인용 텐트라지만 동계 침낭을 펼치니 무척 비좁다. 지그재그로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한다. 오선생은 두통 때문에 거의 잠을 못자는 것 같다. 하긴 대부분 깜박 잠이 들지 깊은 잠을 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내일 정상 공격에 대한 부담감에 고소와 두통 때문에....

눈발이 날리는 것 같더니 다행이 더 내리지는 않는 것 같다.

내일 4시부터 산행을 해야 한다는 연락관.

이렇게 힘든줄 알았으면 원정에 오지 않았을거라는 신선생.
제일 높이 올라간 곳이 1월에 간 한라산이 전부인데 그때보다 산행이 힘이 덜 든다고 해 그말만 믿고 왔는데 완전히 속았다고 한다. 더구나 처음 원정을 가는지라 등산학교 동문들이 이런 저런 선물을 많이 받고 와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된다고 한다.
날 보고 정상에 왜 가냐고 한다. 정상에 올라가야 하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빨리 올라가면 빨리 하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상에 꼭 올라가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원정이라고 와서 정상에 못 다녀오면 상당히 마음이 찜찜하다.
또한 원정에 성공하면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용서가 되지만 실패하게 되면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분위기도 안 좋아지고 나머지 관광 일정에도 우울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더구나 C1 까지 올라오는게 너무 힘들었기에 그게 아까워서라도 정상에는 꼭 올라가야 겠다고 결심해 본다.
 


 
두통때문에 제일 힘들어하는 오선생

베이스와 무전을 취해보지만 우리것도, 연락관이 주고 간 무전기도 대답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내일 산행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 본다. 다행히 두통은 없다. 크게 춥지도 않고. 여럿이 끼어 자니 맘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는게 좀 불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