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2009년 일기

답사는 힘들다? (북촌 답사기, 12/15)

산무수리 2009. 12. 17. 10:23

'소행성을 지나는 늙은 선로공’-황병승(1970~ )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오후

빛 바랜 작업복 차림의 한 늙은 선로공이

보수를 마치고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앙상한 그의 어깨 너머로

끝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이어진 은빛 선로

그러나 언제였던가, 아득한 저 멀리로

화살표의 끝처럼 애틋한 키스를 나누던 기억…

보수를 마친 늙은 선로공이

커다란 공구를 흔들며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하늘, 바람, 은빛 선로, 그 위를 걷는 선로공의 뒷모습. 해맑은 오후 가을의 오브제. 저 멀리 소실돼 가는 만남의 아득한 기억. 끝내 만날 수 없는 너와 나의 평행. 우주의 현자 늙은 선로공은 커다란 공구로 무엇을 보수했을까. 만나면 재앙인 소행성이 충돌할까 그 너머 은하까지 평행 궤도를 잡고 왔나. 그렇잖아도 외로움이 더해가는 이 계절에. <이경철·문학평론가>

 

15여 년 전 직장에서 만난 동상뻘 친구인 안.

약간 까칠한듯 하면서도 속정깊은 그녀를 (나랑 비슷하네.. 착각이라고?) 패밀리의 인연을 만들고 싶었던 안.

계론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고향인 원주로 이사를 갔다.

애 낳은 소식도 듣고 아펐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여름이면 강원도산 찰옥수수를 보내주고 가끔씩 안부전화를 해 게으른 언니를 챙겨주는 동상.

아그들 좀 크고 직장을 몇년 잘 다니더니 얼마전 전화가 왔다.

아그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라고 남푠이 그만두라고 종용을 해 지금은 백수가 되었단다.

셤 기간이라고 하니 올라온다고....

이렇게 쉽게 만나지는거야? 1시간반이면 온다고?

결국은 이것도 마음의 거리였나?

 

동서울로 나갈까 했지만 서울이 낯설지 않을테니 안국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날이 하필이면 강추위의 첫날.

가까운 내가 오히려 늦었다.

8년 만에 만나는데 길에서 봤더라면 못 알아볼뻔 했다.

그녀는 볼살이 빠졌고 나만 얼굴이 피다 못해 네모돌이가 되어있으니...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피자보다는 한식이 좋다고 해 인사동에서 낙지덮밥으로 점을 찍었다.

그리고 북촌나들이 하기로...

 

참고로 북촌이란?

정확한 지식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 헌데 읽어봐도 머리에 남지 않는게 문제.

오늘도 기껏 지도 인쇄해 놓고 책상에 얌전히 놓고 나왔다.

내식으로 쉽게 설명하면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의 공간이 북촌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니 궁궐 사이에 낀 동네이니 사대부, 궁 관계자들이 살았던건 당연한 이치일것 같다.

북촌 내에 안내소도 2곳 있어 지도가 들어있는 가이드북도 얻을 수 있고 단체팀은 사전 예약하면 가이드도 해 준다고...

우리는 일단 현대빌딩을 지나 창덕궁 담벼락을 끼고 도는 길 선택.

 

 

현대사옥 앞에는 관상감관천대 터가 남아있고 원서공원 지나면 불교박물관이 제일 먼저 나타난다.

헌데 유료 5천원이나 한다고...

만원짜리 자유이용권을 사면 5곳을 둘러볼 수 있다고. 시간이 나 본격적인 답사모드일때는 이 이용권을 구입하는게 유리할듯.

우린 오늘은 관광모드인지라 마당에서 사진만 찍고 출발.

 

 

여기서 끝까지 걸어들어가니 나오는 빨래터.

이곳 로칼 가이드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을 해 준다. 북촌 곳곳에 이런 분들이 계시는것 같다. 이 추운날에도....

 

 

 

 

빨래터 바로 옆에 보이는 한샘 디자인 연구소.

한옥 사이의 유리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이쪽 블록 전체가 한샘 소유인것 같다. 제법 크다.

단 들어가 볼 수는 없고 문 앞이 금이다. 경비가 굳건히 지키고 있다.

빨래터 앞 가이드께서 중앙고 가는 길을 알려주고 은서가 살던 집을 찾아보라신다. 그리고 문방구에 가면 자기 이야기를 하면 차도 공짜로 마실 수 있다고....

 

 

 

과연 중앙고앞에 가니 문방구는 문방구가 아니라 기념품 가게다.

한무리의 일본 관광객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회동 11번지 한옥골목이 있다는데 못 찾고 내려가다보니 재동초등학교.

사진에서 본 거리와 실제의 거리의 거리감. 사람이 사는 동네이고 이정표가 되어 있는게 아닌지라 지나치기 쉽다.

날이 너무 춥다. 답사의 변수는 날씨인것 같다.

산행은 추우나 더우나 그 나름대로 매력도 있고 악천후만 아니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데...

오늘 안과 난 복장불량의 대표. 이 바람찬 겨울날 목도리도 하지 않고 오다니...

멋내기나 했으면 말도 안한다. ㅠㅠ

 

 

 

 

곳곳에 장식물,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다.

한옥 건물이 간간히 보이는데 대부분은 입장료를 받는 갤러리나 공방, 아니면 찻집.

너무 춥다. 차 마시고 가자~

 

 

 

 

마침 재동초등학교 건너편에 마음이 가는 찻집에 들어갔다.

'전광수' 커피 전문점.

따땃한 차와 마카다미아 비스켓을 먹으니 배도 마음도 뿌듯하다. ^^

역쉬 겨울엔 따뜻한게 최고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어서인지 차마시는 사람들이 한팀 두팀 나가 비로서 한갖지다.

가회동 11번지를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종업원.

오늘 북촌 간다고 하니 걱정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바로 아래 안내소가 있으니 도움을 받으라고....

마냥 앉아 놀았으면 하는 유혹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옥골목은 봐야 할것 같다.

 

안내소에 가니 지도에 자세히 표시를 해 준다.

안내소 끼고 걸어올라가다 패밀리마트에서 우회전하면 가회동 11번지.

길건너 돈마약국 골목으로 가면 가회동 31번지라고...

 

 

 

 

 

 

 

지도를 보니 가회동 11번지는 여기까지 걸어내려오지 않고 중앙고 정문을 지나 왼쪽 골목을 들어서면 바로 갈 수 있는데 우린 내려왔다 되돌아 올라가게 되었다.

이곳에 닭박물관도 있다 하는데 못봤고 골목에 위치한 한옥들도 사람이 사는 곳은 별로 없었고 좁은 골목을 들어가보니 여기는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여 반가웠다.

대충 둘러보고 길건너 31번지로....

 

31번지 가는 길의 갤러리의 전시품.

 

 

 

 

가회동 11번지보다는 31번지가 조금은 더 품위가 있다. 있는 사람이 사는 동네였던것 같다.

이쪽에서 내려다보는 삼청동길과 멀리 보이는 산자락.

 

 

조망터에서

 

삼청동길 자니다보면 우측 언덕위의 한옥이 뭘까 했는데 그 궁금증이 여기서 내려다보며 해결되었다.

군데군데 좁은 계단과 골목이 있어 내려설 수 있는것 같다.

바람길, 우물길 등의 경겨운 안내판이 있었다. 내려가보자니 그냥 여기만 보자는 안.

 

옥상카페. 유럽 분위기. 여름이면 사람들이 제법 많을듯...

 

 

이곳을 지나 따라 내려오니 보이는 담벼락에 맹아학교 학생들 작품이 보였고 그걸 지나니 보이는 '그대에게 가는길'이라는 담벼락 작품.

이 담벼락이 정독도서관이라고...

 

 

 

 

 

 

 

 

 

 

 

담벼락의 시.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이 젤로 많다.

정독도서관 앞의 서울교육사료관을 둘러보았다.

전시품은 별건 없었고 옛날생각에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

 

 

 

 

사진 찍고 배지, 교표를 모아놓은 곳에서 모교 배지를 찾았으나 안 보인다.

한 아자씨가 그곳에서 교표를 열심히 그리고 계시다. 날 보고 경기고 교표를 아냐고...

배지야 알지만 교표를 어찌 알까...

 

 

 

 

나다아트홀 골목을 끼고 내려오면 덕성여중고를 지나 다시 인사동으로....

 

 

 

 

너무 춥다.

인사동으로 원점회귀해 차마시러 들어가 차 대신 단팥죽으로..

따땃하고 헛헛한 속도 달래고...

4시반경 하늘과 종로3가에서 만나기로.

안은 서울에 온 김에 한건 더 한다고 언니와 통화 후 종로3가 전철역에서 헤어졌다.

추운날 끌려다니며 병이나 안 났는지...

 

 

 

 

귀걸이를 하기로 한 하늘과 까만돌네 금방으로...

까만돌은 색소폰 연주회가 코앞이라 연습장에 갔다고 마눌님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예쁜 귀걸이 골라주고 값도 싸게 해 주고...

이덕 저덕 동창 덕이다.

하늘과 저녁 간단히 먹기.

그리고 난 참선가기.

 

북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한옥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옥 대부분은 거주용이 아닌 박물관, 전시관, 사무실 용도였고 그 대부분도 유료인게 좀 아쉽긴 하지만 작은 골목 속의 삶의 자취를 보니 좋았고 인위적이고 상업적인 인사동에 비하면 사람냄새가 나는 이곳이 훨씬 좋았다.

특히나 나같이 서울 출생이면서도 4대문 밖에 살았고 여고시절은 4대문 안에서 지낸 나한테는 나름 추억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곳이다.

그때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한게 유감이다. (공부나 잘했으면?)

문제는 여기가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이 올 수록 늘어나는건 카페나 찻집이 되 버릴것만 같다.

지금도 좀 건물이 깔끔하다 싶어 실펴보면 찻집이나 갤러리였다.

보존과 개발. 그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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