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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구려 마라톤 뛰다 내가 죽을뻔... (2/17)

산무수리 2008. 2. 18. 22:28
‘꽃잎’-조용미(1962~)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바람의 힘을 빌려 몸을 날리는 꽃잎처럼
뛰어내리고 싶었다
허공으로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봄 저물녘의 흰 꽃잎들
삶이 곧 치욕이라는 걸,
어떤 간절함도
이 치욕을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걸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붉은 땅 위로 내리꽂히는 장대비처럼,
어둑한 겨울숲에서 혼자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백의 모가지처럼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발 아래 까마득한 것들 다 공중으로
불러들이고 싶다
역류하는 것들의 힘으로
떨어지는 나는 폭발물이다


삶은 치욕이지만, 어떤 간절함도 치욕을 치유해주진 못하지만 봄 저물녘의 흰 꽃잎들은 그래도 삶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허공에서 나서 허공에서 죽어가는 꽃. 땅이 눈에 어른거려도 결코 땅에 항복하지 않고 절정의 순간 바람의 힘을 빌려 지구에서 뛰어내립니다. 치욕을 다 인내한 저 꽉찬 침묵의 비상, 그 눈부신 역류야말로 눈물겨운 삶의 의지가 아닐까요? <박형준·시인>


 

 



3월 동아마라톤을 대비해 한번은 길게 뛰어주어야 해서 신청한 대회.
재작년에도 32K 뛰면서 죽을뻔한 대회.
풀은 뛰기 전 연습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름대로 연습 하고자 노력을 했고 하프는 기록에 연연해 하지 않으니 비교적 부담 적게 뛸 수 있다.
헌데 32 는 참 애매한 거리다.
풀보다는 그래도 만만해 보이는지 연습을 게을리 하게 된다.
1월 한달 내내 30K 밖에 연습을 못했다.
2월을 맞아 스트레스가 몰려 와 조금 더 뛰긴 했는데 길게 뛴 적이 없어 불안한 심사로 대회날을 맞았다.
전날부터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고....

모처럼 애주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정기 대회보다 더 사람이 많다고 아우성이다.
아주 오랫만에 보이는 회원들이 제법 많았고 (나도 그 중 하나) 신입 회원들이 많아 얼굴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 누가 신입인지 구별이 안간다.
피차 낯가림을 하는지라 인사도 못했다.
동업자 고천사와 통아저씨는 통화만 했고 만나지 못했다.

날씨가 대회 시작 직전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초절정 고수들도 옷을 속에 하나씩 더 껴입고 몇몇은 반팔, 긴팔, 방풍잠바까지 입는다.
난 긴팔 티를 입었다 아무래도 안될것 같아 아주 두꺼운 티로 갈아 입으니 춥지는 않았다. (너무 따듯해 안양천 넘어가며 무쟈게 후회했다) 
풀 출발하고 10분 있다 32K 출발.
초장 오바페이스를 하지 않기 위해 내 페이스로 뛰었다. 헌데 초장엔 늘 뛰기 싫다.
한강에서 안양천 합류지점까지 바람이 많이 불더니 다리를 건너니 바람이 자고 따뜻해 오고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슬슬 더워진다.
선두가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다. 헌데 이곳 반환점은 16이 아니라 12.
재작년 이걸 몰라 초장 오바하는 바람에 후반 무쟈게 죽을 쒔다.
32라고 만만하게 생각해 파워젤 한개만 준비해 반환점에서 먹었다.
반환점 돌고 안양천을 끼고 돌아 도림천 합류지점까지 갔다 돌아오니 10K 가 남았다.
이곳에서 웬지 기운이 남아 그때부터 추월해 나가기 시작.

연습은 부족하지만 뒷심이 좋아진 줄 착각했다.
헌데 웬걸?
3K 남겨놓고 갑자기 힘이 팍 빠지면서 힘겹게 추월한 사람들이 도로 날 추월해 간다.
얼마 남지 않은거 알면서도 힘이 나질 않았다.
그나마 걷지않고 힘겹게 골인.
연습부족을 실감하게 되는 대회.
뛰면서 든 생각.
돈 받고 뛰라고 해도 절대 안 뛸텐데...
하기사 오직해야 돈 내고 뛸까?

칩 반납하고 메달을 받는데 32 에 줄이 아주 길다.
한참 기다렸다 겨우 기념품 받고 친구가 골인지점에 마중을 나와 애주가에 양해를 구하고 함께 마포로 갔다.
공덕역 최대포에서 고기를 먹었다.
배가 고픈데도 잘 먹히지 않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뻣뻣한 다리를 풀기 위하여 동네 목간통에서 냉탕욕.
새 신발을 신고 처음 길게 뛰었는데 오른쪽만 물집이 생겼다.
연습만이 살 길인걸 온몸으로 확인했는데 과연 동마에서 살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