빕스에서 밥먹기 '새벽 하늘'- 정희성(1945~ ) 감나무 가지가 찢어질 듯 달이 걸려 있더니 달은 가고 빈 하늘만 남아 감나무 모양으로 금이 가 있다 고구려 적 무덤 속에서 三足烏 한 마리 푸드덕 하늘 가르며 날아오를 거 같은 새벽 어스름 즈믄 해여 즈믄 해여 잎 다 떨군 겨울나무 사이 달 뜨면 그것, 한 풍경입니다. 달 ..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1.18
육군 엄마 노릇하기 '불면'- 강정(1971~ ) 오래 전에 본 적 있는 그가 마침내 나를 점령한다 창가에서 마른 종잇장들이 찢어져 새하얀 분(粉)으로 흩어진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살냄새는 이름 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린 꽃잎을 닮았다 낮에 본 자전거 바퀴살이 허공에서 별들을 탄주하고 잠든 고양이의 꼬리에선 부지불..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1.16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 '사과 한 알'- 홍영철(1955~ ) 책상 위의 사과 한 알 어디에서 왔을까? 이 잘 익은 사과 한 알은. 사과는 익어서도 말이 없다. 참 많은 먼지들을 밟으며 걸어온 가을 아침 그러나 가을의 얼굴은 깨끗하다. 모든 잠에서 일제히 떨어져나온 꿈들이 싱그러운 공중을 날고 있을 때, 책상 위의 사과 한 알 누가 이 .. 산 이외.../마라톤 2006.10.31
나름대로 의미가 있던 춘천마라톤 참가기 (2006.10.29) '나비의 문장'- 안도현(1961~ ) 오전 10시 25분쯤 찾아오는 배추흰나비가 있다 마당가에 마주선 석류나무와 화살나무 사이를 수차례 통과하며 간절하게 무슨 문장을 쓰는 것 같다 필시 말로는 안 되고 글로 적어야 하는 서러운 곡절이 있을 것 같다 배추흰나비는 한 30분쯤 머물다가 울타리 너머 사라진다 .. 산 이외.../마라톤 2006.10.30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1922~2004)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0.27
함께 달리자~ `국경`- 송재학(1955~ ) 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햇빛이다 풀을 뜯어 먹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는 햇빛이다 매일 갈기를 바꾸어주는 햇빛이다 능청스런 건 말이나 햇빛이나 닮았다 헹구어내지 못하는 내 빈혈만 애써 갈기 사이에서 햇살을 가려낸다 호수에 거꾸로 박힌 설산이 지금 호수를 달래는 중인 것..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0.02
등산은 나의 힘! (금수산 산악마라톤 참가기, 9/24) 나를 위로하는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 산 이외.../마라톤 2006.09.27
플라스틱 머니 '야채사(野菜史)'- 김경미(1959∼ )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05.20
오늘은 나도 빈이 되어 달렸다(음성 품바 마라톤, 4/23) 이원규(1962∼ ) ‘속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인간들의 동화책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들이 바다에서 경주를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마저 인간의 생각일 뿐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비닐하우스 출신의 딸기를 먹으며 생각한다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 산 이외.../마라톤 200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