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 이송희(1976~ )
남자는
길앞잡이 벌레를 찾아 나선다
빛도 없고 벽도 없는 그 황량한 미궁 속 옹글게 버틴 시간 망루를 향하고 저어기 문이 보인다 꿈이 보인다 그러나 여자의 캄캄한 모래 웅덩이 속 차가운 자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삶은 어쩌면 끝없이 암호를 풀어 가는 것일까 플러스 마이너스 알파와 오메가의 공간에서 자꾸만 모래를 퍼내고 시간을 퍼내고 나를 퍼내고 또 모래를 퍼내고… (중략)
너와 나
시간의 손을 잡고
키워가는 소금꽃
*아베 고보의 『모래의 여자(The Woman in the Dunes)』
‘일본의 카프카’라고 불리는 아베 고보의 소설에 매혹되었군요. 이 소설은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을 다시 한번 끌어들였지요. 알려지지 않은 종의 곤충을 채집해 자신의 이름을 학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욕망의 남자가 사구(砂丘)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벌이 없으면 도망칠 재미도 없다’라는 날카롭고도 흥미로운 말을 첫 페이지 첫 문장에 담아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아베 고보는 모래를 밖으로 퍼내야만 살 수 있는 모래 구덩이 속 주인공을 통해 시시포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굴레를 절묘하게 표현하였지요. 소설을 읽고 느낀 전율을 이 시가 한 번 더 전해줍니다.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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