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1 -조정권 (1949 ∼ )
꽃씨를 떨구듯
적요한 시간의 마당에
백지 한 장이 떨어져 있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이 놓고 간 물음.
시인은 그것을 10월의 포켓트에 하루 종일 넣고 다니다가
밤의 한 기슭에
등불을 밝히고 읽는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의 뜻.
공손하게 달라 하면
조용히 대답을 내려 주신다.
생의 절절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 바탕을 진실로 깨끗한 백지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미 많은 것을 옮겨 심어 어지러운 미망(迷妄)에는 말씀이 씨로 내린들 신(神)의 꽃씨 싹 틔울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생의 신음은 절절한 간구에도 기록되지 못하니, 백지를 앞질러 모두 경작해버린 탓이다. 공손함조차 저버린 욕망으로 빼곡 채운 어지러운 마음을 받아 든들 누가 그걸 읽어낼 수 있으랴! 시를 향한 외로움이 백지 위에 그리운 말씀들이 내려앉게 한다. <김명인·시인>
보통은 새벽부터 사람들이 설치는데 연하천은 조용하기만 하다.
눈이 많이 쌓여 화장실 가는데도 발이 빠진다.
어제 장터목에서 왔다는 부부팀은 눈을 맞아 옷이 다 젖었다는데 길도 잘 모르면서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이란다.
우리도 어제 남은 밥에 칼국수를 끓여 먹고 짐을 다 챙겼는데 다들 눈치 보느라 출발을 하지 않는다.
8시5분. 바람은 불지만 눈은 그친것 같다. 바람에 눈이 날리는 정도.
누군가 앞서서 길을 간 흔적이 보인다. 헌데도 길은 바람때문에 거의 덮여 있는 상태.
그나마 다행인건 주능선에는 바람이 심하지 않아 바람이 불지 않은 곳에서는 더울 지경.
역시나 경치는 밤새 내린 눈 덕분에 흰 산호초가 사슴뿔처럼 통통하다.
하얗게 눈을 쓰고 있는 나무를 보니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경치.
재작년 벽소령에서 1박 후 새벽 눈과 바람때문에 출발이 늦어져 결국 세석에서 하산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래도 빨리 출발한것 같다.
중간 먼저 출발한 한사람을 추월했고 조금 앞에 젊은이 둘이 러셀을 하면서 벽소령까지 거의 함께 갔다.
벽소령에 도착하니 10시 10분. 조용하다.
취사장 전세내 빵과 귤로 간식을 먹었다.
앞에서 러셀했던 젊은이들은 커피 끓여 먹고 간다고 해 우리가 먼저 출발.
다행히 벽소령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있으니 러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려니 했다.
앞서서 가는 나무천사 왈, 오르막 한번 지나면 우리를 30분씩 기다려야 한단다.
중간 조망이 트이는 곳에 사람들이 많다. 헌데 나무천사는 안 보이고 단체로 보이는 팀, 반대로 오는 사람등으로 제법 사람이 많다.
나무천사 만나기 위해 쉬지않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가는데도 머무르며 사진 찍은 흔적은 보이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단체 팀은 알고보니 세명컴퓨터고 학생들. 벽소령에서 출발했는데 왜 아직 세석도 못 갔냐고 하니 아침 날씨가 나쁘다고 못가게 해 하산할뻔 했는데 9시경 통제가 풀린데다 학생 한명이 체해 늦어졌다고....
함께 긴 오르막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갔도 지도교사님과도 인사 트고 (친구가 근무하는 곳) 우리가 조금 앞서서 진행.
날인 완전히 화창해져 천왕봉 능선도 보인다. 이번엔 내 카메라가 없으니 좋은 경치를 봐도 찍을 수 없어 정말이지 아쉽다.
영신봉이 드디어 보인다. 이곳까지 오면 저절로 없던 힘도 생겨 뛰듯이 세석으로 내려가는데 이샘은 자꾸 뒤처진다.
겨우겨우 2시에 세석 도착.
나무천사 물 떠다놓고 기다리고 있다. 이샘도 도착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고 햇살도 따뜻해 밖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했으나 버너 화력이 약해진다.
그래도 취사장이 따뜻해 이곳에서 떡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학생들도 선두는 곧 도착했고 한참만에 후미도 도착했고 연하천에서 보이던 사람들도 밥 먹고 떠나려니 한팀 한팀 나타난다.
아픈 학생은 약을 먹어 좀 좋아졌다고 한다. 진작 알았다면 사혈 할 수 있다고 하니 쫓아 오더니 사혈을 해 달란다.
안 그래도 이 학생 때문에 지도교사 한분이 달라붙어 겨우 여기까지 왔다고 거림으로 하산해 민박을 해야 할것 같다고 얼마나 걸리나 물어보신다.
학생 컨디션은 조금은 나아졌는데 조금 어지럽다고 한다. 본인은 포기하지 않고 가고 싶다고 한다.
일단 사혈해 주었고 소화제, 진통제도 주고 마라톤때 먹는 파워겔을 하나 주었다. 장터목까지는 경치도 예쁘고 멀지 않아 갈 수 을 거라고...
헌데 우리 이샘도 많이 지친 모습. 어지럽다고 한다. 하나 남은 파워겔은 이샘을 주었다. 많이 힘들었는지 사양 하지 않고 먹는다.
세석에서 장터목 넘어가는 길은 지리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눈 터널도 지나고 조금만 더 가면 장터목에 도착한다는 기대감, 그리고 날도 화창해 점점 천왕봉이 가까워진다.
경치 좋은 곳에서는 기다렸다 사진 찍어달라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간다.
앗, 고회장이 반대편에서 오고 게시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해서 세석으로 올라오려고 했으나 이쪽도 입산 통제해 할 수 없이 장터목으로 올라와 시간이 남아 우리를 마중 오는 중이라고...
헌데 지난 겨울 세석에서 하산한지라 촛대봉까지 휭하니 다녀오시 겠다고...
지금도 빨리 오고 싶었는데 경치가 자꾸 잡아 사진 찍느라 늦어졌다고....
사진 한장 찍고 천천히 다녀오시면 밥 해 놓고 자리 배정 받아놓기로 했다.
이샘은 오전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기운은 없는것 같다.
그래도 컨디션이 좋아지긴 했는지 카메라 들이대면 포즈 취하는 여유를 보인다. 다행이다.
장터목이 가까워오니 마음이 조급해 진다. 혼자 먼저 장터목으로 와 자리 배정을 받았다.
장터목에는 제법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샘이 내 뒤 도착했는데 일단 대피소에 들어가 자리랑 담요를 받아 놓겠다고 한다.
오는새 아이젠 한짝을 잃어버렸다고. 그래서인지 중간 넘어지며 거꾸로 처박혔다고... 다치지 않은게 다행이다.
이이젠을 매점 문 닫기 전에 미리 샀다.
나무천사 바로 뒤 도착.
제석봉 일몰 찍으러 가라 하니 물 떠 오는게 더 급하다며 패트병 2개 들고가 물 떠 가지고 오는 해 해가 졌다고 아쉬워 한다.
밥을 아침까지 한다고 쌀을 너무 많이 넣어 완전히 설었다.
고회장, 일몰 사진 찍으라 손까지 얼어가면서 찍고 왔노라고....
오늘 저녁도 이샘이 준비한 오리훈제.
일단 고기 구워 남은 술을 마시는데 고샘이 술 한병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한벙 준다는 소리 아니였냐면서 안 사왔고 작은 고량주만 약간 있다고...
피같은 술을 아껴가면서 혀로 찍어 먹는다고 웃기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앞에서 밥 먹던 총각팀 두팀에서 술 남았다고 나누어 준다.
그 술을 또 나누는 고회장. ㅎㅎ
결국 부족했던 술이 남아 두 장학생은 제법 술을 많이 마신것 같다. ㅎㅎ
세명고 학생은 무사히 장터목까지 왔노라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우리 밥 다 먹고 치우는데 첫날 화엄사에서 함께 출발했던 팀이 그제서야 도착. 헌데 넷이었는데 2명만 보이는것 같다.
소등하기 전 겨우 치우고 숙소로 왔다.
여탕은 10명도 채 안되는데 그중 한팀은 연하천에서 함께 했던 팀.
사람도 적은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예전 대피소에 비해 너무 춥기도 했다.
내일 5시반에 일어나기로 했다.
미산샘 문자가 왔다. 마산으로 가는 버스 안이시라며 산행 잘 마치라는 격려의 문자.
-고회장 사진 추가.
'산행기 > 2012 산행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랑산악회 첫산행 (인왕산, 1/19) (0) | 2012.01.27 |
---|---|
한라산 가기 (1/17) (0) | 2012.01.27 |
아쉬움으로 지리를 떠나다 (장터목-대원사, 1/5) (0) | 2012.01.07 |
지리에 들다 (화엄사~연하천, 1.2~5) (0) | 2012.01.07 |
송광면 인심에 행복했던 호남정맥 (접치-주릿재, 1/1) (0) | 201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