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11 산행기

땅끝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다 (오소재-미황사, 4/9~10)

산무수리 2011. 4. 13. 00:39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1966~ )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빛나던 눈도 비늘도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 사랑은 일어난 것. 사랑의 속성에는 ‘아니 될’ ‘아니 할’ 사랑이라는 이해 불가의 어떤 윤리가 내재해 있는 걸까. 두려움과 떨림이 그 반응인 것을 보면. 『장자』에서 빌려왔다는 *표시의 시인의 주를 여기에 다시 옮기는 것이 모자란 나의 감상보다 이익 크고 높으리라.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이진명·시인>

 

 

산행일: 2011.4.9~10 (토요무박)

코스개관: 오소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도솔봉-닭골재-바람재-달마산-미황사 (4;40~14:20)

날씨: 4월의 어느 멋진날. 점심 무렵엔 여름을 느끼기 까지...

 

 

 

땅끝이 벌써 6회차. 이제 한번만 더 가면 땅끝도 졸업.

별뫼산 산행때 땅끝 표시판을 봤고 달마산 종주에 필 꽃혀 오매불망 가고싶던 땅끝기맥을 카페에서 한다고 해 욕심으로 산행 신청.

대부분 멤버들은 1대간9정맥을 마친 실로 겁나는 사람들로 선두는 차에서만 볼 수 있고 후미인 난 후미대장님 호위를 받으며 힘겹게 이어온 이 길.

첫 산행은 긴장해서인지 후미를 면했는데 두번째 부터는 거의 후미에서 헤매다 4번째 부터는 후미 백성인 여자들이 대부분 안 나와 확실한 후미.

그래도 이 팀은 선두는 날아가도록 놔 두지만 후미는 확실하게 끝까지 챙겨 주기에 5번째 까지 무사히 완주.

오늘 산행이 그중 긴 산행이다. 마지막 구간을 좀 일찍 끝내기 위해 달마산 정상까지 갔다 미황사로 하산한다고 해 걱정 많이 했다.

 

코스가 좋아서인가 당나귀 이대장도 신청을 했고 오랜 블로그 친구인 솜솔아빠도 100대 산 하는 중인데 두륜산을 아직 못했다고 신청.

이덕 저덕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까지?

7일 부터 재량휴일이 끼어 일요일까지 연휴인데 첫날은 황사 비 때문에 영취산 산행이 취소되어 여수에서 1박 하고 돌산지맥 맛보기라도 할 계획은 진작에 물 건너갔다.

토욜 밤 땅끝때문에 산행을 자제하고 점심 모임을 다녀오고 짐싸고 어쩌고 해 사당 출발.

놀대장님이 죽전에서 탄다고 해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지각한 한명을 놓고 올 뻔해 양재에서 기다렸다 태우고 죽전으로...

친척 계론식 갔다 운전해서 왔다는 놀대장. 피곤해 죽겠단다.

코스가 길어서 지도도 앞뒤로 나누어주고 설명해 주고 일단 자고 함평 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오소재 도착하니 4:30.

5시 출발 한다고 했는데 성미급한 사람들이 먼저 출발해버려 40분 부터 산행 시작.

 

 

 

 

재작년 오소재에서 올라간 평탄한 넓은길이 아닌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험난한 길이다. 올라가니 제법 긴 너덜까지 나온다. 오늘 초장에는 스틱을 쓰지 말라고 하니 걷는지 기는지 모를 온몸산악회 모드로 급경사 올라치고 바위 돌아가고 계단 올라가니 벌써 첫 봉우리인 노승봉.

힘들어 죽겠는데 선두는 벌써 건너편 봉우리에 있다. 날이 벌써 훤해져 랜턴 끄고 정상 사진 찍고 진행.

 

 

암름 몇개 지나고 바위를 넘어넘어 가니 벌써 가련봉. 축지법을 쓰는것 같다. 정상 주변에 사진 찍느라 바쁘다. 통과.

 

 

 

 

가련봉 지나 기나긴 계단길이 나온다. 이 계단도 생긴지 얼마 안된줄 알았다. 헌데 재작년 산행기 보니 분명히 이 계단이 있네. 이 계단을 내려오니 만일재.

만일재에 오니 우리가 못 본 새 해 해가 떠있다. 이젠 두륜봉으로 가기.

 

 

 

 

 

두륜봉은 찍고 되돌아 내려오는 길이라 배낭 벗어놓고 올라가 구름다리같은 바위 위에서 사진 찍기. 앞에서 보면 강아지 같고 뒤에서 보면 코끼리 코 같이 보이는 바위 모습이 특이하다.

두륜봉 몇번 와 봤지만 정상석을 오늘 처음 만났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가련봉을 배경으로 두륜봉 정상석이 보인다. 이곳에서 여럿이 어울려 사진 찍고 독사진 찍는데 먼저 출발.

 

 

 

 

 

 

 

 

두륜봉에서 도솔봉 가는 길은 초장엔 제법 살 떨리는 암릉이 있었고 밧줄 구간도 있는 스릴있는 길.

아주 멀리 도솔봉 중계탑이 보이고 그 너머 구름 사이로 달마산이 떠 있다. 언제 저길 가나 오늘 안에 갈 수는 있나....

그래도 암릉 지나고나니 비교적 평탄한 산죽밭이 이어진다. 예전엔 이 길도 거칠었다는데 많이 정비를 해 다니기 좋아졌다는 대장님 말씀.

아무튼 아침 해를 받으면서 가는 길은 아주 아름다웠다. 멀게 느껴지던 도솔봉에 드디어 도착.

 

 

 

도솔봉 조망 좋은 곳에서 간식 및 밥 먹기.

모여 앉아 밥 먹기도 참 힘든데...

솜솔아빠가 싸 온 초밥을 나누어줘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는데도 먹었고 여기저기 나누어 주는 잔치떡, 커피, 과일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후미일 수록 먹을걸 더 많이 싸온다고... 그래서 짐 덜어주는게 덜어주는 거라고...

선두 그룹이던 라스트님은 오늘 널널산행이다. 달마산 구간을 이미 해서 오늘은 닭골재까지만 간다고 했고 오늘 처음 보는 부부팀도 닭골재까지 가고 박칼린 닮은 멋쟁이 여자도 대간 2기 출신이라는데 오랫만의 산행인지 힘들어 한다.

 

 

한발 앞서 놀대장 뒤를 쫓아가는데 송신소 근처에서 사라진 대장.

우왕좌왕 하다 누군가 복사해 온 산행기를 보니 길로 내려서 철조망을 길게 돌아가는 길이 나온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바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길이 위험해 우회하는게 정상 등산로라고...

 

 

 

 

 

 

 

 

도솔봉 지나서 닭골재까지 가는 길도 간간히 험한 길은 나왔지만 스틱을 접을 정도는 아니다. 헌데 곧 나타날것 같은 닭골재가 생각보다 멀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솜솔아빠가 발목을 접질렸다고 닭골재에서 탈출한다는 후미대장님의 전언.

이 말을 들은 박칼린은 자기도 여기서 하산한다고 무지 좋아한다.

후미대장 왈, 늦어도 미황사까지 가는 분들만 뒤를 봐 준다고... 후미는 라스트님에게 맡기고 잠깐 쉬고 출발.

닭골재 내려서기 전 마지막 쉬는데 달마산이 많이 가까워 지긴 했지만 낮은 산 두개를 더 넘어야 하나보다...

아주 한참만에 포장도로가 나왔고 우리 버스도 서있다. 탈출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닭골재에서 달마산 구역으로 진입했다.

멀리서보면 그냥 야산 같은데 야생화에 자연란이 지천이다. 바람재는 여기서 좀 더 가야 하나보다.

날이 갑자기 더워지면서 물도 많이 먹히고 이젠 다리에 힘도 빠져 지쳐간다...

 

 

바람재 지나 달마산으로 붙었다. 처음부터 겁나는 암름인줄 알았는데 암릉을 피한 등산로가 나와 처음엔 좋았다.

 

 

 

 

 

다행이 아주 험하지는 않은 암름을 몇개 지나서 아주 멀리 끝에 보이는 달마산 정상.

더 문제는 송촌 갈림길을 내려다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밥을 먹거나 걷거나...

이쪽길도 제법 험해 길이 많이 정체.

곰님은 속이 안 좋은지 계속 꺽꺽대며 걷는다. 소화제 드리고 응급처치 해 봤으나 역부족.

헌데 종종 그런다는 후미대장님 말씀.

 

 

 

 

더러 추월해 가면서 겨우겨우 달마산 정상에 도착. 원래 오늘 예정은 이곳에서 진행하다 미황사 부도밭쪽으로 하산을 해야 하는데 시간도 늦었고 길도 정체 된다고 후미는 이곳에서 바로 미황사로 하산하라는 놀대장님.

한편은 다행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긴 하지만 다음 구간이 짧으니 이곳부터 하면 된다고 이곳에서 하산 시작.

헌데 이쪽 하산길도 아주 만만하진 않았다. 정상 주변은 그야말로 장터가 따로 없이 복잡하다.

 

 

 

무사히 미황사 도착.

법복 입은 분들이 수행 하는 모드로 걷고 계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7박8일 단기출가 체험인데 특히나 템플스테이와 한문학당이 유명한 절이라고.....

절 한번 둘러보고 물도 뜨고 원래 하산 하기로 한 지점까지 진행한 사람들 기다렸다 3시 넘어 겨우 출발.

해남의 명물인 닭한마리 먹으러 출발~

식당으로 가면서 보여주는 달마산 능선과 두륜산. 새삼 우리가 저 먼길을 걸어왔다는 감탄. 스스로가 대견하다.

해남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고 꽃들은 그대 만발해 너무 멋지다. 감탄하는 날 보고 소녀같다고...

아직도 마음은 19세 거든요?

 

 

명성식당에서 뒤뜰에 뛰어놀던 토종닭 한마리로 회, 튀김, 불고기, 찹쌀밥에 녹두죽까지 풀코스 요리.

한마리에 4만5천원이라는데 넷이 배부르게 싫컷 먹었다. 닭은 익혀 먹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없애준 닭회. 생닭이어야 가능하다고...

아무튼 28명이 아우성 치면서 달라고 해 부지런히 먹었는데도 시간이 많이 지체.

당나귀 이대장이 술을 많이 권해 우리 테이블로 도망친 솜솔아빠.

잘 섭외 해 당나귀에 영입하라 했더니 술부터 먹이나보다. 특히나 그 테이블은 주립대 총장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있는곳.

 

탈출조 3명도 알고보니 다 쥐띠였다고 나름 재미나게 쥐들의 추억을 그새 만들었다고....

5시 훨씬 넘어 주립대 장학생들은 사당에서의 2차를 기약했는데 차는 하염없이 막혀 사당에 도착하니 11:30.

막차 전 차를 겨우 타고 12시 넘어 무사 귀가.

이제나 저제나 끝날 날을 기다렸는데 막상 한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섭섭함이 더 들었던 산행.

두루 감,고,사~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