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8년

팔공산 사찰순례 (11/9)

산무수리 2008. 11. 14. 00:23
‘사막·4’ 부분 - 김남조 (1927~ )

하늘과 땅이 너무 멀리 서로 물러나 있어서

가운데가 텅 비었다

이 공포스런 거대 허공,

지구상의 큰 산들을 깎아 다듬어서

소슬한 벽 가리개로 세워본들

그래도 어림없는 헐렁함이겠거늘 […]

한 번 사막의 오지를 느껴본 후엔

어디에도 떠나지 않는 이들이 있다

평생 동안 신을 찾아다닌

구도자나 은수자에겐

이곳이야말로 더없이

신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무한 천공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보인다. 기댈 곳 없는 곳에서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나비가 보인다. 인간은 살아서는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죽어서는 하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살아서 무한 천공을 통해 하늘을 보는 것은 갈 곳을 미리 염탐하는 거다? 갈 곳 있는 자는 행복하다. 하늘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루카치) ‘사막의 은수자’는 독존의식(獨存意識)의 극한을 추구하는 자이다. <박찬일·시인>


코스개관: 와촌-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중암암-백흥암-은해사 (8:30~13:50)
날씨: 흐리고 비 내리는듯 마는듯

오늘 산행은 짧게 하기로 해 점심도 싸지 않고 아침도 일찍 먹고 나섰다. 산행 기점과 종점이 다른지라 차를 하양면사무소 주차장에 세워놓고 갓바위 가는 버스 8:00 승차.
20 여분 만에 갓바위 주차장 도착.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인지라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대구쪽보다 이쪽에서 올라가는게 제일 짧은 코스라고 한다. 특히나 갓바위 부처님은 약사여래인데 부산쪽을 향해 있어 특히나 부산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길가에는 엿, 인절미, 염주 등을 팔고 있다. 산이슬 오마니 드릴 엿 사고 우리들고 먹고 나도 팥 한되 샀다. 팥밥 해먹으려고...

  

 
갓바위 가는길

 

 
갓바위에서

올라가는 계단 양 옆 단풍이 곱다. 여산은 진작에 올라가 버리고 30분도 채 안걸려 갓바위 도착. 사람들이 벌써 꽉 차 통행에 불편할 지경이다. 잠시 구경하고 내려오다 칠성각 앞 등산로로 산행 시작.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동봉쪽이 아니라 선본사에서 질러 오는 길로 온것 같다는 산이슬.

 
팔공산 주능선에서

등산로는 시간이 일러서인지 비교적 한갖지다. 여산은 3번째 팔공산 산행인데 늘상 조망이 좋지 않았다고 불만이다. 나무천사는 팔공산 자체가 처음이다. 오늘 코스는 책에서 본 구멍절이라는 '중암암'을 가보고 싶다 했다. 여산도 은해사는 안 가 봤다고 해 두 절이 있는 능선에 붙기로 했다. 이 능선상에 '백흥암'이라는 비구니절이 있는데 이 절도 초파일만 개방하는 절이라는데 특히나 수미단과 가릉빈가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팔공산에 있는 절인줄은 미처 몰랐다는 여산. 이래저래 이쪽 능선으로 갈 이유가 충분하다.

사진 찍어가면서 널널하게 산행하는데 팔공CC 근처 단풍이 곱다. 동화사쪽에는 소나무가 많고 이쪽은 활엽수가 많다. 단풍이 이쪽이 더 곱다.
능성재에서 우측으로 접어드는 은해사 가는길. 평소 이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는데 오늘은 간간히 내리는 비 탓인지 한갖진 모습이다.
한팀이 산행을 하다 비가 내리니 내려가냐 마냐 설왕설래 한다. 일단 밥 먹고 생각한단다. 어제 우리들 모습같아 한참 웃었다.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만년송

 
삼인암

다행히 비는 내리는듯 마는듯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쪽 능선은 특히나 평탄하고 길이 아주 좋다. 웰빙 모드에 맞는 코스다.
제일 위에 있는 절이 중암암인데 돌로 된 문틈으로 들어가는 절이어서인지 가기도 전에 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암암 가기 전 왼쪽의 만년송도 좁은 바위 틈을 지나야 볼 수 있는데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바위 모습도 심상치 않고 특이하다.

 
중앙암의 돌로된 일주문

 

 
작고 어여쁜 중앙암

 
화장실도 바위 구멍을 지나야 갈 수 있다

중암암 내려가는 곳에 탑이 있고 굴도 하나 보인다.
좁은 돌계단을 내려서니 일주문 대신 바위문 안쪽에 작은 사찰이 보인다.

법당과 산신각이 붙어있는데 축대를 쌓아 아주 좁은 곳에 앉혀 놓았다. 심지어는 해우소도 바위 틈에 위치해 있는데 그 깊이가 장난이 아니라고....
중암암 백구는 순하기도 정말 순하다.
지난 초파일에 산이슬이 백흥암과 중암암에 왔었다고 한다. 특히나 백흥암 공양은 부페로 아주 정갈하고 맛도 좋았단다.

 
중앙암에서 임도 내려가는 길-가을 그 자체

중암암 구경하고 포장도로쪽 하산길에 가을이 그야말로 꽉 차 있었다. 아무나 서면 영화 한장면이 연출되는 광경이다.
이곳에서 포장도로 5분 정도 내려가다 도로 왼쪽 산길로 접어들 수 있다. 물론 계속 포장도로로 내려갈 수 있고...


백흥암 입구의 은행나무


보화각

 
경내에서

 
법당에서 보이는 풍경

산길도 오솔길로 아주 좋다. 10여분 정도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 노란 은행나무가 절 앞에 있고 햇살도 내려쬐는데 의외로 절이 아주 컸다.

마침 이곳에서는 제를 지낸 신도들이 나오는데 여산이 스님께 가릉빈가를 보고 싶다 들이대니 보여주기로 했나보다. 재주도 좋다.
법당은 자물통을 채워놓았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는데 단청도 하지 않은 단아한 건물과 잘생기신 부처님 (수미단 보느라 제대로 못 봐 아쉽다. 이 수미단이 전국적으로 제일 아름답다고...), 수미단, 수미단 아래 가릉빈가, 탱화도 유명한데 도난 당했다 되돌아 왔다고 한다. 국보로 워낙 오래된데다 색깔이 자꾸 퇴색 되 개방을 하지 않는게 납득이 된다.
귀한 문화재를 보고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나오니 절 뒤로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이 사진은 찍어도 되냐고 하니 그것 된다고 하신다. ㅎㅎ
이 사찰의 현판은 대부분이 추사 작품이라고...
대웅전에서 마주보이는 보화각 창문 틈으로 보이는 노란 단풍나무. 그 자체가 가을로 그림이다.

시절인연이 닿아 이런 귀한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 절은 물맛도 좋다고 물 떠가라시는 스님. 내치지 않고 중생을 품어주는 그 마음이 얼굴 표정만큼이나 여유로와 보이신다.
좋은 구경하고 절 앞에서 고구마와 차로 간식을 먹는데 진주에서 차로 온 분이 감을 깎으며 진주감이라고 먹어보라 하신다. 헌데 감이 크기도 하려니와 정말 맛 좋았다. 감까지 얻어먹고 이젠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온다.
백흥암을 보지 않고 계속 산길로 내려설 수도 있다고 한다. 그쪽 능선에는 인조의 태실도 있다고 한다. 이 능선 끝이 저수지와 닿아 있다.


은해사

 
부도밭

포장도로 20분 정도 걸어 내려오니 보이는 은해사. 절 규모에 비해 워낙 정갈한 백흥암을 보아서인지 웬지 어수선한 느낌이다. 더구나 사찰 규모로는 번창했을 절인데 지금은 웬지 퇴락한 느낌이다.
이곳에는 황우석 박사의 복제개를 분양받아 키우고 있었다.

절 둘러보고 일주문을 나서니 입장료가 2천원. 헌데 절 앞 식당 태반은 문을 닫았고 문 연 곳도 사람도 거의 없고 한갖진 모습이다.
이 절이 부흥(!) 하려면 우담바라라도 꽃 피어야 할것 같다.


버스종점의 추일서정

여기서 하양 나가는 버스가 2시반. 시간이 40분 정도 남아 간단하게 칼국수과 파전으로 점심을 먹고 5분도 안되는 곳에 버스 종점.
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2;35 차 타고 하양에 내리니 오늘이 이쪽 장날. 냉이도 사고 단감도 사고 산이슬 경산에 내려주고 경산 IC 들어서는데 해가 나는데 비가 잠깐 내린다.


경산IC에서 본 완벽한 무지개~

그러더니 아주 예쁜 무지개가 떴다. 우와~
이렇게 완벽한 무지개는 최근들어 처음 본다는 여산. 아예 사진 찍으라고 차 한쪽에 대주는 나무천사.

중부내륙을 잘 탔는데 서울에 가까이 올 수록 차가 많이 막혔다. 여주 휴게소는 아예 차가 넘쳐 들어갈 수 조차 없다. 한번 쉬지도 못하고 평촌에 오니 9시. 거의 6시간 걸린것 같다.

날씨가 좋았다면 영남알프스 한구간 종주를 할 수 있는건데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그리운 얼굴도 보고 함께 행복한 산행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