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동계 서락 프로젝트 1 (1/11~14)

산무수리 2009. 1. 18. 22:00

‘털신’-손택수(1970~ )


 토방 아래 늙은 개가 쥔 할머니 고무신을 깔고 잔다 마실 갔다 와서 탈탈 털어논 고무신을 제 새끼를 품듯 품고 잔다

눈이 내리는데, 올겨울은 저렇게 몇 날 며칠 눈만 내리고 있는데

고뿔이라도 들었는지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뚝 뚝 댓가지 꺾어지는 소리에 가끔씩 귀를 쫑긋거리기도 하면서

뒤꿈치를 꿰맨 고무신에 축 처진 배를 깔고 잔다 차디찬 고무신에 털가죽을 대고 잔다


나는 아직 저 잠에서 깨지 않았다. 할머니의 영원한 잠처럼 달콤하다. 나의 꿈속에는 할머니가 밟아온 이웃집 뜨락과 마을의 외진 고샅과 양지 바른 정자나무가 있다. 푸념이 있고 싸움이 있고 위로가 있다. 꿈속에서도 뚝뚝 댓가지 꺾어진 만큼 세월이 가고 추억이 눈처럼 푹푹 쌓인다. 누구든 저 잠을 탈탈 털어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저 잠은 우리가 잃어버린 잠이므로 꿰매고 꿰매어 오래 신고 다니고 싶은 털신이므로. <신용목·시인>

 

 

 

설악 프로젝트

일정-1.11 (일) 녁 춘천에서 모이기 (1박)

        1.12 (월) 한계령-귀떼기청봉-대청-중청 (2박)

        1.13 (화) 중청-공룡-비선대-설악동-강릉 (3박)

        1. 14 (수) 강릉 관광하고 집으로

멤버: 미녀 삼총사

날씨: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추위. 그래도 그 추위를 이기고 서락에 무사히 든 우리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작년 1월 짱해피와 지리산 종주. 이번 지리 종주에도 함께 하려 했으나 휴가 일자가 맞지 않는지라 우리끼리 지리에 다녀왔고 이번엔 짱 휴가에 맞춰 서락에 들기로 했었다.

함께 가면 좋을 나무천사, 여산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간단다.

흥, 우리끼리 못갈건 또 뭔가? 미녀 삼총사끼리 가는거야~

문제는 교통편. 머리를 굴려 주말부부인 짱네 이주니님 출근 승용차에 실려 가기로 했다.

 

대구에서 안양에서 각자 버스를 타고 일욜 저녁 춘천에서 만나 짱과 터미널에서 만났다. 짱네 집에 가 저녁 먹고 1박 하고...

이주니님, 아들은 감기에 걸려 환자가 두명이나 되는 집에 좀 미안하긴 했다.

 

월욜 4시반 기상. 아침 먹고 도시락 싸고 5:20 춘천 출발. 이주니님 운전차량에 실려 한계령에 도착한 시간이 7:00.

하산해 갈아입을 옷, 먹을것은 차에 두고 내려 지리산 산행때보다 짐이 가볍다는 짱.

차에서 내리자마자 찬 바람이 우릴 기죽인다. 얼른 연탄난로 피어져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스패츠, 잠바 등으로 중무장하고 출발하려는데 정말이지 심란타. 이 추위에 산에 가 설마 얼어 죽지는 않겠지?

 

한계령 휴게소 화장실에서

 

7:30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언 눈. 일단은 아이젠은 하지 않고 출발해 보기로 했다.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내복과 두꺼운 바지를 입었는데도 허벅지가 따끔거린다. 지난주 덕유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하니 설렘 보다는 부담이다. 과연 얼어죽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끝낼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고....

 

 

해도 뜨고...

 

보름이 막 지난 달은 아직 지지 않았고...

 

 

해가 서서히 올라와도 추위는 가시지를 않고....

 

날씨가 너무 추워 디카도 얼고 손도 시려운지라 사진 찍는것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산이슬이 후미를 봐 주니 진행이 수월하다. 아이젠은 오르막에서 진작 착용했다. 산에는 우리밖에 없는것 같다.

지난주에는 지리를 전세냈는데 이번주는 설악을 전세냈나?

오늘같은 날 산행 하는게 미친짓인가? 그것도 설악을?

 그래도 산행을 하다보니 속잠바까지 입으니 땀이 나 일단은 한꺼플씩 벗을 수 있었다.

 

날이 춥지만 조망은 점점 멋있어 가고....

 

계곡이 얼어 다리를 건널 필요 없는 한계령 갈림길 가는길.

일단 1시간 반 정도 걸려 삼거리 도착. 여기서 귀떼기 청봉을 찍고 가느냐 마느냐...

산이슬 짐 놓고 귀떼기 가자 한다. 당근이지...

짐 삼거리 좀 벗어난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도 먹고 벗었던 속잠바도 도로 입고 귀떼기를 향해 출발.

 

 

 

 

 

귀떼기 가는 길의 경치

 

귀떼기 가는길 바람이 더 세지고 운무가 끼어 앞 능선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 덕에 상고대가 보이기는 하지만 하도 추워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디카는 꺼내자 마자 바로 얼어 버린다.

디카를 품속에 품고 가야 그나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것 같다.

정신없이 귀떼기에 갔다 사진 한장 겨우 찍고 정신없이 돌아왔다. 2시간 정도 걸린것 같다.

이곳에서 한계령에서 출발해 장수대 가는 부부 한팀만 만났다.

 

도로 배낭을 매니 더 무거워 진것 같다는 짱해피.

날이 춥지만 눈도 많이 쌓여있고 햇살도 점차 따가워져 선크림을 바르려는데 자꾸 콧물이 난다.

두꺼운 장갑을 껴도 두 사람은 손이 많이 시린것 같다. 뭐 한번 하려고 하면 장갑 벗고 끼는것 자체도 큰 공사다.

디카 한번 꺼내 사진 찍는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운무에 가린 귀떼기청봉

 

그나마 귀떼기 청봉에 다녀오고 나니 바람도 좀 자고 햇살도 많이 퍼져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좀 푸근해 졌다.

나중에 한 말이지만 산이슬조차 귀떼기청봉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말을 하지 그랬냐고 하니 말 해봐야 '대피소 일찍 가면 뭐해?' 라고 거절할게 뻔해서...

졸지에 사람을 모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헌데 안 간다고 안하는데 내가 먼저 가지 말자는 말은 또 못하는데...

 

짱해피 짐 도로 매니 아주 힘드나보다. 오르막에서는 거의 사망 직전.

설악이 처음도 아니것만 두 동상들은 추운 날씨에 안경에 김서려 잘 보이지도 않고 특히나 짱 잠바는 많이 부실해 추울것 같다.

중간 바람 덜 부는 햇살 드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헌데 도시락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얼어 버린것 같다. 이러다 굶어 죽는거 아닌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열어 달라고 하지?

혹시나 싶어 뜨거운 물을 부으니 열린다. 겨우 밥 먹었다.

 

 

끝청에서

 

끝청 가는길 한 커플만 봤다. 이 팀 남자는 큰 배낭을 맸고 여자는 작은 보조배낭 한개.

누군 무수리과라 머슴도 없어 녀자들끼리 큰 배낭매고 이 추위에 낑낑대며 가고 누군 머슴 대동해 우아하게 가고....

그래도 공주보다는 무수리로 사는게 더 좋다. 내가 가고 싶은곳 내 맘대로 다는게...

 

중청이 점점 가까워지고...

 

귀떼기에 드리웠던 구름도 걷히고 날은 맑아져 시계도 아주 좋아졌다.

봉정암도 보이고 진작부터 보이던 대청, 중청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져 그나마 희망을 갖게 된다.

짱 힘들지만 정말이지 나름대로 열심히 올라와 크게 쳐지지 않았다. 단지 뵈는게 없어 나무에 머리를 너무 많이 부딪친것 빼고는... ㅎㅎ

 

드디어 보이는 중청, 그리고 바다인지 하늘인지 헷갈리는 동해바다

 

갑자기 나타나는 중청, 그리고 바다. 어찌나 선명한지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설악에 여러번 왔어도 이렇게 시계 좋은 날은 두번째다.

여산이 왔다면 사진 찍느라 진행을 하기 힘들뻔 했다. 오늘은 작가가 없고 날도 추운지라 생각보다 산행 시간이 많이 단축 되었다.

중청에 들어서니 관리공단 직원만 보인다.

감격에 겨워 사진 한장 타이머로 찍으니 찍어 달라고 하지 그랬냐고 한다.

대청에 올라가 찍어 주시면 안되겠냐하니 거긴 안 올라가신다고.. ㅎㅎ

 

 

대청에서

 

일몰까지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또 해가 지면 더 추울것 같아 일단 대청을 올라가 정상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이젠을 빼고 가도 된다는 소장님 말씀에 빼놓고 스틱만 들고가니 눈이 남아있긴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헌데 정상에서 사진 찍는데 손이 어찌나 시려운지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 두사람 정상 사진만 겨우겨우 찍고 서둘러 하산.

 

대피소에 일찍 들어보내 주어 들어가보니 이미 세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소장님은 심심하신지 자꾸 들어와 참견을 하신다. 기념사진 함께 찍자고 하니 흔쾌히 같이 찍어 주신다.

다음달 산지에 나올 예정이시란다. 그러다니 개띠가 누구냐고 해 나라고 하니 그 나이 안 들어보인다나 뭐라나?

저주받은 (!) 동안이라고 웃겼다.

등산로 입구에 사람이 없어도 센서가 있어 몇명이 들어왔는지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늘 20 명 정도가 예약 되어 있다고 한다.

어제는 더 추워 희운각 예약자 한명도 안 왔고 예약 안한 2명만 와서 잤다나?

 

날이 워낙 추워서인지 대피소 안도 썰렁하다. 우리가 하도 춥다고 하니 온도를 많이 높혀 주셨다. 담요도 한장씩 더 주셨고...

취사장에서 밥을 제일 먼저 해 먹으니 뒤늦게 대피소로 사람들이 들어선다.

대부분은 라면과 햇반, 한 팀은 고기를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와 우리보고도 먹으라는데 이미 밥을 다 먹어버려 그냥 대피소 안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불러줄까 했는데 부르지는 않았다.

 

한 팀은 공룡을 하러 왔다 하도 추워 중청에서 1박하고 오색으로 하산을 한다고 한다.

뒤늦게 100L 도 넘어보이는 배낭을 진 청춘이 들어선다. 홀로 야영을 하다 오늘은 대피소에서 잔다는데 짐 푸는데 하루 종일 싸는데도 하루종일.

배낭에서 온갖게 다 나와 구경만 해도 재미난다. 특히나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짱한테는 좋은 구경거리 같다.

이 청춘은 서북릉을 하고 왔는데 내일은 천불동으로 하산을 한다고...

 

용대리에서 걸어왔다는 한 젊은오빠, 우리가 내일 공룡으로 간다고 하니 시간 많이 걸릴거라며 걱정을 해 준다.

우리 시간 많다고 내려가 1박 더 하고 올라갈거라고 했다. 정말 걱정도 팔자다.

 

중청에서 본 속초 시내 야경

 

 밤에 별이 뜨고 속초 시내 야경이 멋지다.

소장님이 쥐약 줄까 하신다. 고맙지만 사양하고 6시부터 취침 모드.

초저녁에는 추웠지만 그래도 밤에는 따뜻해져 잠바를 벗고 잘 수 있었는데 두 동상들은 언 몸이 영 녹지 않는지 짱은 얇은 내 우모잠바를 밤새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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