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알프스 원정기 10 (BC를 다녀오다)

산무수리 2008. 8. 25. 23:42
‘마음의 정거장’ - 김명인(1946~ )

집들도 처마를 이어 키를 낮추는

때 절은 국도변 따라 한 아이가 간다

그리움이여, 마음의 정거장 저편에 널 세워두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

저기 밥집 앞에서 제재소 끝으로

허술히 몰려가는 대낮의 먼지바람

십일월인데 한겨울처럼 춥다

햇볕도 처마 밑까지는 따라들지 않아

바람에 구겨질 듯 펄럭이는 이발소 유리창 밖에는

노박으로 떨고 선 죽도화 한 그루

그래도 피우고 지울 잎들이 많아 어느 세월

저 여린 꽃가지 단풍 들고

한 잎씩 저버리고 가야 할 슬픔인 듯

잎잎이 놓아버려 텅 비는 하늘

바람이 붑니다. 십일월인데 한겨울처럼 추워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국도변을 따라 아이가 걸어갑니다. 삶의 의미 속으로 걸어갑니다. 의미 속을 걸어가다 마침내는 의미를 버리는 것이 어느덧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때쯤은 겨울이 몇십 번을 찾아와야 하는지요. 밥집 앞에서 제재소 끝으로 허술히 먼지바람이 몰려갑니다. 먼지바람도 적막을 힘겨워하는 것이겠지요. 제 안에서 들끓는 침묵을 울면서 듣는 것이겠지요. 적막의 우듬지를 흔드는 기억의 유적(幽寂). 이렇게도 쓸쓸하여 명치끝을 아려오는 그리움에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 고단한 풀잎 흘러와 찬 그늘 속에 묻힙니다. 온몸에 퍼집니다. 죽도화 한 그루, 이발소 유리창 앞에 서 있습니다. 피우고 지울 잎들이 무성하여 어느 세월 여린 꽃가지에 단풍이 들고 한 잎씩 버리고 가는 것이 슬픔인 듯 잎을 놓아 버리지만 의미 속을 걷는 사내처럼 어느덧 텅 빈 하늘에는 젖은 그리움으로 가득합니다. <박주택·시인> 


8.5 (화)

아침, 정상 도전할 사람들 밥을 해 먹여 보내야 할것 같다. 조금 일찍 일어나 밥 앉치고 어제 황샘이 썰어놓은 야채와 고기를 볶아 자장을 만들고 있으니 다들 일어난다.
식량담당이 산으로 가니 나와 박교감이 졸지에 승진(!) 되 박교감 옆에서 심부름 잘 해 준다. ㅎㅎ 황샘은 어느새 일어나 점심에 먹을 주먹밥 먹느라 밥을 한 코펠 더 하더니 주먹밥을 만들었다.
밥 먹고 짐 챙기고 우리들도 각자 배낭에 BC까지 텐트 한동, 자일 두동, 부식, 코펠, 버너 등을 나누어 지었다. 대장님도 훼른리산장까지 함께 하시기로 해 모처럼 8명이 다같이 산에 오르나보다.
 

쩨르마트

난 맘이 바쁜데 홍샘 여유부리며 은행에 들려 돈 찾아 남아있는 4명이 자기 없는 동안 쓰라마 500프랑 (50만원 정도) 를 준다. 내일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 비용만 해도 비싸다며 돈 모자라면 찾아쓰라며 아예 카드까지 맡긴다.
10시 넘어 겨우출발.
마터호른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훼른리까지 가기 위하여 케이블카 타러 가는데 제일 안쪽까지 걸어가니 마터호른 빙하지대 가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온다.

 
케이블카 타는곳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는데 우리가 가는곳까지 올라갈 때는 중간 정류장에서 내리지 말라 하더니 그곳까지 한번에 올라간다. 나중 원정대가 하산하는 아침에는 도중에 한번 갈아타야 했단다. 시간대에 따라 운행방법이 조금 다른가 보다.

 
케이블카를 타고... (언니 대신 꼭 성공 해야해~)


케이블카에서 보이는 경관

 
케이블카를 내리니 호수가에서의 스위스호른 연주소리가 들리고..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음악소리가 들린다. 호숫가에서 스위스호른 연주를 하는데 마음이 바빠 구경을 못했다.
우린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들어다주고 케이블카 운행이 끝나가기 전 (15:40)에 하산해야 하므로...
케이블카 종점까지 오는 트레킹 코스도 유명하다고 해 마음 같아서는 걸어서 하산하고 싶었지만 잔류하기로 한 사람들이 다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것 같다.

 
그림같은 광경들


곧 초록이 사라지고 척박한 땅이 보였지만 구떼가는 길에 비하면 인간적인 길이었다

이 코스도 등반 아닌 워킹으로 훼른리 산장까지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은 몽블랑쪽에 비하면 그림이 더 아름다웠다. 물론 조금 올라가니 여기도 초록이 사라지고 척박한 땅이 보였지만 떼떼에서 구떼 가는길처럼 무지막지한 길이 아니라 완만한 길을 올라가 훨씬 수월하였다.


점심식사 하면서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점심식사로 준비한 주먹밥을 먹고 나니 내 배낭과 박교감 배낭이 많이 가벼워 졌다. 20년 넘은 대장님과 박교감의 우정. 대장님 배낭에 있는 자일을 박교감 배낭으로 옮겨넣는다. 의리있다.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 찍고 훼른리까지 가는데 2시간반 정도 걸렸다. 대장님도 좀 힘겨워 하긴 하셨지만 무사히 올라오셨다. 휴~

 
훼른리 산장에 도착해서

 
훼른리 산장까지만 와도 좋았다~

훼른리 산장은 구떼 산장보다 운치도 있고 조망도 훨씬 아름다웠다. 산장도 훨씬 넓고 시설도 좋아 보였다. 여기저기 테이블에 예약한 상황을 적은 쪽지를 종이로 날아가지 않게 눌러놓았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미처 치우지 못한 테이블들이 보였다.
거제팀 왈, 짐 무게때문에 새로 산 좋은 텐트 놓고 5인이 잘 수 있는 다 썩은 텐트 지고 와 야영하면서 바람이 술술 들어와 고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훼른리 산장의 스테이크가 맛이 좋았다는데 나중에 등정팀 이야기를 들으니 별로 맛있는 줄 모르겠단다. 다른걸 시킨 건가? ㅎㅎ


가스가 끼어 헬기가 접근을 하지 못하고...

사고가 났는지 가스가 끼어 마터호른 정상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계속 헬기가 선회를 하는데 접근은 하지 못하는것 같다.
훼른리 산장 바로 아래 야영터에 내려가 우리 팀 텐트 칠 자리를 맡아놓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야영한 이 팀은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길이라고 한다.


베이스캠프를 떠나기 전 기념촬영 (뒤에 훼른리 산장이 보이고..)
 
텐트치는것 도와주고 남은 물 다 담아주고 남은 주먹밥을 주니 황샘이 밥도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한다. 버너 코펠을 들고오긴 했지만 사발면 정도 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먹을 시간도 없고 하산시 이 짐을 넷이 나누어지고 오려면 힘이드니 짐을 줄이기 위해서인것 같다.
야영장에서 솔베이 무인대피소가 작지만 보였다. 저기까지만이라도 가 보고 싶었는데....

화장실 들리고 산장 앞에서 사진 찍는 사이에 오샘이 먼저 하산을 해 버렸나보다. 나머지 세사람은 천천히 사진도 찍고 두분은 간간히 담배까지 피워가면서 놀며놀며 하산을 했다.


트레킹 코스로 걸어 내려갈 수도 있고...

하산하다 보니 트레킹 코스 걸어 내려가는 이정표도 있었다. 혼자라면 걸어 내려가고 싶었다.


호숫가 교회 앞에서 그림같은 현지인이 있어 사진을 같이 찍었다

케이블카 타는곳에 거의 다 내려왔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있고 호수가에 내려가 봤다. 호수가의 작은 교회에서 아침에 음악회를 했는데 그곳에 큰 개를 데리고 온 부부가 앉아있는데 그림같다.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좋다고 해 사진을 찍었다.


이정표

아침에 바쁘게 산장까지 가느라 미처 찍지 못한 주변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쉬고있는데 루마니아 친구들도 등반하러 올라가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케이블카 종점의 호텔 겸 레스토랑이 있는데 산도 사람들도 왜 그리 그럼처럼 보이는건지.... (사고의 사대주의?)

오샘은 거의 1시간 먼저 내려와 레스토랑에서 지루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얇은바지가 없어 두꺼운 바지 입고 와 참 더웠을거다.
케이블카 타고 하산하는데 웬지 패잔병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 참 거시기 했다.


내려오니 교회 앞에서 아침에 듣던 연주를 또 한번 연주하고...

내려오니 아침에 연주했던 팀이 교회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이가 아주 많아보이는 두분이 민속복장으로 연주를 하는데 프로의 솜씨는 아니었지만 소박한 멋이 있었다.
아침이면 방울을 목에 단 산양을 끌고 학생들이 산쪽으로 올라가고 오후에는 산 아래로 몰고 내려오는것과 연주가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제공인것 같았다.


산양을 아침에는 산쪽으로 끌고 올라가더니 저녁이 되니 끌고 내려오는 목동들.

내려오다 길가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를 한잔씩 마셨지만 기분은 참 가라 앉는다. 특히나 두번 다 등정을 포기한 오샘은 어떠했을까....

등반을 마치고 나갈때 짐을 줄여야겠기에 가급적 있는 부식을 먹어치워야 하는데 옷구경 하는 동안 대장님과 박교감이 장을 봐 왔는데 연어, 고기, 와인, 맥주 등을 또 사 가지고 왔다. 주방장 없을때 잘 먹어야 한다면서...ㅎㅎ
남은 야채를 치울 겸 온갖 야채를 넣고 전을 부쳐 먹는데 젊은 한국인 부부가 찾아왔다.

이 부부는 직장 사표내고 1달 넘게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미국에도 살았기에 영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는데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등을 거쳐 샤모니에 갈 예정이라며 어디를 보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한다. 그동안은 여행기분이 나지 않았는데 여기에 오니 말도 안 통하고 (!) 해서 여행기분이 난단다. ㅎㅎ
그리고 이 야영장에 야영하는 일본인 팀이 있는데 이 부부한테 우리팀이 어디 등반하러 왔는지 물어보더란다. 궁금하면 우리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참 웃기는 팀이었다.
이 팀은 트레킹만 하는지 아침이면 나갔다 저녁에는 되돌아 오는 모습이었다.
야영장 관리인은 아침과 저녁에만 한시간 정도 머물면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저녁에는 사람들 숫자를 확인하는것 같았다. 우리는 등반팀이 언제 하산하게 될지몰라 계산을 후불하기로 했다.
혹시 내일 등반을 성공하고 내일 늦게라도 하산하면 정산할 시간이 없다고 우리한테 계산을 부탁했는데 돈이 부족할것 같다.
오샘이 현금지급기에 가서 300프랑을 빼러 갔는데 안 나온단다. 나중에 박교감과 둘이 가서 빼 왔는데 야간에 외국에서의 1회 한도액이 200프랑 (20만원 정도)라 한도액을 초과해서 그랬다고 한다. 카드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인줄은 모르겠는데 액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데 박미정씨가 정말 와인 한병과 맛있는 소시지를 사 가지고 왔다. 우리가 사서 먹어본 소시지는 짜고 맛도 별로였는데..
대장님 박미경씨 온다고 샤워까지 하고 기다리시고... ㅎㅎ
남은 사람들끼리 이야기 나누고 부부팀이 먼저 가고 나도 졸려서 먼저 텐트로 오고 남은 4명은 이야기를 더 나누다 헤어진것 같다.
박미경씨는 내일 인터라켄으로 떠난단다. 

 
내일 날씨가 아주 좋을것 같다. 산이 붉게 물들었다~

해가 져 가는데 산이 붉은 빛이다. 내일 날씨가 아주 좋을것 같다. 날씨가 좋아 등반도 성공할것 같다.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