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8년

김장 도우미 후... (모락산, 11/16)

산무수리 2008. 11. 17. 10:03
list -장승리 (1974∼ )


신의 강박적 기질이 list를 낳았다

첫째 날, 둘째 날……

천지창조의 그 기막힌 list와

(……………··) 오늘날 내 작은 수첩에 적힌 수많은 list를 보아라

결국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도

신이 수첩에 휘갈겨 적은 list에 불과한 것인가

(················)

list 없는 안식은 없다

콧구멍 파는 것까지도

번호를 매겨가며 수첩에 적어놓아야 하는

이 포근한 강박이여

천지창조 이전의 창조물을 기억하라

엄마 자궁 속에서

list를 적고 있는 태아들을 기억하라

(.............)


신의 리스트를 우리는 운명-‘팔자’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은 팔자에 복무하면서 산다. 어떤 사람은 악착같이 제가 리스트를 만든다. 그 리퀘스트 리스트를 슬며시 신에게 보내본다. 가녀린 항거다. 신의 리스트를 수행하려는 조바심으로 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도 있겠지.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태아들은 리스트를 적는다. <황인숙·시인>


 

 

 

 

 

 

 

 



토욜 산행 후 흑석동에 가니 오마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다.
애긴가? 집 못찾을까봐?
5주째 담근다는 김장을 갑자기 좋은 배추를 사게되었다고 일욜 김장하는데 올 수 있냐고 연락. 마침 산행지도 정하지 않턴 차라 갈 수 있다 했다.
3일 전 부터 아버지는 쪽파 5단 까시고 오마니는 알타리 다듬고 마늘까고...
아버지는 쪽파 까는 선수 다 되셨단다. 그래 김치공장에 특채 되시면 어쩌냐고 웃었다.

작년에는 새벽부터 배추를 씻으시기에 새벽부터 안 깨울까봐 긴장하고 자는데 5시가 되도, 6시가 되도 안 나오신다.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어 아침 먹고 한단다. 미리 말 안해 잠만 설쳤다고 미안해 하신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앞집 젊은언니가 도우미 하신다고 오셨다. 헌데 몸은 꼿꼿한데 도우미 할 나이는 아니신것 같은데?
아버지보다 1살 더 많으시다나?
노인 학대죄로 잡혀 가는거 아니냐고 웃었다.
이분이 오시니 도마 소리부터 다르다. 깨갱하며 오마니 도와 배추 씻기, 씻은 배추 2층으로 나르기...

김장 함께 하시는 아버지를 보시더니 부러우신가 보다. 얼마 전 돌아가신 영감님도 그런일은 안해 주셨다고...
워낙 솜씨가 좋아서 그러실것 같다. 지금도 친구들끼리 모여 맛있는거 해 먹고 노신다고....
배추 씻는 동안 무채는 아버지가 써신다. 수술한 다리가 불편하시니 뻗정다리로 앉아서 썰고 계신다.

양념 준비 다 되어 속 버므리고 속 넣고 있는데 셋째 오빠네가 김치통 한가득 들고 입장.
작은애 수시 전형에 가야 한다더니 내신 등급이 안나와 안 가기로 했다던가?
아무튼 45포기인가 속을 다 넣고 나니 12시도 채 안 된 시간.
돼지고기 삶고 아버지가 떠 오신 회랑 해서 점심 먹고 도우미 가시고 오마니도 우리들보고 빨리 집에 가라신다.
도라지 캐러간 남푠은 연락도 없고...

오빠네가 작년처럼 오늘도 김치 실어다 준다고 해서 함께 평촌으로.
차 한잔 마시고 오라버니는 후배 잠깐 만나고 들어오더니 와인 2병을 얻어가지고 와서 우리 먹으라고 주고 간다.
저녁에 온 남푠 왈, 술 못하는 처남 있으니 여러가지로 좋다고 입 벌어진다. ㅎㅎ
올해 메주 쑨다고 콩 한말 사온 남푠.
오늘 도라지 캐러갔다 큰 항아리까지 얻어왔다. 도라지도 한 보따리.....
거기다 내가 무서워하는 단배추까지 얻어왔네?
배추는 난 모른다. 베란다에 처박아 놓았다.

아직 해가 남아있다. 그냥 있자니 모락산이 궁금하다.
후딱 모락산에 올라가 사인암으로 내려오니 해가 진다.
일몰 사진 찍고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