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8년

숙원사업 수도-가야산 종주기 (11/21~22)

산무수리 2008. 11. 24. 19:08
‘밤의 향기’- 김영승 (1958∼ )


이 향기

이 비 쏟아지기 전날 밤의

이 향기

이 향기는

나는 죽어 귀신이 된다면

잠깐 이런 향기리라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자판기 불빛에다 대고 이 글을 쓴다

오늘밤엔

아무도 없어

좋다

어둠 속엔 토끼풀

그 위엔 아카시아로군

멀리

붉은 네온 십자가

대명 뼈다귀 감자탕 네온 간판

“이름이 뭐냐?”

포로처럼 나는 물었다

“김영승”

나는 대답했다.

평소에는 소년·소녀들이 인라인스케이트나 킥보드를 타느라 복작거렸을 것이다. 손자를 앞세우고 나온 할머니들이 계단 밑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아홉 시 뉴스를 본 가장은 데리고 나온 바둑이가 겅중겅중 뛰는 걸 바라보며 담배를 물고 섰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없다. 곧 비를 쏟을 듯한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유독 어두운 밤이기에. 자판기 불빛과 멀리 붉은 네온 십자가와 감자탕집 네온 간판이 쓸쓸한 빛을 보탤 뿐. 김영승의 고독이 울컥 전해지는 시다. 비 오기 전의 향기처럼. <황인숙·시인>
 

1. 산행일자: 2008.11.21~22 (무박)
2. 코스개관: 수도리-수도사-수도산 정상 (동봉)-단지봉-좌일곡령-목통령-두리봉-가야산(상당봉)-칠불봉-해인사 (3;20~14:20)
3. 교통편: 안내산행 이용 (30명)
4. 날씨: 새벽녘 바람불고 추웠으나 낮이 되니 날이 풀려 좀 더운듯 했음.

우연히 읽게 된 산행기에 수도-가야산 비박 종주기를 읽었다. 수도산 이름도 처음 들었는데도 필이 팍 꽂혀 오매불망 가고 싶던 산이었다.
산이슬에게 이야기 하니 산행도 길지만 차량회수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아쉬운대로 드림팀과 가야산 다녀왔고 작년 여름에 수도산 산행을 했었다.
안내산행에서 수도-가야산 종주는 처음 보는것 같다. 마침 놀토다. 산행 예정시간이 12시간이라 혼자 가기엔 겁이 나는지라 나무천사 같이 가자 했다. 나무천사도 가야산은 초행이라 의기투합.

금욜 퇴근하고 백화점에서 볼 일 보고 집에 와 저녁 먹고 짐 챙기고....
물을 1.5 정도 준비하라는데 물 많이 필요없다고 우기는 나무천사. 아무튼 내가 우겨 넉넉히 넣었다. 짐 무거울까봐 보온병도 뺐고 매실즙, 빵, 떡, 김밥 2줄. 과일. 그나마 무거운 짐은 거의 다 나무천사 배낭에 넣어 내 배낭은 그 어느때 보다 가벼운것 같다.

버스 타러가는데 시간 남아 백화점 돌다 구두까지 하나 지르고 구두 들고 버스 승차. 안양에서 수원에서 영통으로 해서 가는데 거의 만차까지 갔다 뒤늦게 취소하는 사람이 있어 널널하게 가게 되었다.
안성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산행대장이 코스설명을 하는데 일일히 메모했다 설명해 준다. 참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인가 보다.
나무가 얼굴을 찌른다고 해서 내심 이 늦은 가을 설마 했었다.

새벽 2시 조마보건지소 앞에 내려놓더니 밥 먹으란다. 넘의 동네 정자에 서서 앉아서 북어국에 밥 한술 말아 먹었다. 먹는만큼 가는거니까...
다시 출발해 3시가 좀 넘은 시간 수도리에 내려 산행 준비하고 출발한 시간이 3:20.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날씨는 좋을것 같다.
포장도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수도사가 나온다. 화장실 들리는 새 선두 다 가버리고 후미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뒤 3명이 더 오고 있단다.
절 마당을 가로질로 정상 가는길 표시가 있다. 산에 붙었다.

초장 코스는 경사가 급한 편이다. 보이는것도 없고 나무는 빽빽하고 눈 없다더니 간간히 눈도 남아 있다. 헌데 바람도 제법 차 손이 시려온다.
차에서 대충 맨 신발끈도 다시 꽉 매고 긴장하면서 출발. 선두 불빛은 보이지도 않는다. 뒤에서 몇이 따라 붙는다.
헷갈릴 만한 곳에는 안내 표지를 꼼꼼히 해 놓아 뵈는것 없어도 좀 안심이 된다.
일출은 단지봉에서 보게 될것 같다는 산행대장.
2시간  채 안 걸려 작년 여름에 간 수도산 정상이 나왔다. 그땐 반대 방향에서 올라왔는데 아는 위치가 나오니 수도산 그림이 조금 그려진다.
수도산 정상에 와서 수도산 어디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이 팀이 아주 빡센 팀은 아니고 대장도 빨리 가자 채근하지 않아서 좋다.

수도산 정상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서 출발. 눈이 없는 길은 여기도 역시나 먼지가 펄펄 난다. 여기서부터는 와 본 길이지만 워낙 보이는게 없으니 대충 방향을 잡고 안내지를 따라 진행.
앞도 안 보이고 나무천사도 뒤에서 보이지 않더니 따라 붙는다. 조금 안심이 된다.
여름 우리가 하산했던 심방마을 갈림길이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그때 가야산 가는길 정말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가는거다...
우측으로 가면 심방마을, 직진하면 단지봉 가는길.

단지봉 가는길은 눈도 남아있고 경시도 조금 쎄 앞사람이 힘도 빠져서인지 자꾸 밀린다. 겨우겨우 산행 3시간 정도 되어 단지봉 도착.
사방이 트여있고 여명의 붉은빛이 아프리카 분위기가 난다. 이렇게 사방 트인곳이 없단다. 오늘 일출도 좋을것 같단다.
문제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라 춥다. 잠바 하나 껴 입어 보지만 역부족. 빵으로 간식 먹고 기다렸다 사진 찍고 가자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먼저 앞서 갈테니 사진 찍고 오라고 했다.




단지봉에서




나무천사가 1시간 기다렸다 찍은 일출 사진. (기대에 좀 못 미쳤다고..)

선두팀은 일출 못 기다린다 가고 나도 중간 쯤에서 가는데 내 앞에 홀로 온 여자가 앞서서 가다 길을 비켜준다. 헤드랜턴 단지봉에서 집어 넣고 가는데 점점 훤해져 가고 하늘 색도 예뻐 가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디카 배터리 아웃. 새걸로 갈아 끼워도 되질 않는다. 배터리 이상인지 디카가 문제인지....
사진을 포기하고 길을 가는데 나무천사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도 안 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더니 뒤늦게 나타난 나무천사. 7시 넘어 해가 떠 후미 다 도착하고 나서 사진 찍고 오는 거라고 한다. 그 사람들 추월 많이 했다고....
배터리 빌려 넣어보니 작동이 된다. 내 배터리에 문제가 있나보다. 
 
 

 
해는 다 떠버렸고 하늘색도 아주 예뻐졌다.

오늘 산행이 무지 긴데도 주최측은 별로 서둘지 않는다. 이렇게 가도 되나 내가 다 걱정이 된다. 무박 따라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들 배터랑인가? 나는 처음 참가하는거라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건가?

이 산은 특히나 관목이 많아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지들이 얼굴을 자꾸 찌른다. 여름에 반팔, 반바지 입고 왔다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될 길이다. 관목에 철쭉이 많은것 같다. 봄에 오면 장관일것 같긴 한데 그때는 더 무성해 더 많이 찔리겠지?

 
목통령

이젠 해는 완전히 퍼져 날이 슬슬 더워져 간다. 잠바 벗고 얇은 장갑으로 바꾸어 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후미에 처진 사람 3명을 목통령에서 탈출 시켰다고 한다. 다른 산행기를 보니 종종 종주하다 탈출 해 나머지 구간을 하러 온다고 되어 있다.
산이슬 말에 의하면 수도사에서 시작하면 시간을 좀 벌고 청암사에서 시작하면 좀 더 길다고...
수도산에서 가야산을 보면 왕관 모양이라는데 깜깜 새벽에 눈 앞도 잘 안 보이는데 가야산 정상이 보일리가....

목통령이 반쯤 되는 거리인데 6시간 채 안 걸렸으니 평균 속도는 되는것 같다.
 오늘 산행 멤버 중 여자가 6명인데 대부분 동행이 있는것 같다. 생각보다 빠르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지리산 종주에 비할만 하다는데 수도산쪽은 크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진 않다.


멀리 덕유산 스키장 슬로프가 보이고....

시간이 많이 지날 수록 좋았다.
왜? 그만큼 종착점이 가까워 지니까...
장거리 산행은 시간이 흘러야 산행도 끝나게 되 있다. 아무리 긴 산행도 결국 끝은 있는 법이니까...

멀리 가야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겹살도 간간히 보여주고 쭉 뻗은 나무들도 아주 멋지다.
사람 키보다 크다는 억새는 그나마 머리칼 다 빠지고 힘도 빠져 산행이 큰 지장은 없었다.




두리봉 표지판

두리봉 지나 넓은 헬기장. 가야산 정상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젠 남은 구간이 훨씬 짧으니 기분도 좋고 종주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한 남자가 일행을 기다리는데 배낭이 엄청 크다. 온갖 장비 다 들고 다니나 보다. 마라톤, MTB 등 웬만한 운동은 다 하는 사람 같다. 패션도 돈 쳐바른것 같다.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매주 이렇게 긴 산행을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나 뭐라나...

가야산 정상 가까이 올 수록 암릉이 점점 많아지고 산죽이 사람 키높이다. 산죽을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
문제는 산행시간 9시간이 되 가니 갑자기 힘에 부치고 오르막을 올려 칠 수가 없다. 헌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닌지 앞서 가던 사람들 몇몇도 힘들게 올라가 추월할 수 있었다.
역시 12시간 산행은 쉽진 않네...




정상 직전의 헬기장의 억새와 산죽


뒤쪽에서 보는 가야산 모습은 더 아름답다고...


정상 직전의 헬기장

이젠 정말 코 앞인가보다. 넓은 헬기장을 지나니 가야산 정상 바로 아래다. 두리봉쪽은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이곳에 당일 산행으로 온 팀들이 여기저기 점심 먹느라 장터같다.
지치기 전 정상가는 계단을 올라가 가야산 정상부터 찍었다. 칠불봉도 찍고 오라고 했다.


가야산 정상에서


칠불봉 정상

칠불봉에서 상왕봉까지 멀게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멀지 않다. 그래도 이곳 높이가 높아서인지 응달에는 눈이 쌓여 있어 조심해서 올라가야 했다. 칠불봉에도 백운동쪽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이젠 정말 하산만 남았다. 야호~
후미에서 널널하게 오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나타난다. 우리는 제한시간 내에 가려고 거의 쉬지 않고 하산.


가야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아주 멋졌다


해인사 근처의 산죽밭

다리가 슬슬 아파오지만 쌍지팡이와 무릎보호대 덕분인지, 지구력 덕분인지 생각보다 너무 잘 왔다는 나무천사.
함께 온 남자들 몇몇도 하산길은 힘이 든지 몇명 또 추월. 대부분 큰 배낭을 메고 와 무게때문에 그런것 같다.

나중 산행대장에 말이지만 장거리 산행은 무게와의 싸움인데 당일 산행처럼 짐 들고 오는건 미련한 짓이라고....
우리도 가져간 물 거의 다 남았다고 나무천사 구박이다. 그래도 남는게 낫지 뭐.
해인사 도착하니 11시간 걸린 산행 일단 끝.
야, 신난다.




해인사에서

해인사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관광호텔 주차장으로 찾아가니 수고 했다고 반겨준다. 배낭 내려놓고 늦은 점저를 오징어 국에 밥 한그릇 말아 다 먹었다. 하산주로 막걸리도 한잔 마시고...
발씻고 이 닦고 이젠 잘 준비.
후미조는 한 사람이 다리에 쥐가 나 고생 해 짐 들어다주고 테이핑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하는데도 예정시간에서 1시간 밖에 늦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자들은 6명 다 무사 완주를 했는데 탈출한 사람들은 다 남자였다고....

16:30 출발.
고속도로 하나도 막히지 않고 집에 오니 21시가 좀 넘은 시간.
몸은 피곤하지만 정말 기분은 상쾌했던 행복한 산행이었다.
동행 해 준 남푠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