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이문재(1959~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처음 나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이 왜 눈물의 씨앗이냐고 반문하곤 했지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그런 감정적 소요를 들여다볼 여지없이 아주 그냥 바빴거든요. 손수레에서 파는 호박엿가락에 다섯 병 묶어 만 원에 파는 외국산 맥주에 햄버거 세트 먹으면 선물로 주는 캐릭터 인형에, 아 지금 와 반추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손에 넣는 즉시 게 섰거라, 죄다 너 갖다 주느라 발톱 빠지는 줄 몰랐을까요. 처음 나 사랑이 끝나갈 때 배고파 찾아들어간 식당마다 이 메뉴 저 메뉴 밥이란 밥은 솥바닥까지 다 긁어먹어서 되레 친구들에게 괜찮으냐는 말 입버릇처럼 달게 했는데요, 뒤돌아 변기 붙잡고 먹는 족족 게워내야 했던 내 속을 글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었겠어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떻게든 손해 안 보고 어떻게든 상처 안 받고 어떻게든 냉정히 뒷모습을 보이는 자가 되기 위해 순정 말이에요, 너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 내가 더 아파하던 그 애틋함 따위 말이에요, 우리 그 열정을 치기 어린 비릿함으로 이제 와 쉴 새 없이 물로 헹궈내느라 내내 분주한 삶인 건 아닐는지요. 이 와중에 궁금한 거 하나 있네요. 거참 농담도 잘하시네, 라고는 하면서 왜 거참 진담도 잘하시네, 라고는 안 하는 걸까요. <김민정·시인>
셋이 먼저 출발. 요나가 앞장 서고 후미를 파울로가 봐 준다.
걸음은 완전히 굼벵이 모드인데도 높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인지 마음이 무겁다.
어제 신샘과 난 공진단도 하나씩 더 먹었다. 그래서인지 몸은 다행히 춥지는 않은것 같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산을 랜턴에 의지해 올라가는데 가이드들은 그나마 랜턴도 잘 켜지 않는다. 배터리가 이곳에서는 꽤 비싼가 보다.
파울로 랜턴에 배터리가 없다고 해 우리가 나누어 주었다.
자주자주 쉬고 천천히 올라가니 자연 추월을 당한다. 헌데 얼마 가지 않아 류샘과 황샘에게도 잡혔다. 1시간 늦게 출발했다는데....
나도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홍샘.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건가 싶으면서도 여기서 포기하면 내내 후회할게 뻔하므로 포기도 못한다.
헌데 홍샘이 자긴 못 간다고 하산하겠단다. 천천히 같이 가자 달래고 협박해 1시간정도 더 진행하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고 내려간다고 한다.
순간 같이 내려가야 하는건가 고민했다. 헌데 신샘이 자긴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신샘에게 뭍어 가기로 했다.
내가 하도 힘들어하니 류샘이 요나에게 부착해 내 배낭을 맡겼다. 헌데 잠바 속에 맨 카메라 가방조차 무겁게 느껴져 이것도 맡기고 싶을 지경이다.
빈 몸인줄 안 요나는 물병을 주며 물 마시라며 날 걱정하며 괜찮냐고 류샘에게 물어봤단다. 그래서 류샘이 날 mental이 strong 하다고 했다나 뭐라나?
파울로 배낭에서도 큰 보온 물병을 들고 와 물을 나누어 준다. 가이드들이 왜 빈 몸인줄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나같이 헤매는 백성 배낭 대시 져 주려는 것이다.
산행 전에도 우리들 배낭 무게를 일일이 들어 무게를 확인하긴 했다.
아무튼 홍샘은 파울로와 결국 하산하고 무거운 마음과 발걸음을 버벅대는 내가 요나 바로 뒤에 서서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는데 그래도 홍샘이 내려가고 나서는 우리도 더이상 추월 당하지 않고 추월까지 해 가면서 올라갈 수 있었다.
몸은 점점 추워져 발도 시리고 손이 시린건지 저린건지 감각이 둔하다.
언제 이 길이 끝나나 싶은데 뭔가 구조물이 보인다. 스텔라 포인트라고 한다. 스텔라 포인트에서 정상은 경사가 완만하고 1시간 남짓이면 올라갈 수 있다고...
보통 스텔라 포인트에서 일출을 본다는데 해는 좀 더 있어야 뜨는것 같다.
이젠 정말이지 조금만 가면 정상이다 싶으니 몸에서 힘이 좀 나는것 같다.
눈이 제법 있긴 하지만 아이젠까지는 필요없는 길을 완만하게 올라가니 드디어 보이는 정상.
헌데 많이 올라온줄 알았는데 정상에는 두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아직 뜨지 않은 상태.
6시경 정상에 도착했는데 10여분 지나니 여명이 보이고 해가 뜨기 시작한다.
내가 헤매는 덕분에 일출 시간에 딱 맞췄다고 큰소리 쳤다. 류샘도 많이 기쁜가보다. 한사람 한사람 포옹하고 감정이 업 됐나 보다.
독일계로 보이는 한 남자는 정상에서 물구나무 서며 인증샷을 하는 사람, 성조기를 들고 찍는 미국인, 누군가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찍는 사람...
아무튼 다 나름대로의 감동을 사진 한장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이런 저런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댄다. 우리도 황샘으 좋은 디카로 개인, 단체 사진을 마음껏 찍었다.
걱정했던 고소는 막상 정상에서 탁 트인 조망과 멋진 빙하, 일출, 운해를 보니 싹 잊어버렸다. 무슨 조화인지....
빙하 녹기전에 오자고해 왔는데 빙하는 생각보다 많았고 수십년 이내에 녹지는 않을거 같다.
정상 조망을 마음껏 하고 해도 나고 기운도 좀 나 하산길은 내 배낭은 내가 맨다고 하니 요나 안 말린다. ㅎㅎ
반대로 포터 대장이 자진해 신샘 배낭을 져 준다고 자청해 신샘 배낭을 맡겼다고 한다.
올라올 때 하도 천천히 올라오니 허리가 많이 아팠다. 하산길도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올라올 때 보다는 견딜만 하다.
올라갈때 그냥 지나친 스텔라 포인트에서 사진 찍고 물도 마시고 잠바도 하나 벗고 장갑도 얇은걸로 갈아 꼈다.
그러면서도 이 멋진 풍경을 함께 못 본 홍샘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젠 남은건 하산길. 올라올 때 보이지 않았던 팍팍한 화산재 길.
계속 사람들은 올라오는데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는 길은 참으로 기쁘다.
하산길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바위길이 아닌 모래썰매 타는 기분으로 내려서는데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햇살도 따갑고 허기도 지는데 올라갈 때 파워젤 먹고 비위 상한 신샘은 물도 안 넘어간단다. 나도 배는 고픈데 간식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아무튼 10시경 바라푸 캠프에 무사히 하산.
홍샘이 빨리 왔다고 반겨주고 포터가 쥬스 한잔을 주어 일단 마시고 먼지 펄펄나는 겉옷은 벗고 내복 바람으로 침낭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11시경 아침겸 점심으로 스파게티가 나와 먹는데 신샘은 속이 울렁거린다고 아무것도 못 먹는다. 거의 굶어가면서 정상에 다녀온건 정신력이 강해서인가 위원장이 책임감 인지 아무튼 참 대단하다.
오늘은 하이캠프까지 간다는데 여기도 고도가 3800 정도 된다고 하니 내심 하산주를 먹으려던 계획을 미루어야 할것 같단다.
신샘은 속이 뒤집혀 빨리 걸을 수가 없어 다같이 천천히 하산해 4시간 정도 걸려 하이캠프에 무사히 도착.
중간 바퀴 하나 달린 킬리만자로 택시라고 표현하는 운송수단. 응급환자 수송용이라는데 이걸 이용하면 비용이 비싸다는 말과는 달리 무료라는 요나.
넷이 끌고 내려간다는데 신샘보고 한번 이용해 보라니 덜컹거려 더 울렁거릴거라 사양한다. ㅎㅎ
하이캠프는 바라푸 캠프에 비해 작고 훨씬 조용하고 캠프장 분위기가 물씬 난다.
세수하고 발도 닦고 오늘 저녁은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해 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신샘도 속이 조금 나아져 라면을 조금 먹었다.
그리고 안주로 가져온 진미채를 먹으니 정말이지 꿀맛이다.
헌데 밤에 자면서 라면에 진미채 때문인지 갈증이 나 몇번이나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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