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시민마라톤대회가 열리는 일요일은
'눈이 내리고 영하8도의 강추위가 예상된다...ㅜㅜ'라는 핸들님의 한줄 메모는
다행히 최저기온 영하 4도라는 일기예보에 안도하며 잊어버리고,
토요일 저녁 TV 연속극 소문난 칠공주, 연개소문, 대조영을 내리 본 다음에야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밖에 엄청 많은 눈이 내리니 일어나 보란다. 낼 마라톤대회 못하겠다며.
한겨울에 마라톤대회 참가할 때는 겨울날씨가 영하가 되거나 눈이 내리는 것은 당연하며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참가신청한 것 아닌가?
깨우는 것을 귀찮아 하며 내다 보지도 않고 계속 잠을 청하였다.
순간 대회장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풀 뛰나 하프 뛰나 하는 갈등이 온다.
한번 작정하면 포기하지 않는 성미에 작년의 강추위에도 참가하였는데,
오늘도 일단 참가하여 대회장 사정을 보아 하프만 달려야겠다고 마음잡고 컴을 켰다.
대회게시판에는 대회 진행 여부를 알고자 하는 참가자들이 아우성이다.
연기하자는 주장도, 지방인데 출발해야할지 빨리 답을 달라는 등 난장판이다.
주최측은 묵묵부답.
마라톤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 없이 대회장으로 가는 것이 상책이다.
경험상 눈 비가 많이 내린다고 취소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일단 연기되면 정말 수습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가 생기고
이런 골치거리 떠 안느니 웬만하면 강행하는 것이 주최측이다.
다행히 낮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간다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챙긴다.
상의는 나시, 긴팔, 윈드브래킷, 하의는 러닝팬츠, 쫄바지, 발가락 양말, 털모자, 안면가리개, 장갑, 썬글라스로 준비 끝이다.
발톱이 아홉개나 망가진 발가락에 테이핑하는 것도 잊지 않고…
아침식사는 평소 식사량의 반도 안되는 도레미탕으로 해결했다.
도레미탕이나 후라이드 닭모가지는 아무리 먹어도 선천적인 내 음치를 고치지 못한다.
일찌감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과천에서 합류하여 함께 가기로 한 과천마라톤 회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폭설로 차량운행 못하니 지하철로 가잔다.
아직 출발준비가 안되었다고 하기에 각자 가자고 하고 혼자서 인덕원역- 금정역- 신길역 경유하여 시작 1시간 전에 여의나루역에 도착했다.
역 화장실 들러 작은 것, 큰 것 모두 처리하고 입 주변에는 동상을 대비하여 바셀린도 발랐다.
대합실에서 최대한 꿈지락대며 번호판도 달고 다른 달리미들 이야기도 귀동냥한다.
40분전에 출발하여 대회장에 도착했다.
아직 선수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수변마당은 완전히 눈밭인데 발을 선뜻 내닫기 어려울 만큼 쌓인 눈두께가 만만찮다.
난로를 피워 놓은 텐트에는 주최측이나 몇몇 선수들이 어깨를 잔뜩 움추리고 웅성대고 있다.
한쪽에서는컵 라면이나 커피 등을 제공하는 모양인데 왠지 어설프다.
본격적인 장이 서기에는 이른 시간인 탓이다.
그런데 광진교 방향은 주로 정리가 덜 되어 풀 코스는 하프코스를 두 번 왕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같은 거리를 두 번 달리는 것은 힘이 훨씬 더 든다.
힘들면 하프만 뛰고 그만두어야지 하면서도 올해 아시안 게임에서 네 번이나 왕복하는 중계방송을 보았던 터라 이까지것 하며 다소 위안을 삼는다.
신청자는 3600명인데 대략1300명 정도 모인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할 사람들이 날씨 탓으로 돌리며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것 같다.
100회째 참가자 3명에게 미리 완주패 증정하고 징소리, 폭죽과 함께 드디어 출발이다.
날씨가 포근한 탓에 눈이 많이 녹아 주로가 물구덩이다.
이리저리 피해 보다 에라 곧 포기해 버린다. 철퍼덕 철퍼덕 물탕튀기며 되는대로 달려나간다.
추월해 가는 주자가 옆에서 튀기는 차가운 물탕세례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대회 때마다 초반 오버로 힘들게 달리던 터라 오늘은 10Km까지는 천천히 달리자고 다짐한다.
다짐과 상관없이 연습부족에다 술에 젖은 몸은 천천히 달릴 수 밖에 없다.
제설이 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차가운 물구덩이다.
튀어 오른 물로 종아리는 차갑고 운동화 무게까지 더해졌으니 발걸음은 무겁다.
노들길 고가아래는 다리에서 떨어지는 물세례가 사납다.
이러저리 피하면서 달려야 하는 것도 신경쓰인다.
반포지구 너른 공원에 펼쳐진 설경은 일품이다.
자연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수도 없이 있으니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먼데 북한산, 용마산도 어슴프리하게 눈에 덮혀 장관이다.
잔뜩 구름을 먹은 하늘에서는 간간이 눈발도 날린다.
9Km지점에서 물 한잔 하고 미끄러운 언덕길 조심하여 가니 제설차가 앞을 막는다.
옆으로 피해 조금 더 달리니 성수대교 근처 하프반환점이다. 57분. 예상대로 달려왔다.
질척거리는 운동화가 이제는 발끝이 시립다.
눈왔을 때 달리는 겨울용 런닝화는 왜 없을까 쓸데없는 잡념하다가 이 고생하지 말고 하프에서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지점이 눈에 들어 온다. 하프골인지점이다. 1시간 57분.
생각은 하프로 골인인데 다리는 어느덧 풀코스 반환점을 돌고 있다.
풀배번 달고 하프로 골인하기가 민망했던 탓이리라.
반환점 코밑에 진열한 물 한모금 마시고 바나나 한 개 집어 들었다.
다시 하프코스 반환점으로 갈 생각하니 눈 앞이 아득하다.
가다가 힘들면 되돌아 올 작정으로 같은 페이스로 달렸다.
출발점에서 몇 백미터 안되어 앞에 날씬한 다리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주자가 동반자와 함께 폴짝폴짝 가볍게 달리고 있다.
주로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
아, 이 여자가 김영아구나. 혹시 사진발이라도 받을 요량으로 뒤따라 붙으니 쉬임없이 ‘힘내세요’ 하며 주자들을 격려한다.
옆에서 보니 사실 실물은 사진보다 못하다.
1 Km 정도 따라가다 ‘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앞질렀다.
동작대교지나 26 Km지점에서 초코파이 하나 먹고 조금 가니 갑자기 달리기가 싫어졌다.
배도 고프고 눈구덩이에 빠지는 것도 싫고…되돌아가면 31Km LSD 한셈치고 오늘은 여기서 끝낼까 망설이며 스트레칭하는데 다시
20미터 전방의 화장실앞에서 기다리며 계속 오라고 손짓한다.
다시
힘내라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에 취해, 향긋한 그녀의 냄새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르고 달렸다.
다시 눈발이 거칠어 지며 사정없이 안경을 덮는다. 주로가 희부연하게 보인다.
덕분에 물탕은 더 튀기고 찝찔한 액체가 입술을 적신다.
나의 쌍터널에서 나온 진액이 눈녹은 물과 섞여 짭조름하게 입속으로 들어온다.
훌쩍 마셔버리고 동호대교 아래 31Km 지점에서 따끈한 오뎅국물 한 컵으로 입가심했다.
가슴이 따듯해진다. 이럴 때마다 자봉하는 분들께 한없은 고마움을 느낀다.
국물에는 둥근 오뎅알이 달랑 두 개 들었다. 두 개… 러닝팬티위에 쫄바지 하나 입었으니 굵은 감자만한 내 거시기 두 개는 어느덧 탱자만하게 줄어 들더니 이제는 땅콩알이 되었는지 감각도 없다.
또 다른 거시기는 번데기가 되어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내밀지 못하는것 같다.
바짝 붙어 달리는데 반대편 주로 뒷편에서 ‘나뭇꾼님 파이팅!’하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파이팅!’ 으로 답하고 생각하니 “심봤다~”라고 소리치던 애주가님 목소리 인듯.
사실 하프와 풀이 섞인 반대편 주로에서 애주가 아는 얼굴 찾으려고 이러저리 눈알 굴려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눈이 오면 쉽게 대회포기하는 애주가 회원님의 현명함이 부럽다.
다리가 생명이라는 마천님의 충고도 잊어버린 내가 고집스러울 뿐이다.
33 Km조금 지나서
이대로 달리면 서브4 할듯 말듯하다. 어드덧 63빌딩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 온다.
이제 5~6Km만 가면 작년에 이은 악천후에서 또 하나의 풀완주 기록을 쌓는다.
이제서야 하나 둘 추월하는 주자도 생긴다.
37키로 쯤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녀… 이렇게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아!
줄곧 내 뒤에 있던 4시간페메는 37Km 마지막 급수대에서 합류하더니 39Km 부터는 나를 추월하여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간다.
페메따라 뛰던 3명중 100회마라톤회 주자 2명은 이내 뒤쳐지고 나에게도 추월당한다.
오늘 50회 완주한다는 여자 (나중에 홍현분이라른 것을 출발점에 건 현수막 보고 알았다) 한 명만 줄기차게 따라붙는다.
40키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남은 거리를 12분이내에 달리면 서브4이다.
이를 악물고 달린다. 4시간 페메가 시야에 들어온다.
골인200 미터 전부터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화려했다. 구간기록 12분03초.
3시간59분 54초. 극적으로 서브4를 달성했다.
마음은 서브3한 것보다 뿌듯했다.
금년 마지막 참가대회, 중도 포기할까 망설였지만 예쁜
오늘 하루 그녀는 내게 참으로 예쁜 천사였다.
대부분의 달리미들은 중앙일보대회를 마치면 올 농사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겨우 풀 9번 완주하고 건빵이 하늘을 찌르는 나뭇꾼은 ‘100회 마라토너는 금년 마지막 풀코스 대회가 끝나야 올 한해 농사 마무리한다’라고 감히 말한다.
순두부에 막걸리 한 컵 마시고 컵라면까지 먹었다.
그래도 심마니님은 보이지 않는다.
탈의실에서 옷갈아 입고 있는데 옆에 두분.
2003년 마라톤 시작하여 금년 동마에서 100회 뛰고 이번이 116번째라는 38년생 대구노익장,
이에 질세라 120 몇회 달렸다는 37년생 서울노익장 입씨름을 들을만하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다. 이제 100회에 도전하는 방법을 터득한 내게는 하늘 같은 대선배들이다.
존경스러울 뿐이다.
마음은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홀가분하다.
12월17일 한강시민마라톤대회를 마지막으로 올 한 해 마라톤2년차를 마무리 했다.
아듀! 마라톤2006년!
새해에는 본격적인 100회 사냥이다.
[사진 위로부터] 나뭇꾼, 심마니, 양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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