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2015일기

영화보기 (10/9)

산무수리 2015. 10. 10. 00:30

꽃물 고치 - 이정록(1964~ )

아파트 일층으로 이사 와서

생애 처음으로 화단 하나 만들었는데

간밤에 봉숭아 이파리와 꽃을 죄다 훑어갔다

이건 벌레나 새가 뜯어먹은 게 아니다

인간이다 분명 꽃 피고 물오르기 기다린 노처녀다

봉숭아 꼬투리처럼 눈꺼풀 치켜뜨고

지나는 여자들의 손끝을 훔쳐보는데

할머니 한 분 반갑게 인사한다

총각 덕분에 삼십 년 만에 꽃물 들였네

두 손을 활짝 흔들어 보인다

손끝마다 눈부신 고치들

나도 따라 환하게 웃으며 막 부화한

팔순의 나비에게 수컷으로 다가가는데

손가락 끝부터 수의를 짜기 시작한 백발이

봉숭아 꽃 으깨어 목 축이고 있다

아직은 풀어지지도 더 짜지도 마라

광목 실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우리나라 여자치고 손톱에 봉숭아물 한 번 들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봉숭아 꽃잎을 손톱에 올린 날부터는 소녀들은 처녀가 되었고, 어머니들은 소녀가 되었지요. 시인도 누이나 어머니의 손톱에 찧은 봉숭아를 올리고 찬찬하게 광목 실로 감아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생애 처음 화단을 만들고 봉숭아부터 심었나 봅니다. 그런데 봉숭아 꽃잎을 도둑맞고 마네요. 시인은 일단 노처녀의 소행으로 보고 지나는 여자들을 모두 용의선상에 올립니다. 그때 팔순의 할머니가 반가운 인사로 자수를 해옵니다. 그 증거로 손끝에 광목 실로 매듭지어 놓은 고치를 보여주고요. 할머니의 웃음이 막 부화한 나비 같습니다. 시인은 그 범인이 할머니라서 너무 좋습니다. 수컷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백발을 고치 속에 가두고 다시 찬찬 실로 매듭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참 눈부신 정경입니다. <강현덕·시조시인>

 

 

 

 

 

 

 

 

 

 

 

점심 먹고 영화보기.

영화 보고 도리야끼 먹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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