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5년

선자령을 다녀오기 전엔 눈꽃에 대해 말하지 말자(2/19)

산무수리 2005. 2. 27. 21:52

대관령에 있는 풍력발전기

몇년 전 한국산악회 월례산행을 운두령 계방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눈꽃이 환상이라고 해 갔는데 가는날이 장날이어서 1월 중 제일 추운 날이었다.
헌데 너무 추워 우리가 탄 버스 라지에터가 나가버렸다.
그래서?
냉방버스를 타고 갔다. 차에 성에가 끼어 앞유리를 버너로 녹여가면서 운전을 하였다.
우린 장비도 부실해 벌벌 떨면서 운두령에서 산행을 했는데 눈이 엄청 쌓여있었는데 문제는 너무 추워 눈꽃이 전혀 피지 않았고 정상 부근의 바람이 어찌나 찬지 눈알까지 추운 경험을 했다.
하산 후 알고 보니 한산 회원들은 오바트라우저, 고소모, 내복,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우린 내복도, 고글도, 고소모도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그 눈길을 헤쳐헤쳐 어렵게 산행한 기억뿐이다.

헌데 올 2월엔 선자령을 간단다.
모처럼 토요일 산행 약속이 없는지라 우리 멤버들에게 물어보니 몇명이 한번 가 보자고 한다.
6명 신청을 하고 간다던 산나리가 빠져 최종 5명이 산행에 나섰다.

7:00 송죽 덕수궁 앞에서 승차했다고 연락이 왔다.
7:30 종합운동장역에 갔는데 심심이는 30분 이나 일찍 와서 기다렸단다. 헌데 막상 버스를 타고 보니 서서 있는 사람이 많다.
아니 왜?
승차인원을 초가해서 받아서란다.
우린 미리 신청했지만 등산학교 젊은 청춘들이 자리를 내 주고 통로에 앉아서 가니 이유야 어찌 되었던 무지 미안하다.

오늘 까만돌은 산정 산악회 따라 역시 선자령에 온단다. 우리가 휴게소에 쉬고 있는데 계속 문자가 온다.
아무튼 대관령 구 휴게소에 버스를 내리고 산행 시작한 시간이 10:20.
눈발이 계속 날리고 바람도 찬것 같다. 그나마 기온이 많이 낫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산악회 사람들은 우리팀 장비가 영 마땅치 않은가 보다. 고글 없으면 설맹에 걸린다, 바라클라바도 없냐, 장갑은 왜 안 꼈냐 하면서 한심해 한다.
그러더니 우리팀은 초보팀이니 중간에 서서 가란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스패츠를 착용하려고 보니 지리산에서 사용 후 오른쪽 신발에 매는 끈의 장식이 고장이 났다. 설마 어떠랴 하며 대강 매고 갔다.
그게 첫번째 패착.
또 눈이 많으면 얼마나 많으랴 긴 등산화를 안 신고 평소 신던 고어등산화를 신은게 두번째 패착.
눈이 많으니 아이젠을 해도 큰 의미가 없어 그냥 체인형 아이젠 가져온게 세번째 패착. 6발 이에젠을 가져왔어야 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화장실을 들릴 시간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미치겠다....
줄줄이 올라가다 우리 팀은 왼쪽 길로 올라간다. 오른쪽 길로 가도 되는데 왼쪽길이 눈꽃이 더 좋다는 이슬비의 주장. 작년에 왔었는데 그때는 눈꽃이 별로였단다.
헌데 오늘의 눈꽃은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도 아닌것이 령이라면서 웬 눈꽃 하며 반신반의 했는데 이런 나의 무지함을 한방에 깨는 그 소박한 흰색의 황홀함.

 
주차장에서부터 보이는 죽이는 경치

 
디카 꺼낼 엄두도 안 나는데 열심히 찍은 이슬비의 그 프로정신

여러 산악회에서 올라가는데 반 이상은 약수터 패션이다.
더구나 산행시간이 짧아서인가 운동화 패션의 가족단위도 많다.
날씨가 춥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초장부터 눈꽃이 너무 좋아~~~

 
볼(!)일을 보기 위해 눈에 빠져 가면서 저 가림판 뒤로 사라져야 했다....

헌데 볼일 보고 덥다고 잠바 벗는 사이에 홈지기 벌써 앞서서 가 버렸다. 그래서 우리 네 사람만 함께 가게 되었다.
한산멤버들은 난 그나마 몇명 얼굴을 알지만 우리팀은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니 어디가 우리편이고 어디가 넘의 편인지 구별 하기도 힘들다.
다른팀의 표지기를 보고 우리팀이 아닌건 알겠네....

초장에 조금 올라갔는데 계속 내려오는 사람들이 교행하며 길이 정체가 된다. 내심 반대쪽에서 올라온 줄 알았다. 아니면 다른 코스로 올라갔거나....

 

 
기똥찬 설경~~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역시나 선자령 바람이 쎄긴 세구나...
하긴 그 바람 덕분이 이렇게 눈꽃이 예쁘게 피겠지. 더구나 오늘은 눈발까지 날리니 더 그렇다.
눈꽃이 어찌나 소담스러운지 나뭇가지가 사슴뿔 같이 오동통 하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사진 찍는다고 지체하는 사이에 송죽이 또 우리보다 앞서서 가 버렸다. 이젠 심심이와 이슬비 셋만 남았다.
그래도 앞서서 갔으니 뒤 처진것 보다는 낫겠지....

 
기다 배가 너무 고파서 서서 빵과 코코아를 마시다...

 
눈꽃 아래에서...

헌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말이 이곳 바람은 바람도 아니란다. 위에는 진짜 장난이 아니란다. 더구나 길이 안 나 있어서 되돌아 오는 중이란다.
엥? 되돌아 오다니?
설마 한국산악회가 가는데 설마 되돌아 올리가.....

 
눈꽃도 장관이지만 줄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더 장관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백 하라는 말이 없으니 앞으로 앞으로 나아 간다.
헌데 점점 바람이 쎄 지더니 모자와 후드를 썼는데도 얼굴을 때리는 눈발로 빰이 얼얼하다.
바람때문에 자꾸 몸이 휘청거린다. 그러니 반드시 걸을 수가 없다. 게처럼 옆 걸음으로 걸어도 간간히 넘어지고 눈에 빠져 주저 앉는다.

앞에 안내산행 등반대장인지 계속 무전이 오나보다. 한 모녀는 딸이 추운지 징징대면서 간다. 물론 장비도 부실한것 같다.
어디까지가 선자령인지 우린 모르겠다. 계속 앞 사람을 놓치면 안되니까 죽어라 하고 쫓아간다.
헌데 그 틈에 심심이가 낙오됐나보다. 안 보이네....
산행실력을 믿으니 큰 걱정은 없지만 좀 염려가 된다.

 
바람때문에 나무들이 눕다~~

어느덧 선자령 정상인가보다. 앞서 간줄 안 송죽 배낭의 곰돌이가 눈이 보인다. 다행히 홈지기도 만나서 우리끼리라도 사진을 찍었다.
바람때문에 얼굴을 펼 수가 없어 다들 인상이 좀 거시기 하다.
 
선자령 정상에서...

그나마 내 디카와 홈지기 디카는 추워 찍히지도 않는다. 성능좋은 이슬비 디카 덕분에 이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다.
심심이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일단 하산 하기로 했다.
한산의 사무국장님이 아작전사들 대단하단다.

 
아이 추워~~

정상에서 내려가니 바람이 산 등성이에 가려서인지 좀 숨쉴만 하다.
조금 더 진행하니 초막교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밥은 먹을 엄두도 안나서 빵, 과일 등으로 고픈 배를 달랜다.
헌데 위에서 많이 보던 사람이 내려오네?
까만돌이네?
까만돌네 산악회는 2차가 내렸는데 다 되돌아가고 4명만 자기가 선두로 서서 여기까지 왔단다.
올라오다 심심이 되돌아가는걸 봤다고 우리보고 걱정하지 말란다.
휴, 그나마 소재파악이 됐으니 다행이다, 다행.

 
갈림길 이정표, 눈이 쌓여 기둥은 보이지도 않는다.

까만돌이 선두, 후미에서 우리팀을 봐 주니 갑자기 든든해 진다. 헌데 내 오른쪽 스패츠를 보더니 걱정을 해 준다. 안 그래도 부실한 스패츠 때문에 오른쪽 발에 눈이 들어간다.
까만돌이 응급처치로 묶어서 그나마 눈이 훨씬 덜 들어갔다.
고마우이, 칭구~~

하산길의 경사는 진짜 장난이 아니고 내려간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눈이 더 깊게 쌓여있다.

니들이 이 맛을 알어???

경사가 너무 급한곳을 겁도 나고 해서 눈 썰매를 홈지기가 타 보더니 기분 짱이란다.
그래서 타 봤더니 생각보다 기분 너무 삼삼하다.
헌데 비닐도 없이 맨 옷으로 타려니 덜 미끄럽고 바지도 젖고 눈이 밀려 내려와서 속도가 덜 나서 아쉽네....
아무튼 다들 동심으로 돌아가 경사 급한 곳에서 간간히 썰매를 탔다.

 
눈이 개고 바람이 좀 잔 하산길의 설화

오늘 이슬비, 교재를 마실 틈도 없었다. 잠시 쉬는데 송죽의 비장해 놓았던 양주병을 꺼낸다.
그래서 너무 행복해 하는 이슬비.

 
하마트면 공부 못 할 뻔 했다

썰매를 타고 미끄러지고 경사도 급해서 하산속도는 빠른 편이다.
날이 추워도 봄은 오는지 계곡에 간간히 물이 보인다.
우리가 내려온 길을 반대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경사가 대관령 쪽에 비해 훨씬 급하겠다....

 
얼지않고 남아있는 계곡의 구멍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 중간에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피난 가는 기분이더니 내려올때의 기분은 상쾌, 통쾌다.

 
오늘 찍은 출석부.

다 내려왔나보다. 어느덧 찻길이 보인다.
까만돌은 먼저 내려갔나보다. 안 보이네.....

 


다 내려와 보니 눈사람 가족이 있네?

15:20 하산 완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늦은 점심을 먹는다. 맛이 꿀맛이다.


늦은 점심을...
심심이는 버스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단다.
까만돌은 산악회에 전화하니 왜 그쪽으로 하산했냐고 오히려 핀잔이란다.
뿔다구 난 까만돌 버스 기다리라고 해 놓고 곧 이어 온 우리차를 타고 대관령 휴게소에서 하차.

우린 산악회에서 저녁까지 사 준단다.
부일식당(335-7232)에서 산채가 곁들인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58명 쯤 와서 20여 명은 되돌아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넘어온거란다.
심심이는 관계자가 백 하라고 해서 되돌아갔다고 무지 아쉬워 한다.
우리도 이렇게 아쉽구만.....

차는 생각보다 막히지 않고 무사히 잠실역에서 하차해서 집으로~~~
눈때문에 눈이 호강을 하고 얼굴은 고생을 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