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설국에서 길을 헤매다 (오대산, 1/30~31)

산무수리 2009. 2. 2. 22:35

‘완행열차’- 허영자(1938~)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밀란 쿤데라는 빠름과 망각이, 또 느림과 기억이 비례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쿤데라 식으로 말하면 “급행열차”와 망각이, “완행열차”와 기억이 비례관계에 놓인 게다. 발터 베냐민 식으로 나누면 급행열차에서는 금방 잊혀지는 순간적 ‘체험’이, 완행열차에서는 오래 기억되는 영구적 ‘경험’이 이루어진다. 급행열차를 놓치고 완행열차를 탄 허영자는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과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 <박찬일·시인>

 

 

 

산행일자: 2009.1.30 22:00 범계역 출발 (안내산행)

코스개관: 진고개 (2:30)-동대산-두로봉-두로령-북대암사 (미륵암)-상왕봉갈림길-상왕봉-비로봉-적멸보궁-상원사-주차장 (12:30)

날씨: 산행 시작 전부터 내리던 눈이 산행 내내 눈이 내렸다. 상고대는 환상이었지만 시계가 트이지 않아 사진은 흑백 사진같다...

기타: 안내산악회 대장이 길을 잘못 드는 실수때문에 임도에서 길을 헤매다 겨우 상왕봉, 비로봉 찍고 하산. 원래 계획은 운두령까지 간다고 되어 있었으나 쌓여있는 눈에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비로봉만 찍은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나무천사가 오대산-운두령 종주를 진작에 신청했다. 산행 예정시간이 13:30 이라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가게 되었다.

긴산행을 해 보기는 했지만 그 어느 산행보다 걱정되는 코스. 더구나 이 코스는 이번 겨울 숙원사업이 아닌 옵션인데...

 

밤 10시 범계역에 우리 말고 2사람이 더 탔다. 거의 만차가 되어 휴게소 한번 쉬고 1시경 평창 휴게소에서 밥을 준다. 헌데 눈발이 날린다. 날은 춥지 않았고 눈이 설마 많이야 올까 했다.

2시 좀 지나 진고개 도착. 차 안에서 준비하고 눈이 오고 있으니 고어잠바, 스패치,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출발한 시간이 2:30.

이곳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산행시간은 15시간 준다는 대장. B코스는 오대산 상원사로 하산인데 9시간 예정. 2시까지 상원사 주차장에 대기하다 선자령으로 떠난다고 했다.

나도 상태 봐 가면서 혹시나 많이 처지면 상원사로 하산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체력이 딸리는 사람은 후미쪽에 서라는 대장의 말. 러셀이 제대로 안 되어있으니 후미가 힘이 덜 들어서라고...

헌데 준비 덜 된 사람이 많은지 출발을 안해 중간 정도에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초장 급경사 올라가는데 눈이 정말 많다.

오늘 산행이 기니 다들 긴장하고 눈 내리는 소리가 비소리같이 시끄럽다. 눈도 시끄럽게 내리는 줄 처음 알았다.

눈 내리고 눈은 쌓여 있고 몸은 지쳐가고...

상고대가 환상이지만 찍어봐야 나오지도 않고 찍을 마음의 여유도 없는지라 그냥 눈으로보고 마음에 저장하였다.

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대장은 어찌 길을 찾나 신기하기만 하다. 그냥 우리는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 쫓아간다.

 

1시간 만에 동대봉 도착. 통과.

이곳에서 두로봉이 6k 가 넘는다. 언제 가나....

한참 진행하고 간간히 이정표 보이고 중간중간 길이 잘 보이지 않는지 선두에서 알바를 해 우왕좌왕 하기도 하고 도로 백했다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두로봉 가까워가니 이정표는 점점 더 줄지를 않는다. 그래도 7시 두로봉 겨우 도착.

두로봉 찍고 되돌아와 산불감시초소에 들어가 잠시 간식을 먹었다. 이때가 되니 비로서 랜턴 없어도 진행이 가능하겠다.

랜턴 빼고 이제는 비로봉 뱡향으로 진행하는데 여기부터는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을거라는 대장의 말.

뒤에 쫓아 가려고 해도 쉬는 사람이 더 많은지라 비교적 앞 그룹에 끼어 진행.

 

두로봉 지나 임도를 건너 (두로령) 앞 능선에 다시 붙으며....

 

눈이 많긴 많다. 걷는데 힘이 많이 든다. 내리막에서는 죽죽 미끄러지듯이 내려가면 되는데 오르막은 정말 힘들다.

눈이 많이 쌓여 있는곳은 밟으면 눈니 무너져 내린다. 가끔 발을 헛디디면 푹 빠지기도 하고...

그나마 춥지 않아 얇은 장갑으로 버텼는데 눈은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으니 장갑도 젖어와 손도 시려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안될것 같아 두꺼운 장갑으로 바꿔 꼈다. 그 추운 설악에서도 거의 얇은 장갑으로 버텼는데 오늘은 산행 대부분을 두꺼운 장갑을 끼고 진행을 했다.

상왕봉 가다 배가 너무 고프다. 그냥 길거리에 서서 빵과 쥬스로 요기를 했다. 앞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뒤에서 오던 사람들이 추월해 간다. 헌데 이 사람들 대부분도 힘든가보다. 바로 위에서 역시나 쉬고 있다.

다시 힘내 능선에 올라붙더니 왼쪽 사면으로 내려선다. 길이 봅슬레이장처럼 길이 나 있다.

임도가 나왔다.

 

앗, 두번째 임도다~

 

이 길이 나오면 안된단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지 않고 서 있다.

임도가 2번 나오면 안되는거란다. 길을 잘못 든것 같다는데 대장과 선두 몇몇은 임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지도를 봐도 잘못된 길이란다. 대장과 어렵게 통화를 해 그 길이 아니라고 했다.

두로봉에서 오늘 목표지점인 운두령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 되 버렸고 차선으로 효령봉까지 찍고 상원사로 하산 한다고 했었다.

헌데 이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효령봉은 커녕 상왕봉, 비로봉조차 찍지 못하는 거라고 한다.

종주 한다고 그 새벽에 나와 당일 산행만도 못한 산행을 하면 안된다고.

 

방향이 그쪽이 아니라 반대쪽인데 우리가 내려온 사면을 치고 올라가고 싶지 않는게 대세인것 같다.

한 사람이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두로령에서 탈출하고자 임도따라 상원사로 내려가는 중이라고 한다.

누군가 임도를 따라 가다 미륵암에서 비로봉 가는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도를 20여분 따라 (아주 많이 내려온듯한 느낌, 정상에 올라가야 하는데 이렇게 하염없이 내려가도 되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고..) 내려오니 미륵암(북대) 지나고 조금 더 내려오니 보이는 비로봉 이정표.

 

일부는 산행을 포기하고 상원사로 하산을 하고 (임도따라 가는 길도 2시간이 걸린다던가?) 일부는 밥을 먹고 올라간다고 하고 우리들은 일단 올라가기로 했다. 눈이 계속 내려 밥 먹는것도 애로사항도 많고...

비로봉 가는길은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어서인지 그나마 눈이 빠질 정도는 아닌것 같다.

한참 올라가니 두로봉에서 상왕봉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길로 왔어야 제대로 된 길인데...

배가 너무 고프다. 이정표 앞에서 우리는 밥 먹고 다른 사람들도 떡, 과일로 허기를 면한다.

 

10;00 드디어 상왕봉.

 

상왕봉에서 사진 찍고 경치 사진도 몇장 찍고 비로봉을 향해 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늘 처음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은 상왕봉 찍고 하산할 예정이라고..

그 이후 간간히 비로봉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왕봉에서..

 

 

비로봉 가는길의 설경

 

상왕봉에서 비로봉까지도 생각보다 멀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으니 산에 눈, 나무밖에 보이는게 없다. 흑백인지 칼라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상황봉에서 비로봉 가는길에 보이는 주목. 오대산에 주목이 있는줄 이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상왕봉에서 1시간 꼬박 걸려 비로봉 도착. (11:10)

 

 

정상에서

 

비로봉 정상에서 사진 찍고 효령봉쪽을 혹시나 해 금 밖으로 나가 보았다.

헌데 러셀도 되어있지 않아 무리하지 말자는게 대세인것 같다.

그나마 10여 명 외에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후미팀들 대부분도 포기하고 중도하산을 했나보다...

 

 

 

비로봉에서 적멸보궁으로 내려가는 길

 

비로봉찍고 적멸보궁으로 가는길에는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대부분 오대산 정상은 이 코스로 올라오나 보다.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일텐데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부지런히 게단성 길을 40분 내려와 적멸보궁쪽으로 올라갔다.

 

 

법당 뒤쪽의 사리탑? -정말이지 소박한 탑이다...

 

이 여인은 무슨 소망이 있길래 이 눈을 맞고 기도를 할까?

 

사진 몇장 찍고 부처님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인사하고 하산하는데 공양 올린 물건을 아래 절까지 들어다주는 보시가 있나보다.

난 쌍스틱인지라 나무천사가 2봉지를 들고 하산한다.

하산하는 길에 보이는 보살님들. 대부분은 잠바에 아이젠을 했지만 그게 없는 사라들인 신발 위에 양말이나, 스타킹을 덧신고 올라온다. 이렇게 하면 미끄럽지 않은것 같다.

 

 

적멸보궁 관리 사찰

 

이쪽 신도들이 많이 오나보다. 보시도 많이 하고...

이 눈을 맞고 올라오는 보살님들.

사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그야말로 질린다.

상원사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내려가는데 보살님들 쫓아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12:35 드디어 상원사

 

상원사다. 드디어 다 왔나보다.

세조와 관련이 많은 상원사. 문수전 앞 고양이 석상.

이곳에서 걸어내려가니 주차장.

대장이 아주 많이 미안해 한다.

주는 밥 먹고 후미 기다렸다 13:40 출발.

이때까지 내리던 눈이 속세에 돌아오니 갠다.

 

눈때문에 계획된 산행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올 겨울 숙제도 아닌 오대산 종주를 했고 눈은 원없이 보고 밟고 맞고..

눈이 해 줄 수 있는 거의 모든것을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