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10산행기

미완의 지리 종주 (12/27~29)

산무수리 2011. 1. 4. 14:29

지리산에 전화를 걸다/손 택 수 

 

 


지리산에 전화를 건다
아마도 진달래 수달래
꽃물결 짜하게 번져있던
칠선계곡 어디쯤,
아님 물안개를 속곳처럼 아슬하게 걸쳐서 
뽀얀 살결이 드러날까 말까
넋을 잃기 좋았던 선녀탕 부근?   

산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본다 나는
누군가와 늘 통화중이었지만
언제나 불통이었지
불통의 대가로 비싼 통화료만 냈어
그런데 그때 그 산속에서까지
통하지 않으면 안될 소중한 누가
과연 내게 있기는 있었단 말인가 

무인도는 가지 못하고
통화권이라도 이탈할 수 있는 자신을
한숨처럼 탁 놓여날 수 있는 자신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단 말인가
지나가던 산토끼나 호기심 많은 곰이
사용법을 몰라 애를 먹고 있을 지도 모를,
성질 급한 멧돼지의 뱃속에 들어가서
가끔씩 들어오는 문자 메시지 소리로
꾸르륵거리고 있을 지도 모를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까지 남겨본다
아마도 산은 휴대폰 하나 때문에
통화권을 이탈해버린 자신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탈한 적도, 통화를 거부한 적도 없이
우연하게 떠맡은 애물단지의 처리를 놓고
지끈지끈 골치가 아플 것이다 

내가 통화권을 이탈한 뒤에 지리산을 만났다면, 
지리산은 나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통화권을 이탈했다 할까, 그럴까
산은 받지 않는다 심기가 불편한지
내내 묵묵부답이다

 

산행일: 2010.12.27 23:00 수원발

코스개관: 성삼재-노고단(아침)-삼도봉-토끼봉-연하천(점심)-벽소령(1박)-세석-마

날씨: 첫날은 눈속에 숨은 지리산. 거의 하루종일 눈이 내리다 그치다 반복. 시계제로. 둘째날 9시 경부터 날이 개며 파란 하늘, 지리 주능선을 보여줌.

멤버: 5명

 

시한부 백수기념 동계 프로젝트로 지리에 들기로 했다. 여산 송년음악회에 지장을 주지 않고자 날을 잡았고 지리가 처음인 이감탄을 동계지리로 인사하기로.

월욜마다 탁구를 치러 다닌지 2달여. 탁동 회장님인 고회장님도 지리에 간다고 하니 마음이 있는 눈치. 함께 가자 청했고 나무천사도 함께 가기로 해 5명 인원 확정.

대피소 예약 했고 기차표도 예매해 용산, 영등포, 수원에서 타기로.

수원에서 타니 셋이 앉아있다 반긴다. 이 겨울 지리에 가는 미친사람이 제법 많다.

그중에서도 우리 바로 앞자리 4명은 차안에서부터 술판이다. 그것도 시바스 리갈로....

싫컷 남 잠 방해하더니 다리 뻣고 잔다. 고수인쥐 초보인쥐......

 

4시 전 구례구에 내렸는데 막상 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많던 택시도 별로 안 보인다.

헌데 성상재에 차가 못 올라간단다. 화엄사만 가능하다고...

뭐라? 화엄사에서는 못 간다고 가지 말자는 여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가 봐야 하는거 아니냐는 고회장과 나.

몇몇은 화엄사로 떠났고 화엄사 택시도 기다려야 탈 수 있는데 전화로 택시를 불러서 온 차 한대가 자긴 성삼재 갈 수 있단다. 체인도 있고 그쪽 방면 전문이라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삼재에 차가 올라가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기다리는 택시는 7시까지 기다리면 성삼재 올려준다는데 그 시간에 벽소령까지 갈 수 있을것 같지도 않고 이 새벽 기다리느니 연하천 까지라도 가기로 했다.

 

택시가 왔다. 다른 택시 성삼재 올려준다고 했다니까 콧방귀 뀌면서 우리보고 가만히 있으란다. 체인 치는거 도와준다면, 그리고 택시비 조금 더 쳐 준다면 가는데 까지 가 보겠노라고...

5명이 타고 올라가다 중간 체인 치고 올라가다 풀고 막판 300m 남겨놓고 차가 미끄러워 못 올라가 그곳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그 시간이 5시반.

노고단 대피소에 1시간 만에 겨우 올라갔는데 진눈깨비 온다는 날씨가 시작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

 

아침은 떡만두국으로..

 

아침은 오뎅국 끓여 밥 먹기로 했는데 이감탄이 깜박 잊고 밥을 안 싸왔다고 해 밥이 모자랄것 같아 점심메뉴인 떡만두국을 아침에 먹기로 했다. 노고단 취사장도 사람도 별로 없고 썰렁한 분위기.

일단은 아침 먹고 날이 훤해진 다음에 올라가기로 했다.

밥 다 먹고 7시가 넘으니 그나마 밖이 훤해 진다. 일단은 출발을 했다.

 

 

 

 

 

 

출발 할때 눈이 안 내려 다행이다 싶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도 간간히 불어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닌게 그나마 다행인것 같다.

시계는 제로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조망 없는 산을 유난히 싫어하는 여산이 설상가상으로 꼭 먹어야 하는 약을 두가지나 빼먹고 안 가져왔단다. 그래서인지 땀을 초장부터 흘린다.

간간히 사람들이 보이고 길은 러셀에는 큰 지장은 없는 상태.

오늘 처음 DSLR 장만해 처음 출사나온 나무천사는 카메라 젖을까 노심초사. 자연 가슴에 끌어안고 다니려니 넣다 뺐다 하는게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다. 5명 중 디카 없는 사람이 이감탄 밖에 없는데도 사진 찍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눈 쌓인 지리는 멋지지만 내리는 눈은 조금은 부담이 된다.

 

 

조망이 없으니 반야도 생략하고 삼도봉에도 사람들이 사진도 안 찍고 그냥 지나간다.

 

화개재에서 눈이 계속 내리니 쉬는것도 여의치 않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벽소령쪽으로 이사 간 연하천에 겨우 도착.

 

연하천 취사장은 목욕탕같이 습기 가득하고 썰렁하다. 우리도 자리 밀어내고 떡라면 끓여 아침 먹고 남은 밥으로 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도착할 때 그친 눈이 이젠 그만 오나 했더니 출발하려니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눈이 좀 그친 다음에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칠 눈이 아난것 같다. 이렇게 눈이 오면 입산통제를 안 하나 염려를 하면서 아무튼 벽소령까지는 가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상황을 보기로 했다.

 

 

 

  

 

 

벽소령 가는 길 아주 쬐끔이지만 앞 능선이 보이는것 같다. 날이 개나 했는데도 결국 벽소령까지 내내 눈을 맞고 갔다.

벽소령에 가니 세석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못가게 막아 사람이 많다.

일단 자리배정 받았는데 처음엔 여자를 2층에 주더니 사람들이 늘어나 2층까지 남자들이 밀고 올라와 여자들은 4명이 2호실을 쓰게 되었다. 한갖져 좋긴 했는데 좀 추웠다.

 

오늘 목표인 벽소령까지 무사히 도착한건 다행인데 내일 일정이 어찌 될지 정말이지 심란하다.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벽소령 수은주는 영하 9도.

배도 안 고프지만 저녁은 먹어야 겠기에 취사장에 내려오니 역시나 냉동창고 같다.

이감탄이 준비한 한우불고기에 묵은지 김치찌개. 다른 반찬을 꺼낼 필요도 없다. 모처럼 산에서 럭셔리 하게 아주 잘 먹었다.

다 먹고 났는데도 8시도 안 되었다. 숙소로 올라왔는데 그 시간에 도착한 사람들도 보인다.

초저녁부터 할 일이 없는지라 자다 깨다를 밤새 반복. 눈은 그치지 않고 바람까지 분다. 내일은 어찌 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