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12 산행일기

가을 지리에 들다 (10/3~5)

산무수리 2012. 10. 17. 01:00

시월- 이문재(1959~)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파란 하늘 맑은 구름 사이로 은행 잎이 초록의 빛깔을 벗는다. 노랗게 물든 은행 잎 사이로 흰 구름 투명하게 비쳐 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은행 잎 노란 빛 앞에서 긴 숨을 몰아 쉰다. 머뭇대는 바람 따라 온 세상이 투명한 노란 빛으로 타오른다. 그 사이, 나뭇가지 아래로 추락의 길이 놓이고 은행잎이 추락에 오른다. 잎의 느릿한 추락은 중력의 힘인가 세월의 힘인가. 보이지 않는 낙엽의 이유가 사위에 자욱하다. 숲에서도 도시에서도 노란 은행잎, 발길에 밟히는 낙엽 따라 파란 시월이 깊어간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여름마다 가던 지리를 올 여름엔 가지 못했다.

유난히 짧은 방학에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아쉬움, 말로 표현 못한다.

다행히 새 근무지가 10월 첫주가 단기방학이다. 욕심 같아서는 내내 설악으로 지리로 가고 싶지만 우선 멤버가 안되고 대피소 예약도 힘든지라 넘들 일하는 평일 지리에 가기로 했다.

큰산 체력이 딸려 못 간다던 여산에게 최대한 스케줄 널널하게 짜 함께 가기로 했다.

 

10/3 (수)

 

11시 남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우등버스 예매.

헌데 여산 전화왔다. 전철을 놓쳐 도착시간이 아슬아슬하다면서 표를 빼 놓고 버스 잡고 있으란다. 헐.

전철을 타니 등산복 차림이 많다. 왜지? 오늘 개천절이다. 그러니 주말 버젼으로 전철이 다니니 전철이 자주 없는 거구나.

도착해 차표 뽑아놓고 있는데 여산 전화, 11시 차인줄 알았는데 11시반 차라고...

여산 오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 사고 승차. 여산 정신없이 오느라 싸놓은 쌀, 간식, 모자 등 아무것도 안 가져왔단다.

휴게소에서 김밥과 우동으로 점심 때우기. 버스는 구례에서 한번 정차 후 화개 지나 하동에서 하차.

이곳에서 10분 후 출발하는 청학동행 버스 승차.

버스는 돌아돌아 등산로 바로 앞이 종점. 헌데 우리가 잘 집은 걸어 내려가야 한다.

돌아내려와 삼성궁 초입의 황토정 이라는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 진짜 황토집이고 주인장 인심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짐을 놓고 삼성궁 초행인 날 위해 삼성궁 관람하러 가는데 살 찐 개가 한마리 뛰어 나와 여산을 쫓아온다.

야가 같은 돼지과인거 아는건가? ㅎㅎ

입구에 파란 오리가 보인다. 웬 오리? 오리가 아니라 학이란다. 청학.

삼성궁 입장료가 5천원이나 된다. 헌데 이럴때 아니면 갈 기회가 없는지라 구경하는데 개는 계속 따라 다닌다. 이곳이 나름 성지일텐데 개 입장을 통제하지 않는걸 보니 군기가 빠진것 같다.

한쪽에서는 계속 공사를 하는데 어딘가 한물간 스러진 느낌의 분위기다.

성지순례처럼 뺑뺑 돌아 한바퀴 돌아나오는데 누렁이 개 한마리가 검정개를 따라 오기 시작. 암수 한쌍인것 같다.

개 두마리를 끌고 구경 한바퀴 하고 나니 어느새 개는 입구에서 없어져 버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오며 내일 점심으로 먹을 라면과 막걸리 사고 저녁하기. 헌데 주인장이 밤은 한바가지 나누어 주면서 삶아 먹으라고 한다.

이집이 대통밥 전문인데 밥에 넣는 밤이라고 한다. 헌데 양이 장난이 아니게 많다. 밤값만 해도 방값과 맘먹을것 같다.

조촐하게 저녁하고 된장국 끓이고 오리로스 먹기. 여산이 며칠 속이 좋지 않아 먹는게 조심스러워 별로 줄지 않는다.

저녁 노느니 밤을 까기로 했다. 나와 여산이 교대로 밤 까고 한개도 까지 않는 남의편이 먹기는 더 많이 먹는다 구박했다.

9시부터 잤다. 내일 7시경 출발하기로 했다.

 

10.4 (목)

 

따땃한 황토방에서 자니 잘 잤다.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나 밥 넉넉히 해 점심 도시락까지 싸고 남은 된장찌개 데워 아침 먹고 출발하는데 주인장 기척이 없어 인사도 못하고 나오는데 어제 만났던 개 두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등산로 입구까지 따라가는데 흰둥이 한마리까지 보태 개 3마리가 우릴 따라온다.

막상 등산로 입구에서 처음 따라왔던 검둥이는 안 따라오는데 나머지 2마리는 계속 우릴 따라온다. 알아서 돌아가겠지...

검은개는 등산로 입구에서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헌데 나머지 2마리는 계속 따라온다.

간식도 나누어 먹고 아무도 없는 산을 전세내어 가는데 여긴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것 같다.

 

































삼신봉에 올랐다. 이곳에서 지리를 조망하려고 몇번이나 와 한번도 성공 못했다는 여산.

오늘은 사방 팔방 조망이 아주 그냥 죽여준다. 개들은 삼신봉까지 따라 올라왔다. 그러더니 내려간다. 이젠 집으로 갔겠지...

시간도 널널해 삼신봉에서 한참 놀고 사진 찍고 길을 가는데 개들이 또 나타났다. 여기서 더 가면 물도 없는데..

걱정 되 계속 개를 쫓아내면서 가니 어느 정도 가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휴~ 집에 잘 갔겠지..

세석 가기 전 갈림길에서 억지로 점심을 먹었다. 음양수 지나고 세석에 가면 예약한 세석에서 자기 시간이 너무 남고 그렇다고 장터목 가자니 예약이 안 되어있고...

그래서 영신대를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여기 저기 영신대 비스므리 한 곳은 찾았지만 비박했던 영신대는 결국은 못 찾았다. 영신대 찾는다고 헤맨 시간이 2시간은 된것 같다.

 

세석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여기 저기에서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인다.

장터목으로 가는 학생 팀들이 있는데 걱정된다.

일찍 저녁 해 먹고 5시부터 숙소를 배정 한다고 해 올라가니 내 이름이 없다고...

아니 왜? 예약만 해 놓고 입금을 하지 않았단다. 분명히 입금 했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황당했다. 내가 한 일을 내가 모른다.

6시 반 넘어 다시 오란다. 자리는 충분하다고...

영신봉에가 일몰을 보고 오기로 했다.

영신봉 일몰은 생각보다 아주 근사했다. 마음같아서는 영신대도 보고 싶고 청학연도 보고 싶은데 찾아갈 자신이 없다.

이곳 일몰만 봐도 행복했다.

자리 배정 받고 들어갔다. 내일은 5시 기상하기로 했다.

여자 숙소에서 단체로 온 아지매 팀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다. 살다 살다 대피소에서 고스톱 치는 사람들은 또 처음 본다.

관리자에게 신고하고 자려는데 꽉 차지 않았는데도 웬지 소란하고 어수선해 잠이 잘 안온다.

어제 너무 많이 자서 그런것 같다.

 

10/5 (금)

 




























5시 기상해 6시 출발. 촛대봉에서 구름낀 일출을 보고 출발.

장터목에서 잤다면 대원사를 염두에 두었겠지만 세석 출발이고 체력도 저질이 되 법계사로 하산하기로 했다.

남의편은 중봉까지 다녀온다고 천왕봉에서 먼저 내려가란다. 네 맘대로 하세요.

단풍은 눈으로 보기엔 별로 곱지 않았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산색이 예쁘다.

장터목 가는 길은 일출팀은 이미 지나갔고 오전 팀은 아직 움직이기 전이라서인지 한갖져 좋았다.

가을 지리를 볼 수 있는 행운이 고맙기만 하다. 전근 잘 간것 같다. ^^

 

징터목에서 제석봉 가는 길 고사목이 점점 줄어든다.

천왕봉 가는길이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 가을이니까?

드디어 천왕봉. 한갖지다. 정상주 한잔 마시고 남의편은 중봉으로 가고 우리둘은 법계사로 내려가는길. 전보다 나무데크가 많아졌고 돌계단도 많아진것 같다.

길은 정비가 되 좋은데 무릎에는 아주 안좋은것 같다.

법계사가 가까워 오니 단풍색이 아주 곱다.

법계사 전 만난 약수터 패션의 남자가 자긴 당일로 대원사까지 간다면서 대원사쪽 단풍이 죽여준다고 속 죽인다.

진주에 사는데 틈만 나면 지리를 온다고 자랑질이다. 세상은 넓고 산도 많고 고수는 더 많은것 같다.

 

법계사에 왔는데 남의편이 아직 안 내려와 노느니 법계사를 둘러보는데 여기도 불사가 한창이라 호젓한 맛이 사라져 아쉽다.

로타리 대피소에는 학생들로 버글거린다. 진주에서 온 고1 학생 소풍을 천왕봉까지 다녀오는 거라고 한다.

관계자가 여기서는 간식만 먹고 점심은 천왕봉에서 먹으란다. 헐, 지금이 11시인데....

남의편도 곧 도착. 무거운 배낭을 매고 내려오니 힘들단다.

곧 남의편이 내려와 하산하는데 학생들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사실 법계사 내려오면 거의 다 내려온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중산리까지는 생각보다 멀고 힘들었다. 여기까지 학생들이 온것만 해도 대단하다 싶었다.

계곡길과 만나는 곳을 오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 무릎에 충격이 온다.

무사히 하산하니 기뻤다.

 

일단 원지로 나가기로 했다. 곧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원지로 나와 표를 넉넉하게 예매하고 처음 경호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3천원으로 저렴한데 여탕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냉탕이 넉넉히 한갖지게 목간하고 나와 임플란트로 이가 시원치않은 여산과 내가 오겨 어탕국수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씻고 밥 잘 먹고 차 타고 잘 자고 남부터미널 도착.

여름에 못갔지만 가을 지리를 일부나마 만날 수 있어 행복한 3일이었다.

 

-남의편 사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