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神)’ - 차주일(1961~ )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는다
얼굴과 모습을 지우고 살아남은 자가 내 몸을 맞이한다
그가 내 몸과 관절과 주파수와 조도를 다 맞추고 나면
내 용기를 부추기는 소리가 심장과 인화되고
온몸에 박혀있던 내 가식들이 사라진다
누구인가? 밤새 태초의 나로 돌려놓은 자
수직으로 기울여 높아진 나는 그를 바라보지 못한다
신(神)은 늘 배후에 있고 수평적으로 강림한다
내가 인간의 가장 낮은, 수평 이하의 자세인
태아와 같은 모습의 기도로 접신하는 이유는
내 암울이 전이될수록 신(神)의 모습은 짙게 드러난다
(내 그림자 속에 내가 누워있다니!)
내 미동에 태막이 꿀렁거린다, 내가 일어서면
나를 출산한 그림자가 태반처럼 뭉그러져 수평을 지켜낸다
내 이목구비와 몸짓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은
내가 완전한 수평 이하로 태어난 뒤에야 나를 놓아줄 것이다
수직은 상승하는 욕망. 수평은 평상심(平常心). 적어도 두 개의 자아. 즉 욕망하고자 하는 자아,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아. 하여, 몸은 자아들 투쟁의 장소. 영혼은 투쟁의 기록보관소. 그렇다면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게 되는 침대는 성찰의 사원? 이곳에서 수직의 ‘나’는 수평의 ‘나’를 만나 가식을 버리고 성선(性善)에 든다. 그것은 진아(眞我)에 이르는 도정. 마음이란 이치를 총괄하고 도(道)를 보는 곳이 아니던가? 마음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따를 때 평화는 오는 법. 활을 만드는 사람 뿔을 다스리고, 물가에 있는 사람 배를 다스리며, 지혜있는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법. 그래서 마음보다 잔인한 무기는 없다지 않았던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신, 부처인 하심(下心),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 이 모두는 지혜를 부르는 태초들. <박주택·시인>
8.3 (일)
0:00에 출발한다는 우리팀은 조용하고 거제팀이 일어나 조용히 준비하더니 나간다.
0:30 우리팀도 기상해 짐 챙기고 놔두고 가는 짐은 대피소 한곳에 놔두고 준비하는데 꼭 한사람이 늦는다.
1:10 출발.
순서를 어찌 갈까 의논. 홍샘이 젤 앞에 서고 그 다음이 나, 박교감, 황샘, 후미를 류샘이 보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지난번에 비해 산이 조용하다. 앞뒤로 우리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제 한시간 먼저 출발한 거제팀을 따라 잡았다며 오늘도 거제팀을 따라 잡는다는 류샘.
헌데 문제는 나.
기운이 없어 오르막을 오를 수가 없다. 걱정했던 박교감은 뒤에서 묵묵히 쫓아오는데 홍샘과 나 사이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줄도 길어진다.
안자일렌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 자꾸 줄 밟는다고 류샘 지청구다. 한손에 줄을 감고 늘어지면 감아주고 당겨지면 풀어주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나 박교감은 나보다 줄을 더 많이 밟는것 같다.
날씨는 춥지않고 산행하기 좋은 날씨인것 같은데 내 컨디션이 받쳐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뒤에서는 쉬지말고 가라는데 빨리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속도가 늦으니 남보다 먼저 출발한거 아니었나?
나때문에 홍샘이 무쟈게 힘들겠다. 뒤에서 자꾸 줄을 잡아 당기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만 있고 여기저기 발자국이 찍혀있는 조용한 만년설. 오르막에서는 왜 그리 기운이 없고 마음과는 달리 자꾸 걸음이 멈춰지고...
왜 이러는거야, 왜....
5시. 발로 무인대피소 도착. 눈에 보호를 하려고인지 출입구도 반대쪽에 있고 사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보니 몇몇은 자고 있고 거제팀은 이곳에서 아침을 버너 이용해 끓여 먹고 있다. 냄새로 봐서 동결비빔밥인것 같은데 옥주봉때 억지로 먹던 그 음식이 따뜻한걸 먹는 그팀이 부럽다. 먹으라면 염치불구하고 먹고 싶었다.
우리는 조금 쉬었다 가기로 하고 거제팀이 먼저 출발.
곧 따라 잡을거라는 류샘. 나 때문에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났지만...
곧 해가 뜰것 같다는 홍샘. 이왕이면 올라가서 보자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일출 전 산 위의 운해는 정말이지 장관인데 올라가기도 벅차 사진은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래에서는 춥지 않아 고어잠바 하나만 걸쳐도 춥지 않더니 고도가 높아져 가니 바람이 차차 세지고 추워져 간다.
위에 파일자켓을 하나 더 걸쳤다. 그러니 카메라 꺼내기도 쉽지 않고....
정상 가기 전 해가 뜨고...
7시경 해가 뜬다. 비탈에서 일출을 맞았다.
잠시 쉬면서 류샘이 사진을 찍었다.
내가 버벅거려 진행은 안되고...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고...
해가 뜨니 날이 훤해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팀을 추월해 가도록 비켜줘야 한다. 길이 좁고 날등이라 한발자국씩 옆으로 피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간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또 부딪친다고 우리도 서두르자는데....
내리막에서 그나마 속력을 냈고 오르막에서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힘들게 올라가는데 거제팀이 환한 얼굴로 내려오며 거의 다 왔다고 힘 내라고 격려해 주면서 간다.
정말 다 와 가는건가?
정상 가기 전 30분 부터인가 바람이 쎄지면서 눈 알갱이가 날려 얼굴을 때린다. 얼굴이 따갑다.
7시.드디어 정상
구떼에서 출발한지 6시간 만에 정상.
홍샘이 드디어 정상이라고 끌어 안는다. 정말 내가 정상에 섰구나....
정상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날등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눈이 날려 얼굴은 따갑고 실감도 나지않고 좋은줄도 모르겠다.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여기서도 디카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빨리 하산해야 한다더니 류샘이 사진을 오래 찍어대 조금 쉴 수 있었다.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은 에귀디미디쪽으로 하산을 하는거란다.
아, 이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을 할 수 있나보다.
하산도 어찌나 빨리 하는지 거의 끌려 내려가고...
하산도 어찌나 빨리 내려가는지 끌려 내려간다. 좀 천천히 가자고 소리쳤다. 이러다 구르면 어쩌라고...
줄은 맨 상태라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고....
그나마 다행은 아직은 올라오는 팀들이 더 많았다.
올라올 때는 제대로 못 봤는데 하산할때 보니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어쩐지 힘이 들더라니....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바람이 좀 잔잔하고 얼굴을 때리는 따가운 눈가루도 잠잠해 졌다. 이곳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빵은 먹히지 않았고 그나마 초코렛은 넘어가 초코렛을 주식 삼아 먹었다.
경치는 죽여주고...
정신력으로 버틴 박교감-인간승리
나이프릿지의 모습
저길을 우리가 올라갔다 왔다구?
눈인지 사막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이고...
꼭두새벽 보이지 않을때 올라가길 잘했다 싶다. 환할때 되돌아 보니 언덕이 정말 새삼스러웠다.
온통 하얀 설산은 눈인지 사막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결코 완만한 경사는 아닌데도 내려올때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냥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반은 끌려 내려가게 된다.
발로 대피소에서 안자일렌을 풀고...
아, 발로 대피소까지 왔다. 이곳부터는 나이프 릿지는 없으니 자일을 풀고 가기로 했다. 한참 쉬면서 간식을 먹는데 다른건 잘 먹히지 않는다. 내 초코렛은 다 먹어버려 홍샘 초코렛 하나 얻어 먹었다. 헌데 먹어도 먹어도 헛헛했다.
날도 풀렸는지 햇살도 따가워 더웠다.
역시나 속이 좋지 않아 바쁘게 하산하는 박교감
박교감은 입술도 다 터졌고 간식도 거의 먹지않고 물만 마신다. 날이 더운데도 우모잠바를 벗지 않고 구떼까지 하산했다. 몸이 좋지 않아 그런것 같다.
일단 구떼에 가면 물을 구할 수 있으니 구떼까지만 가면 될것 같다.
하산길도 까마득하고...
올라갈 때는 6시간 걸린 길이 하산할때는 역시나 빨라 3시간 걸렸다.
다들 너무 피곤했다. 잠시 쉬기로 하고 테이블레 엎드려 자는데 몸이 추웠다. 홍샘 기내용 담요를 빌려 뒤집어 쓰고 한숨 잤다.
자고 나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시키려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 오므렛을 시켰는데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다 먹었다가는 고소 올것같았다.
물이 거의 다 떨어져 물을 두병 사자고 하니 하산하는데 물이 많이 안 필요하다도 한병만 산다.
11:50 구떼에서 하산 시작.
구떼에서 하산을 하며...
걸음이 느린 나와 박교감이 조금 먼저 출발한다고 했다. 올라갈 때는 나보다 잘 올라갔는데 하산할때는 거의 탈진한것 같아 좀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앞서서 가고 바로 내 뒤로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도다 박교감 매트가 배낭에서 빠지며 끝없이 굴러내려 간다....
내려가는데 어제 열차에서 봤던 멋진 커플이 이제야 구떼를 올라간다. 아는체를 해 우린 몽블랑엣 환타스틱한 경치를 봤다고 하니 자기도 내일 몽블랑에 도전한단다.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날이 더워져 목이 말랐다. 헌데 물도 거의 없어 우리팀을 기다리니 류샘이 제일 먼저 내려온다. 물 좀 달라고 하니 자기 물은 자기가 확보해야 한다고 한마디 한다. 물론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좀 듣기 거북했다.
물을 한병밖에 사지 않아 들고 올 기운도 없고 해서 그냥 왔는데 내 물병에 좀 덜어가지고 올걸 그랬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했다. 먹는것 같고 좀 치사하게 구는것 같았다.
니데글은 완전 땡볕이고...
독수리 삼형제는 기운이 남는지 놀며놀며 내려온다. 날보고 먼저 내려가면 기차표 번호표를 받아 놓으란다.
참 내....
하산하는데 발바닥에 불이 나는것 같다. 양말을 두개 신어도 발바닥 아픈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한 여자도 나처럼 발바닥이 아픈지 아예 등산화를 벗고 양말 바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등산로가 니데글 역까지 잔돌이 하도 많아 피해야 피할 수 없는 그런 그지같은 길이다.
아래에는 패러글라이딩 타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날아다니고 있고 일요일이어서인지 가족단위 나들이 팀들이 많았다.
15:25 니데글 도착.
15:50 기차표를 받고 거의 혼수상태에서 종점에 도착하니 16:55.
기차 종점에 내려 다들 지친 모습
오샘에게 연락을 하니 데리러 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빨리 내려와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부랴부랴 야영장에 두사람 내려주고 텐트 치도록 하고 데리러 온다고 한다.
일요일이라 가게는 거의 문을 닫았다. 목도 마르고 출출해 하산주 겸 해서 생맥주를 한잔씩 마시기로 하고 문 열린 집을 찾아갔다.
오샘 기다리며 생맥주 한잔으로 등정을 자축하고...
이집은 영어 메뉴판이 있고 주인이 영어가 통했다. 박교감은 이젠 좀 살만한지 바로 담배를 사서 핀다. ㅎㅎ
맥주 한잔 하고 있으니 오샘이 와서 축하해 준다. 고맙고 많이 미안했다. 옥주봉에서도 고소때문에 함께 산행을 못했고 이번에도 좀 무리를 하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데 못가 정말 아쉬웠다.
주말이라 고기 살 곳이 없다고 대장님이 불고기 피자를 네판이나 사 오셨고...
18:30야영장에 오니 대장님과 신샘이 텐트를 쳐 놓고 있었다. 장을 보려고해도 마트가 다 문을 닫아 장도 못 봤다면서 저녁을 자기네들이 쏜다고 나가 먹자고 하는데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은지라 우리들은 밥이 먹고 싶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 몸도 많이 피곤했고.
일단 씻고 밥 하고 있는 반찬과 재료로 국을 끓여 먹기로 했는데 고기 먹고 싶다는 박교감 말을 들은 대장님이 나가셔서 고기는 못 사시고 피자집에서 불고기 피자를 사 오셨다. 그것도 4판 씩이나...
밥에 피자에 정상축하주와 와인까지 먹으니 정말 배 터질것 같았다.
내일은 마터호른을 가기 위해 쩨르마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은 두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지?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는다
얼굴과 모습을 지우고 살아남은 자가 내 몸을 맞이한다
그가 내 몸과 관절과 주파수와 조도를 다 맞추고 나면
내 용기를 부추기는 소리가 심장과 인화되고
온몸에 박혀있던 내 가식들이 사라진다
누구인가? 밤새 태초의 나로 돌려놓은 자
수직으로 기울여 높아진 나는 그를 바라보지 못한다
신(神)은 늘 배후에 있고 수평적으로 강림한다
내가 인간의 가장 낮은, 수평 이하의 자세인
태아와 같은 모습의 기도로 접신하는 이유는
내 암울이 전이될수록 신(神)의 모습은 짙게 드러난다
(내 그림자 속에 내가 누워있다니!)
내 미동에 태막이 꿀렁거린다, 내가 일어서면
나를 출산한 그림자가 태반처럼 뭉그러져 수평을 지켜낸다
내 이목구비와 몸짓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은
내가 완전한 수평 이하로 태어난 뒤에야 나를 놓아줄 것이다
수직은 상승하는 욕망. 수평은 평상심(平常心). 적어도 두 개의 자아. 즉 욕망하고자 하는 자아,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아. 하여, 몸은 자아들 투쟁의 장소. 영혼은 투쟁의 기록보관소. 그렇다면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게 되는 침대는 성찰의 사원? 이곳에서 수직의 ‘나’는 수평의 ‘나’를 만나 가식을 버리고 성선(性善)에 든다. 그것은 진아(眞我)에 이르는 도정. 마음이란 이치를 총괄하고 도(道)를 보는 곳이 아니던가? 마음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따를 때 평화는 오는 법. 활을 만드는 사람 뿔을 다스리고, 물가에 있는 사람 배를 다스리며, 지혜있는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법. 그래서 마음보다 잔인한 무기는 없다지 않았던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신, 부처인 하심(下心),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 이 모두는 지혜를 부르는 태초들. <박주택·시인>
8.3 (일)
0:00에 출발한다는 우리팀은 조용하고 거제팀이 일어나 조용히 준비하더니 나간다.
0:30 우리팀도 기상해 짐 챙기고 놔두고 가는 짐은 대피소 한곳에 놔두고 준비하는데 꼭 한사람이 늦는다.
1:10 출발.
순서를 어찌 갈까 의논. 홍샘이 젤 앞에 서고 그 다음이 나, 박교감, 황샘, 후미를 류샘이 보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지난번에 비해 산이 조용하다. 앞뒤로 우리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제 한시간 먼저 출발한 거제팀을 따라 잡았다며 오늘도 거제팀을 따라 잡는다는 류샘.
헌데 문제는 나.
기운이 없어 오르막을 오를 수가 없다. 걱정했던 박교감은 뒤에서 묵묵히 쫓아오는데 홍샘과 나 사이의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줄도 길어진다.
안자일렌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 자꾸 줄 밟는다고 류샘 지청구다. 한손에 줄을 감고 늘어지면 감아주고 당겨지면 풀어주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나 박교감은 나보다 줄을 더 많이 밟는것 같다.
날씨는 춥지않고 산행하기 좋은 날씨인것 같은데 내 컨디션이 받쳐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뒤에서는 쉬지말고 가라는데 빨리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속도가 늦으니 남보다 먼저 출발한거 아니었나?
나때문에 홍샘이 무쟈게 힘들겠다. 뒤에서 자꾸 줄을 잡아 당기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만 있고 여기저기 발자국이 찍혀있는 조용한 만년설. 오르막에서는 왜 그리 기운이 없고 마음과는 달리 자꾸 걸음이 멈춰지고...
왜 이러는거야, 왜....
5시. 발로 무인대피소 도착. 눈에 보호를 하려고인지 출입구도 반대쪽에 있고 사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보니 몇몇은 자고 있고 거제팀은 이곳에서 아침을 버너 이용해 끓여 먹고 있다. 냄새로 봐서 동결비빔밥인것 같은데 옥주봉때 억지로 먹던 그 음식이 따뜻한걸 먹는 그팀이 부럽다. 먹으라면 염치불구하고 먹고 싶었다.
우리는 조금 쉬었다 가기로 하고 거제팀이 먼저 출발.
곧 따라 잡을거라는 류샘. 나 때문에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났지만...
곧 해가 뜰것 같다는 홍샘. 이왕이면 올라가서 보자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일출 전 산 위의 운해는 정말이지 장관인데 올라가기도 벅차 사진은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래에서는 춥지 않아 고어잠바 하나만 걸쳐도 춥지 않더니 고도가 높아져 가니 바람이 차차 세지고 추워져 간다.
위에 파일자켓을 하나 더 걸쳤다. 그러니 카메라 꺼내기도 쉽지 않고....
정상 가기 전 해가 뜨고...
7시경 해가 뜬다. 비탈에서 일출을 맞았다.
잠시 쉬면서 류샘이 사진을 찍었다.
내가 버벅거려 진행은 안되고...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고...
해가 뜨니 날이 훤해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팀을 추월해 가도록 비켜줘야 한다. 길이 좁고 날등이라 한발자국씩 옆으로 피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간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또 부딪친다고 우리도 서두르자는데....
내리막에서 그나마 속력을 냈고 오르막에서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힘들게 올라가는데 거제팀이 환한 얼굴로 내려오며 거의 다 왔다고 힘 내라고 격려해 주면서 간다.
정말 다 와 가는건가?
정상 가기 전 30분 부터인가 바람이 쎄지면서 눈 알갱이가 날려 얼굴을 때린다. 얼굴이 따갑다.
7시.드디어 정상
구떼에서 출발한지 6시간 만에 정상.
홍샘이 드디어 정상이라고 끌어 안는다. 정말 내가 정상에 섰구나....
정상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날등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눈이 날려 얼굴은 따갑고 실감도 나지않고 좋은줄도 모르겠다.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여기서도 디카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빨리 하산해야 한다더니 류샘이 사진을 오래 찍어대 조금 쉴 수 있었다.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은 에귀디미디쪽으로 하산을 하는거란다.
아, 이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을 할 수 있나보다.
하산도 어찌나 빨리 하는지 거의 끌려 내려가고...
하산도 어찌나 빨리 내려가는지 끌려 내려간다. 좀 천천히 가자고 소리쳤다. 이러다 구르면 어쩌라고...
줄은 맨 상태라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고....
그나마 다행은 아직은 올라오는 팀들이 더 많았다.
올라올 때는 제대로 못 봤는데 하산할때 보니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어쩐지 힘이 들더라니....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바람이 좀 잔잔하고 얼굴을 때리는 따가운 눈가루도 잠잠해 졌다. 이곳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빵은 먹히지 않았고 그나마 초코렛은 넘어가 초코렛을 주식 삼아 먹었다.
경치는 죽여주고...
정신력으로 버틴 박교감-인간승리
나이프릿지의 모습
저길을 우리가 올라갔다 왔다구?
눈인지 사막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이고...
꼭두새벽 보이지 않을때 올라가길 잘했다 싶다. 환할때 되돌아 보니 언덕이 정말 새삼스러웠다.
온통 하얀 설산은 눈인지 사막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결코 완만한 경사는 아닌데도 내려올때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냥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반은 끌려 내려가게 된다.
발로 대피소에서 안자일렌을 풀고...
아, 발로 대피소까지 왔다. 이곳부터는 나이프 릿지는 없으니 자일을 풀고 가기로 했다. 한참 쉬면서 간식을 먹는데 다른건 잘 먹히지 않는다. 내 초코렛은 다 먹어버려 홍샘 초코렛 하나 얻어 먹었다. 헌데 먹어도 먹어도 헛헛했다.
날도 풀렸는지 햇살도 따가워 더웠다.
역시나 속이 좋지 않아 바쁘게 하산하는 박교감
박교감은 입술도 다 터졌고 간식도 거의 먹지않고 물만 마신다. 날이 더운데도 우모잠바를 벗지 않고 구떼까지 하산했다. 몸이 좋지 않아 그런것 같다.
일단 구떼에 가면 물을 구할 수 있으니 구떼까지만 가면 될것 같다.
하산길도 까마득하고...
올라갈 때는 6시간 걸린 길이 하산할때는 역시나 빨라 3시간 걸렸다.
다들 너무 피곤했다. 잠시 쉬기로 하고 테이블레 엎드려 자는데 몸이 추웠다. 홍샘 기내용 담요를 빌려 뒤집어 쓰고 한숨 잤다.
자고 나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시키려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 오므렛을 시켰는데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다 먹었다가는 고소 올것같았다.
물이 거의 다 떨어져 물을 두병 사자고 하니 하산하는데 물이 많이 안 필요하다도 한병만 산다.
11:50 구떼에서 하산 시작.
구떼에서 하산을 하며...
걸음이 느린 나와 박교감이 조금 먼저 출발한다고 했다. 올라갈 때는 나보다 잘 올라갔는데 하산할때는 거의 탈진한것 같아 좀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앞서서 가고 바로 내 뒤로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도다 박교감 매트가 배낭에서 빠지며 끝없이 굴러내려 간다....
내려가는데 어제 열차에서 봤던 멋진 커플이 이제야 구떼를 올라간다. 아는체를 해 우린 몽블랑엣 환타스틱한 경치를 봤다고 하니 자기도 내일 몽블랑에 도전한단다.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날이 더워져 목이 말랐다. 헌데 물도 거의 없어 우리팀을 기다리니 류샘이 제일 먼저 내려온다. 물 좀 달라고 하니 자기 물은 자기가 확보해야 한다고 한마디 한다. 물론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좀 듣기 거북했다.
물을 한병밖에 사지 않아 들고 올 기운도 없고 해서 그냥 왔는데 내 물병에 좀 덜어가지고 올걸 그랬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을 못했다. 먹는것 같고 좀 치사하게 구는것 같았다.
니데글은 완전 땡볕이고...
독수리 삼형제는 기운이 남는지 놀며놀며 내려온다. 날보고 먼저 내려가면 기차표 번호표를 받아 놓으란다.
참 내....
하산하는데 발바닥에 불이 나는것 같다. 양말을 두개 신어도 발바닥 아픈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한 여자도 나처럼 발바닥이 아픈지 아예 등산화를 벗고 양말 바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등산로가 니데글 역까지 잔돌이 하도 많아 피해야 피할 수 없는 그런 그지같은 길이다.
아래에는 패러글라이딩 타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날아다니고 있고 일요일이어서인지 가족단위 나들이 팀들이 많았다.
15:25 니데글 도착.
15:50 기차표를 받고 거의 혼수상태에서 종점에 도착하니 16:55.
기차 종점에 내려 다들 지친 모습
오샘에게 연락을 하니 데리러 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빨리 내려와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부랴부랴 야영장에 두사람 내려주고 텐트 치도록 하고 데리러 온다고 한다.
일요일이라 가게는 거의 문을 닫았다. 목도 마르고 출출해 하산주 겸 해서 생맥주를 한잔씩 마시기로 하고 문 열린 집을 찾아갔다.
오샘 기다리며 생맥주 한잔으로 등정을 자축하고...
이집은 영어 메뉴판이 있고 주인이 영어가 통했다. 박교감은 이젠 좀 살만한지 바로 담배를 사서 핀다. ㅎㅎ
맥주 한잔 하고 있으니 오샘이 와서 축하해 준다. 고맙고 많이 미안했다. 옥주봉에서도 고소때문에 함께 산행을 못했고 이번에도 좀 무리를 하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데 못가 정말 아쉬웠다.
주말이라 고기 살 곳이 없다고 대장님이 불고기 피자를 네판이나 사 오셨고...
18:30야영장에 오니 대장님과 신샘이 텐트를 쳐 놓고 있었다. 장을 보려고해도 마트가 다 문을 닫아 장도 못 봤다면서 저녁을 자기네들이 쏜다고 나가 먹자고 하는데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은지라 우리들은 밥이 먹고 싶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 몸도 많이 피곤했고.
일단 씻고 밥 하고 있는 반찬과 재료로 국을 끓여 먹기로 했는데 고기 먹고 싶다는 박교감 말을 들은 대장님이 나가셔서 고기는 못 사시고 피자집에서 불고기 피자를 사 오셨다. 그것도 4판 씩이나...
밥에 피자에 정상축하주와 와인까지 먹으니 정말 배 터질것 같았다.
내일은 마터호른을 가기 위해 쩨르마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은 두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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