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마라톤

느림의 미학-동마를 뛰고 (3/16)

산무수리 2008. 3. 16. 20:13
'내집' - 천상병(1930~93)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터지게 외친다. 들려다오 세계가 끝날 때까지…… 나는 결혼식을 몇 주 전에 마쳤으니 어찌 이렇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천상의 하나님은 미소로 들을 게다. 불란서의 아르튀르 랭보 시인은 영국의 런던에서 짤막한 신문광고를 냈다.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가지 않겠는가. 어떤 선장이 이것을 보고, 쾌히 상선에 실어 남쪽 나라로 실어주었다. 그러니 거인처럼 부르짖는다. 집은 보물이다. 전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

생전에 유고시집까지 냈던, 더더구나 어렵게 결혼식을 마친 시인치고는 사자와 같은 기세이다. 집은 인간이 용감하게 우주와 맞서는데 있어 하나의 도구이니, 집을 사달라는 것은 남쪽 나라로 데려가달라는 말과 다를 것 없다. 나도 부르짖어 볼까나. 누가 내게 집을… 그래놓고 보니 우주적인 집의 몽상가, 그러나 가난했던 시인의 외침이 쓸쓸하게 귓전에 맴돈다. <박형준ㆍ시인>

 


 

 

 

 

 




작년 산이슬과 교육달 멤버들이 동마 패메를 했고 여산은 응원까지 나와주었던 동마를 올해는 홀로 뛰러 갔다.
나무천사는 감기때문에 어지러워 아무래도 뛰지 않는게 나을것 같다고 새벽 5시 일어나 밥까지 먹고 나더니 가지 않는단다.
하긴, 가면 뛰고 싶어져 아예 안 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 황사까지 분다고 하니...

홀로 나섰다.
시청에 내려 화장실 들렸다 광화문으로 가니 생각보다 덜 복잡하다. 전엔 인도에서만 놀았는데 오늘은 차도에 있으려니 오히려 차도가 한갖진것 같다.
선크림 다시 바르고 파워젤 하나 먹고 물 마시고 짐 맡기고 출발준비.
갈수록 날씨가 포근해서 올해는 그중 날이 좋은것 같다.
반바지를 입을까 고민했는데 바람이 불때는 제법 서늘해 그냥 긴팔, 긴바지 입고 뛰기로 했다.
어차피 기록 달성할 것도 아니고 완주를 목표로 즐겁게 달려보기로 했다.
 
 

 



내빈석의 유인촌, 박상원, 엄기영, 오세훈....
엘리트 그룹 출발하고 A~C 까지는 빨리 출발 시키더니 내가 속한 D (겨우 진입함) 그룹에서 다시 한번 내빈 인사를 시키고 시간을 좀 끌었다.
그래도 예년보다 빨리 출발시켰다.
패메는 작년보다 팀이 적은것 같다. D 그룹에 4:20 대만 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못봤다.
연습이 충분치 않기에 남들 뛴다고 무작정 쫓아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헌데 남대문 앞에서 어디에 걸렸는지 맥없이 넘어졌다.
무릎이 아프다. 벌떡 일어나 도로 뛰다보니 통증이 사라진다.



을지로 돌아나오고 청계천으로 가는데 10K 체크포인트 시간을 보니 너무 빨리 뛴것 같다. 재작년 주장각과 초장 너무 빨리뛰다 죽 쑨 기억이 되살아 난다. 조심해야겠다.
청계천 돌고 종로로 해서 동대문을 지나고 용두동 쪽인가 20K 지점에서도 생각보다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빨리 뛰는건지 주변 사람들은 계속 달라져 갔다. 이전 뒷그룹에서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큰 변화가 없었는데 오늘은 계속 주변 인물들이 바뀌어 내가 자꾸 처지는줄 알았다.



하프 지점 지나 누가 사진을 한장 찍고 가라 한다.
대구 교육달 차회장이 디카를 들고 널널하게 뛰고 있다.
춘마에서는 내가 먼저 알아봤는데 동마에서는 차회장이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 한장 찍었다.
연습 많이 했냐고 해 뒤에서 헤매는거 안 보이냐고 하고 웃고 헤어졌다.
한 남자가 날보고 긴팔, 긴바지 입고 뛰면 덥지 않냐고 한다.
땀 안나게 살살 뛰어 괜찮다고 했다. ㅎㅎ
늘 대회때마다 보던 동대문마라톤 클럽의 언니, 못보던 쫄바지 입고 초장에 진작 앞서서 가 연습 많이 했나보다 생각했는데 30 즈음에서 내가 앞섰다.

한 남자가 작년에 15~25 까지 날 쫓아왔다면서 바지가 똑같아 알아봤다고 인사를 한다. (바지 새로 사 입던지...) 작년 기록이 4시간7분대. 이전 기록보다 엄청 단축했단다.
그럼 오늘은 -4 에 도전하시라고 하니 내가 도와주면 할 수 있다나?
전 못하옵니다. 먼저 가시와요 하고 보냈다. (헌데 이 남자도 내가 잠실에서 추월한것 같다)
오늘 간식도 무쟈게 부실했다. 정말 먹을게 없었다.
그래도 뛰는게 힘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처지지 않고 30K 도 끊었다. 잠실대교를 지났다.
빙과를 주는데 좋았다. 계속 손에 들고 빨아먹으니 목도 덜 마르고 좋았다.

막판 애주가 꿈나무가 추월해 가는데 못 쫓아가겠다. 그래도 나도 제법 사람들을 추월해서 끝까지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운동장이 가까워 오는데 애주가 깃발 든 우보님을 알아보신다. 고글 쓰고 있어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슈렉님이 애주가 깃발을 들고 운동장 입구까지 함께 뛰어 주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서 마지막 트랙을 나름대로 후회없도록 열심히 뛰었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기록을 조금 단축한것 같다.

살 쪘다고 나무천사 구박이고 연습도 부족해 애초 신기록 욕심도 내지 않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자 마음을 먹고 뛰었고 실제로 빨리 뛴것 같지 않았는데 기록이 단축되다니...
느림의 미학인가?
아니면 언니, 오빠들의 격려가 힘이 되어서인가?
뛰다 죽어 못보면 서운해 할 조블 친구들의 응원 덕분인가?
아무튼 두루 감솨~
신발을 바꾸어서인가 물집도 한쪽 발만 생겼는데 그나마 뛰는 도중에 터져 찌그러져 티도 안난다.
넘어진 무릎은 조금 까지고 멍이 든 정도인데 바지가 구멍이 났다.
흐미, 바지가 아깝네....

짐 찾고 모처럼 애주가 텐트에 가서 육개장도 먹고 막걸리도 한잔 마셨다.
바쁜 사람들은 먼저 가도 되는 분위기인것 같아 나도 나왔다.
은계언냐 축하 전화도 받고 집에 오는 길에 목간통 냉탕에서 열기를 식혔다.
다 좋은데 오늘 햇볕에 얼굴이 너무 탔다.
그을린 이 미모는 어찌하나?

-사진 찍어주신 차회장님,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