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8년

서락 계곡에서 단풍에 빠지다 (10/18~19)

산무수리 2008. 10. 22. 19:25
‘샘’ -정진명 (1960∼ )


내 마음 깊은 곳에

샘이 하나 있습니다.

날마다 퍼내어 쓰지만

마른 적이 없는 샘.

내가 쓰고도 남아

이웃들에게도 베풀고 때로

뭇짐승들에게도 나누어줍니다.



퍼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것은

물길이 당신에게 닿아 있는 까닭입니다.

나그네가 칡잎을 오그려

마른 목을 축이고 가는

그런 샘이 마음마다 있습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마르지 않는 샘이기에

퍼내지 않으면 넘칩니다.

넘친 물이 흐르며 개울을 만들고

그 안에 물고기를 기르며

물가에 이끼와 나무도 키웁니다.



구름이 몸을 담갔다 빼고
 
바람이 메마른 제 몸을 적시고 가는,

당신으로부터 비롯한 샘이 하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습 니다.

화자의 마음속에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마르지 않는 사랑의 화수분, 샘이 있다. 끝없이 퐁퐁 솟아 흘러넘쳐 세상 모든 것을 사랑과 공감과 연민으로 촉촉이 적시는 그 샘물의 원천은 ‘당신’이다. ‘당신’은 신이거나, 신과 다름없을 그 누구일 것이다. ‘-습니다’체의 경건하고 곡진한 뉘앙스를 서양말로 옮길 수 있을까? <황인숙·시인>


코스개관: 신흥사 (3:00)~ 진전사 (13:30)
멤버: 당나귀 산악회 8명 (안내산행 이용)
날씨: 어제에 이어 더웠던 가을날.
교통편: 안내산행 이용

연 2주 무박 서락행. 더구나 토욜 퇴근 후 직장 산악회 산행을 짧지만 하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빨래하고 밥 싸고 짐 챙기려니 너무 바쁘다.
약속장소에 22:00 도착. 9명이 함께 가기로 했는데 동안미인 병이 나 못오고 대신 이작가님이 오시고 동안총무는 집안에 상을 당해 부득이 불참.

만차에 모자라 몇몇은 통로에 앉아서 둘러둘러 태우고 죽전 휴게소에서 1차 쉬고 2차 민예단지에서 아침먹기.
지난주보다 1시간 늦었는데 오히려 덜 복잡하다. 의외다.
산매니아가 사온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이작가님은 밤에 드시면 속이 편치 않다고 드시지 않는다.

설악동에 도착. 바로 산행 준비하고 매표소 통과한 시간이 3:00.
역시나 쉬지도 않고 내 달리다 식당 의자가 나오니 비로서 한껍데기씩 벗느라 쉰다. 잠바 벗고 양폭까지 그대로 앞으로 앞으로...
아직은 이른 새벽이어서인지 한갖지다. 헌데 이 좋은 천불동을 물소리만 듣고 가야 한다는게 아쉽다.

양폭 직전에 기다렸다 후미까지 다 도착. 오늘 이 산악회 골수 회원들이 많이 빠지고 객들이 많은것 같다. 나를 포함해....
그 덕(!)에 후미는 면한것 같다. 초장부터 배낭은 남한테 맡기고 맨몸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조금 걱정된다. 너무 만만하게 보고 온것 아닌가?

양폭 다리 건너기 전 왼쪽 능선에 붙었다. 랜턴도 켜지 못하게 하고 소리도 내지 않고 올라가는데 경사가 제법 급하다. 헌데도 이쪽도 사람들이 종종 다니는지 쇠로 된 체인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쉬지도 못하고 앞사람 놓칠새라 따라 붙는데 양폭까지 너무 바쁘게 와서인지 정말 힘 빠지고 기어 오르는데 많이 힘들다. 그나마 보름지난 달빛인데도 의외로 밝다. 랜턴 없어도 크게 지장은 없었다.

 

 

 

 

 

 

 

겨우겨우 만경대 우회해서 도착.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상태인데 운해가 장관이고 병풍을 둘러쳐진것 같은 경치가 멋지다. 사방으로 설악의 능선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충분히 쉬었다 간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괜히 간식을 먹었다. 아무튼 우리들도 전을 펴고 아침을 먹는데 박형, 성사장 두사람이나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해 왔는데도 지난번에 비해 일찍 먹어서인지 잘 넘어가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나니 선두는 벌써 내 달렸고 사진 찍는다고 아래쪽으로 내려가 배낭만 놓고 어딘가 간 사람도 있다.
이번 산행은 지난번에 비해 널널해서인지 통제를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몇명 깔았으니 꼴지 아닌걸 다행으로 여기며 진행하는데 왼쪽 아래 계곡의 폭포가 장관이다. 너무 멀어 사진으로 잡기 어려운게 아쉽다.
올라가는데 한팀은 아직도 아침을 먹고 있다. 남자가 선수라는 산매니아의 설명. 어련히 잘 따라올까...

 

조금만 올라가면 능선에 붙는다는데 중간에 선두가 적발되었다고 우리들은 단속반을 피해 계곡을 내려가야 한단다.
졸지에 도망자가 되어 대청방향으로 가다 계곡으로 내려서는데 완전히 길도 없는 내리막으로 정말이지 식은땀 났다. 여기서 또 다치면 그야말로 내 발목은 사망인지라 아래에서 빨리 내려오라는데 빨리 내려갈 길이 아니다. 졸지에 오지 개척산행을 하는것 같다.
한참 엎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내려가니 먼저 간 앞팀들이 계곡가에 기다리고 있다 우리 오니 바로 출발. ㅠㅠ

 

 

이 계곡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이라 원시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보기엔 좋은데 길이 당연히 좋지 않다. 목적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이 계곡을 끼고 내려가야 하는게 한숨난다. 그나마 이쪽 단풍은 그야말로 피크에 빨강, 노랑으로 물들었다. 간간히 바람이 불면 낙엽까지 떨어지는데 탄성이 절로 난다. 헌데도 쫓기는 입장이라 사진을 찍을 마음이 여유가 없다.

 

 

 한참 내려가는데 낭떠러지라고 한다. 아래에서는 누군가 부르는데 우리편인지 넘의 편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더 기가 막힌건 하산 예정지점에도 단속반이 떴다고 알아서 살라는 문자가 왔단다. 정말이지 기도 차지 않는다.
산악회 회장이 잎장서고 몇몇 산행 잘하는 사람들과 의논하더니 우측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 다른 능선을 타고 간단다.
산행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라 물 보충하고 산양도 아닌데 그 비탈을 치고 올라갔다.

헌데 이곳에서 또 내려섰다 다시 다음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는데 여기서 바로 가면 대청이라는데 그 급경사 비탈을 이젠 힘이 빠져 내려갈 수도 없고 설악이 동네 뒷동산도 아닌데 빠져 나가는데 몇시간을 걸릴거라면서 몇몇이 반대를 했다. 결국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걸리는건 차후 문제이고...
그 와중에 눈 밝고 부지런한 사람은 버섯에 겨우살이까지 딴다. 졌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길이 있는 곳이라 죽어라 앞사람을 쫓아 내려가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자꾸 주저 앉게 된다. 모처럼 산에 온 남미언니는 괜히 따라 왔다고 후회막급이다. 허나 어쩌리...
그나마 동안미인이 안 와 천만 다행이라는데 의견 일치.
오늘 동안총무가 없어 더덕슬러쉬가 없는 줄 알았더니 오늘은 성사장이 준비해 와 나누어 준다. 조금 다른건 건데기도 씹힌다. 덜 갈려 그런것 같다. 아무튼 기운도 없고 힘 빠지는데 먹으니 훨씬 나았다.






아래로 내려갈 수록 계곡도 멋져지고 간간히 폭포도 보이고 단풍도 죽여주는데 시간도 없고 기운도 없어 사진 한장 제대로 찍기가 힘이 든다. 잠깐 뒷사람과 간격이 있을때 한장씩 찍으니 사진도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아니면 도저히 와 볼 수 없는 계곡을 와 보고 단풍 피크철에 사람 한명 만나지 않고 온전히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한번 있기 힘들지 싶다.
다 좋은데 이 계곡이 몇시간이나 내려가야 하는지 모른다는게 문제 중의 아주 큰 문제.

거의 쉬지도 못하고 계곡을 바쁘게 내려온다. 넘어질 새라 스틱에 힘을 하도 많이 주었더니 다리보다 팔이 더 아프다. 산행 예정시간이 9시간이었는데 졸지에 10시간도 넘는 산행을 하게 되면서 왼쪽 발목이 아파 온다.
남미언니는 아예 한쪽 다리를 절면서 내려오고 있다. 성사장도 내려오며 안 좋은 발목 각도가 잘못 꺾였는지 아파한다. 작가님도 오늘은 사진 찍을 여유가 없고 힘들어 보이셨다.

산행 마친 후 힘들지 않으셨냐고 하니 매일 올라가는 모락산을 가도 힘이 든데 왜 힘들지 않겠냐고...
이렇게 산행을 진행하는게 어디 있냐고 기도 안차 하신다. 그래도 나중이 되면 이게 다 추억이 될것 같다고.

10시간도 더 걸리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도로를 걸어 나오는데 아래쪽은 수해에 손상이 심해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진전사가 나오고 내려오니 버스가 와 있다. 벌금내고 온 사람들은 진작에 도착해 있고 앞서서 내려간 사람도 와 있고 우리들 뒤로 속속 사람들이 도착.

문제는 후미조 몇몇이 다른 계곡으로 빠져 연락이 되질 않는단다. 신고를 하고 구조대가 떠야 하는 상황까지 갔었다. 천만 다행으로 전화가 통화가 되었다. 3명은 내려와 넷을 기다리고 그 넷중 여자 둘이 없는길 찾아 내려오며 힘을 많이 빼 탈진해 부축해 내려오고 있다고...

인제의 식당에 도착해 점저를 먹었다. 박형이 쇠고기를 준비하고 부회장네서 불판까지 들고 와 식당에 양해를 구하고 고기 무한리필로 배터지게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식당 주인이 인심이 좋아 한숨 잠까지 잤다.
거의 8시가 되어 설악동으로 태우러 간 버스가 와서 (차가 엄청 막혀 걷는게 빠르다고..) 저녁먹고 출발하니 20:00. 출발 장소인 신사거리 오니 자정무렵.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산행이었다.
하지 말라는건 안하는게 좋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었고  안내산행 쫓아다니지 않아도 빡센 산행을 할 수 있는 우리팀이 새삼 많이 고마웠다. 다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배려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한 산행이었다.
멤버가 늘어나면 명산 원정산행을 하는데 좋겠지만 혼자서는 가기 쉽지 않는 근교산을 다니는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것 같다.
감,고, 사~


-이 작가님의 사진과 동영상을 추가합니다. 즐감 하시길~



 
만경대에서-평마클 초절정 고수 정숙경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