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와 인연이 많은 성 니콜라스 성당
헌데 이곳 다리를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옛날 성에서 뛰어 나온듯한 경치가 볼타바 강을 따라 펼쳐진다.
거리의 음악가도 많고 다리의 수많은 조각들, 그리고 인파들.
지금이 여행 비수기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날씨 좋으면 그야말로 밀려서 다니겠다 싶다.
카를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우리 팀
조각품은 그야말로 건성으로 보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만든 도자기, 미술작품, 악세서리 등을 구경만 해도 즐겁다.
강을 따라 펼쳐진 풍경도 진짜 그림같다. 사람들이 프라하 하면 탄성의 신음소리를 내는 기분도 이해가 간다.
심심이도 이곳에서 그냥 실종되면 좋겠다는 농담아닌 농담을 한다. 헌데 이곳에 오래는 아니라도 다만 몇 달 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배회를 하면 참 좋겠다 싶다. 그러려면 취직이라도 해야겠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니 문제네....
과거로 온듯한 카를교 입구
온갖 공예, 미술,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다리 중간에 죄를 사하여 준다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조각도 만져보고 사진도 찍고 다리 끝에 가니 상점이 있어 이것저것 구경을 해도 뭘 사야 하는지 도동 모르겠다.
집합시간이 지났는데도 몇 명이 오질 않는다. 우린 힘이 들어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고 논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볼타바강의 모습
거리의 악사-본인의 CD도 팔고 있었다
반대편 다리 끝의 탑.
다 모여서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를 보러 간다.
이 시계는 해와 달, 삶과 죽음 등을 상징한 조각이 일품이고 매시 12제자 인형이 잠깐 나온다.
정시가 될 때까지 자유시간이다. 우린 추워 그 앞 노천카페에 앉아 핫와인을 한잔 마셨다. 그리고 정시가 되어 시계를 보고 근처의 교회, 동상, 노점상 등을 관람하고 다시 모여 식사를 하러 간다.
정시가 되어 12성자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다
식사를 하러 가는 곳은 포도주 저장고였다는데 반지하로 매우 운치가 있다. 더구나 그곳 종업원이 매력이 있다. 잘생겼다고 하니 우리 가이드 왈, 이곳은 종업원을 미모로 뽑는다나 어쩐다나....
오늘 저녁 메뉴는 양갈비란다. 스프도 일품이고 아주 맛이 있게 생겼다.
헌데 급하게 마신 와인이 내 속을 뒤집는다. 앉아 있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의자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는데 계속 속이 불편하다.
양고기를 먹었던 포도주 창고를 개조해 만든 식당
저녁식사를 하고 신시가지로 간다. 쇼윈도우가 아주 화려하다. 바츨라프 광장을 그냥 휙 지나치고 면세점에 우릴 데려간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곳으로 호박, 가네트 등의 준보석을 주로 취급하나보다.
이곳을 나와 버스타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야간 옵션 관광 희망자를 모집한다.
트램(전차)를 타고 체코의 맛있는 맥주 한잔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는데 다들 피곤한지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경치도 피곤 앞에서는 매력을 발하지 못하나보다.
프라하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두오 호텔로 갔다. 여태 잔 호텔 중 그중 큰 호텔인가보다. 시설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문제는 너무 좋아 라지에터가 없고 중앙난방이라 옷을 말릴 곳이 없는 게 옥의 티.
아쉬운 하루가 또 지나가네....
12월30일(목)
7:15 출발.
동독에서의 아침은 요구르트가 있어 너무 즐겁다.
큰 공기로 하나 가득 퍼다 먹으면 진짜 기분이 짱이다. 행복해 진다.
빵도 여러 가지라 뭘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배가 부르니 마음도 든든.
여행길은 고행길이라더니 이번 여행은 완전히 살찌기 여행이다.
먹고, 차 타면서 자고, 내려서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자고...
오늘은 폴란드로 넘어가는 날.
원래 일정은 오늘 오후 아우슈비츠를 관람하는 건데 오늘은 이 수용소가 휴관이란다. 그래서 내일 일정인 소금광산을 오늘 관람하고 내일 아우슈비츠를 본다고 한다.
국경 근처인 체스키데신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곳 점심은 가이드가 제일 싫어하는 점심이란다.
헌데 각오(!)를 해서인지 못먹을 정도는 아니다. 단지 호텔 분위기가 좀 그렇긴 하다.
12:30~13:20 식사 후 출발.
크라카우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체코 국경을 넘기 전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간다.
국경 검문소를 통과 하는데 체코를 넘어올 때 보다는 시간이 좀 덜 걸렸지만 아무튼 이곳에서도 좀 지체를 했다.
그리고 폴란드로 들어서니 길이 좁은데 차가 의외로 밀려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러다 소금광산 문 닫으면 어찌되나 우리가 다 걱정이 된다.
크라카우에 해가 꼴딱 져서 도착.
바벨성 근처에 가이드가 우리 차를 보고 막 쫓아온다.
급히 태워서 소금광산을 향해서 간다.
헌데 이쪽에서 신망이 있는 가이드인가 보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 준다. 우리가 마지막 관광객인 것 같다.
배도 고프지만 우선 관광을 할 수 있는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부지런히 간다.
이 가이드, 폴란드에 대한 유인물을 앞뒤로 한 장 채워서 나누어 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이곳에 다 들어있단다. 이 가이드는(이름이 기억 안나네...) 한국외대를 나와 유학왔다가 이곳에 눌러앉았나보다. 대부분 가이드가 실패한 유학생들이라고 한다.
크라카우에 한국유리 공장이 있단다. 그리고 폴란드에 한국 교민이 아기까지 24명이란다.
그 중 가이드가 가능한 사람이 몇 명 안되 성수기에는 그야말로 회사 휴가 내 가면서 가이드를 해 준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빌련 옛날 여행 안내서를 보니 소금광상에 가서 폴란드어 설명을 해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다고 씌어있다. 한국인 가이드를 쓴지 불과 몇 년이라고 한다.
소금광산에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중에서 소금등 이야기가 재미있다.
소금 중 고급으로 크리스탈 소금이 있다고 한다. 이건 빛이 투과를 해 이 안에 전구를 넣으면 소금등으로 아주 분위기가 그만이란다.
가이드의 고모께서 이 등이 너무 마음에 들어 가져가고 싶어해 너무 무거우니 본인이 귀국할 때 가져다 드리기로 했단다. 그래서 특별히 큰 소금등을 특별제작해 진짜 무겁게 들고 갔단다.
헌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소금등이 장마철에 다 녹아버렸다고 다신 사오지 말라고 했단다.
2002월드컵 시합 때 우리나라와 붙어 3:0으로 패한 폴란드. 이 나라의 축구 열기도 대단하다고 한다. 그때 폴란드 관광 온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행세를 하면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단다. 그래서 지나다니면서 ‘스미마센’하면서 다녔단다.
더 재미난 사실, 친구 중 축구선수 두명을 귀국할 때 한국 구경도 할겸 데리고 갔단다. 내심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우쭐한 마음도 들었단다.
헌데 생각과 달리 이 폴란드 친구들이 놀래는 부분은 전혀 다르단다.
영동대로 8차선의 그 넓은 길이 차가 막혀 꼼짝 못하는걸 너무너무 신기해 하더란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의 양념통닭과 만두를 너무너무 좋아한단다. 폴란드에도 만두를 먹는데 한국만두에 비하면 그건 만두도 아니란다.
폴란드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은 독일, 소련, 체코, 슬로바키아다. 그래서 인지 폴란드는 1756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분할점령을 당했고, 1918년 지도에서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 1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소련이 분할하였다. 그후 2차 세계대전 후 우여곡절 끝에 1989년 현재의 폴란드가 탄생했다고 한다.
폴란드 특산품은 소금외에도 호박이 있다고 한다. 이 소금은 러시아, 덴마크, 폴란드 등이 발틱해에서 캐 내는 것이라고 한다.
소금광산은 지하 135m에 들어가 소금을 캐 내는 것인데 이건 그곳이 아주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증거다.
소금광산은 특히 알러지 환자에게 아주 좋다고 한다. 실제로 이 광산 지하에는 알러지 치료 병원까지 있다고 한다.
소금광산 안의 소금으로 만든 성당
은은한 불빛이 인상적인 소금등 앞에서
우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혀 새로운 경험인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을 135m내려간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한층, 한층 내려가면서 순전히 소금으로 만든 여러 조각들, 그리고 성모상, 그리고 앞권은 소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당이다.
실제로 이 성당에서는 주일마다 미사를 보고 이 성당을 빌려 결혼식도 치를 수 있다고 한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는 소금 샹들리에, 그리고 보도블록, 벽. 조각품 등이 다 소금이다.
특히나 카톨릭 신자인 홈지기와 심심이는 그 감동이 두배일 것 같다.
우리가 마지막 팀으로 관광을 한 덕분(!)에 촬영권을 구입 해야 하는데 공짜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구경을 다 한 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배도 고프고 피곤하다.
엘리베이터는 깜깜한 속에 덜컹거리며 올라간다. 순간이지만 오싹한 기분이다.
다시 땅 밖 세상으로 나왔다. 이젠 밥을 먹으러 간다.
이곳 폴란드가 돼지를 많이 키운단다. 이곳에서는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즐거 먹고 천연사료를 먹어 특히 맛이 좋다고 한다.
프라하 포도주 창고 비슷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늘 메뉴는 우리식 돈가스와 감자 샐러드, 야채, 커피 등이 나오는데 맛이 괜찮다. 헌데 현지인 들이 먹는 빵으로 만든 그릇에 먹는 스프 진짜 맛있게 보인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저걸 먹어봐야지~~
식사를 한 곳은 구 시가지로 역시나 차 통행이 금지되어 버스를 근처에 세워 놓고 이동을 해서 식사 후 다시 그 자리로 와 숙소로 이동.
오늘 묵는 호텔은 Holiday Inn으로 어제 못지않게 비교적 시설이 좋다.
12월31일(금)
2004년 마지막 날.
호텔 조식을 잘 먹고 9:05 출발 예정인데 한 팀이 지갑을 놓고 내렸단다. 그래서 시간을 좀 지체 해 9:20 출발.
오늘은 어제 식사를 한 구시가지로 다시 이동. 오전 관광을 하고 식사 후 수용소로 간다고 한다.
새날이 밝았다. 오늘도 예쁘게 화장하고 시작~~~
크라카우는 영어식 발음이고 이들은 크라코프라고 한다. 이곳은 우리의 경주 같은 고도로 바르샤바로 수도로 옮기기 전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더구나 크라코프는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았고 바르샤바는 소련의 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인지 서로 성격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서로서로 우습게 안단다. 더구나 세계대전에서도 이곳에 독일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전재의 피해를 덜 봐 옛 건물 보존이 비교적 잘 되 있다고 한다.
폴란드 광장의 재미난 간판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구 시가지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간판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고 한다. 아무튼 이 광장은 유럽에서 큰 광장에 속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설명을 듣고 자유시간을 줬다.
우린 우선 제일 먼저 제일 작다는 교회를 가 봤다. 땅이 올라와서 문이 지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단다.
그리고 그 앞 성마리아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은 고딕양식으로 두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제들이 서로의 실력을 뽐내고자 만든 것이라고한다. 이곳에서 1시간 마다 시보를 알려준다고 한다.
형제의 재능을 판가름 하기 위한 두개의 탑
성당 내부의 모습
성당내부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내부에는 다른 교회와 달리 화려하다. 그 이유는 이곳에 한때 몽골의 지배를 받아 그 영향을 받은거란다. 그때의 잔재로 이들도 만두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아무튼 비 신자인 산나리와 난 맹숭맹숭한데 두 교인들은 진짜 성당을 많이 가 봐 좋겠다.
현 교황이 이곳 폴란드 출신인데 폴란드의 신앙심이 교황을 만들어낸거라고 봐야 한단다.
한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니 성벽이 있고 문이 보인다. 이 문이 플로리안스카문인가 보다. 다시 중앙광장에 돌아와 직물회관을 구경한다. 2층은 미술관이고 1층엔 각종 상품을 파는 아케이드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각자 취향이 다른지라 자연스럽게 헤쳐가 되 버렸다.
직물회관 내의 아케이드
직물회관 바로 옆에 시청사탑이 있는데 광장 자체가 송년 행사 준비로 매우 어수선하다. 이곳도 여러나라에서 온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다시 모여서 차를 타고 수용소 방향으로 가다 식당에 들려 좀 이른 듯 한 점심을 먹었다. 수용소를 보고 나서는 점심을 먹기 좀 힘이 든단다. 헌데 어차피 한번은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란다.
가는 길의 히틀러에 대한 간단한 설명.
오스트리아 출신인 히틀러는 미대 지망생이었는데 공무원 생활을 하다 미대에 두 번이나 낙방을 했다고 한다. 헌데 본인은 자신의 자질을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에서 군인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연설을 하게 됐는데 연설 솜씨가 참으로 기가 막힌단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 거의 다 넘어간다고 한다.
아무튼 연설 덕분에 군인에서 정치가로 변신을 하고 승승장구 하게 되었단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이 되었는데 그나마 견제세력이던 힌덴부르크가 사망하며 독재를 펼치게 되었다고 한다. 1938 총통으로 취임을 하면서 평소 열등감 덩어리였던 히틀러가 싫어하던 짚시, 장애인, 유태인 등을 적으로 내세웠단다.
유태인은 표지인 별을 달고 다닌 이유는 눈으로는 전혀 구별이 가지 않는데 상권을 거의 독점하고, 고리대금업 등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 심리를 이용해서 유태인도 탄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
포로수용소에 가니 진짜 날씨조차 흐려서 더욱 마음이 움추러 든다. 입구에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는 구호가 남아있다.
붉은 벽돌로 만든 수용소는 군인 막사를 수용소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설명을 듣고 전시물을 보는데 속이 조금씩 불편해 진다.
이곳에 제일 많이 오는 사람은 유태인, 독일인 등이 많이 오고 절대로 안 오는 나라가 일본 사람이란다.
유태인을 이동시킬 때 이사를 시킨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 이 사람들은 자신의 귀중품을 주로 챙겨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행 기차를 탔다. 그럼 그곳에서 샤워를 시켜준다고 하고 옷을 다 벗고 들어간다. 그럼 그곳에 천장에서 사이크론비 라는 돌멩이를 조금만 넣어 놓으면 27℃ 이상 되면 독가스가 배출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죽으면 이들을 화로에 넣고 태웠다고 한다.
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 등에는 금 등을 꿰멘 기도할 때 쓰는 보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밖에 수없는 신발, 가방, 구두약, 옷가지.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 물건도 많이 있다.
여기만 오면 추워진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철조망
우리 팀에 학생들이 많다고 특별히 한군데 더 구경을 시켜 준다고 한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에서 보이는 대로인데 이곳에서 실세로 영화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 오니 비가 또 내린다.
다들 무겁고 불편한 마음으로 이곳을 나서서 가이드와 작별을 하고 우린 타트라 산맥을 넘어간다.
날이 흐린데다 길이 험해서인지 다들 속이 썩 좋지는 않나보다. 우리가 묵을 SATEL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20:00.
헌데 이곳 로비에 사람들이 여자들은 어깨가 드러난 이브닝 드레스, 남자들은 연미복을 입고 있다. 이들은 송년파티를 하나본데 우리는 수용소를 보고 나서 다들 마음은 무겁고 몸은 피곤하다.
저녁을 먹는데 목욕탕 분위기의 방에서 한참만에 하나씩 나오는 음식은 우리의 인내력을 실험하는 것 같다. 4남매가 함께 온 팀들은 저녁을 거의 먹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씩씩하게 아이스크림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숙소로 올라갔다.
일차 씻고 홈지기네 방에 모여 반은 누워서 까를로한테 산 맥주를 마시며 2004년 마지막 밤이 넘어가길 기다린다.
초저녁 잠이 많은 심심이는 특히 졸려 죽겠나보다. 드디어 2005년으로 넘어가니 여기저기 멀리 폭죽 소리가 들리고 거리에 사람들이 간간히 몰려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슬로바키아에서는 그야말로 잠만 자고 가는거다. 아니 한해를 보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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