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름 있는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아는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이라는 비료를 바다 건너 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나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초를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事例)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 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5/27 (일)
집-정령치-만복대-정령치-대원사-문경(1박)
넘의편이 5월 초 5산종주 마라톤을 3년째 뛰더니 더 늙기 전 화대마라톤도 뛰고 싶단다.
화욜까지 재량휴일인지라 지리에 들고 싶었지만 대피소 예약도 어렵고 멤버 짜기는 더 어려워 갈 수록 지리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일단 여산에게 같이 놀자 하니 초파일 문경 봉암사에 가기로 했단다.
둘이 가기가 그래 넘의편 뛰고 나서 합류하기로 했다. 막판 설악에 간다고 함께 못 한다던 이샘이 설악이 취소되어 합류하게 되었다.
토욜은 청소년 박람회 부스를 지켜야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샘, 홍샘과 셋이 부스 지키고 학생들 암벽 체험도 시키는데 하네서 매고 푸는것만 해도 힘드니 확보 해 주닌 홍샘은 많이 힘들었을터...
끝나고 저녁 먹고 집에 가니 오늘밤 무박으로 지리에 가는 남의편인 짐 싸고 막 출발.
뛰면서 사진까지 찍겠다고 내 디카까지 챙긴다. 못말린다....
새벽 여산, 이샘이 집앞으로 와 6시반 출발.
휴게소에서 여산 라면정식으로 아침 먹고 우리들은 차 마시고 다시 출발.
우리차가 오토라 운전은 내내 이샘이 하고 정령치 도착하니 사람이 아주 많다. 바래봉 산행이 대부분인지 만복대 방향은 그나마 한갖지다.
-여산표 만복대~대원사
욕심 같아서는 성삼재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여산이 태클 건다.
이샘은 주능선은 가 봤지만 정령치-성삼재 구간은 초행인지라 내심 욕심이 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아쉬운대로 만복대까지 가서 널널하게 점심 먹고 다시 내려와 대원사로 데리러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직 도착을 안한건지 통화 불통 지역인지...
가다 가름 가득 넣고 거의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할 쯤 되니 전화가 온다. 배터리 방전되 넘의 전화로 걸었단다.
가 보니 여자 2명 포함해 일부 도착해 있다. 15등 했다는 넘의 편.
주최측에서 주는 비빔밥. 겨울 화대종주 후 밥 먹던 식당이다.
밥 먹고 오늘 1박 할 문경으로 가는데 거리가 거의 집에서 정령치 거리.
이샘이 내내 운전하고 7시 경 문경 도착해 저녁 사 먹고 여관 하나 잡아서 1박.
내일 일찍 출발해야 봉암사에 차가 들어 간다고 해 4시 일어나기로...
5/28 (월)
4시 일어나 여산이 가져온 전기밥솥에 밥 해 먹고 출발하니 5시40분 경 봉암사 입구 도착.
아직 이른 시간이라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걸어들어가는데 중간에 텐트치고 자는 사람도 있다.
봉암사때문에 희양산 정상 일대가 아예 등산 불가지역.
10여년 전 넘의 편이 대간 하며 이 구간을 빼 먹어 둘이 다녀왔던 곳.
여산도 한번 왔다 스님들이 지키고 있어 못 왔다고...
작년에도 봉암사를 오긴 했는데 비가 와 희양산 정상은 보지 못했다고....
오늘은 날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보여주기는 한다.
일단은 마애불을 봐야 한단다.
계곡가의 마애불를 뵙고 계곡에 앉아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고 한참 놀았다.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계곡 물이 불었을땐 건널 수 없는데 오늘은 계곡 물이 많지 않아 계곡 건너 절로 내려가기.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눈에 번쩍 뛰는 경치는 아니지만 일단 절 터가 아주 넓고 법당 뒤 우뚝한 희양산이 참 좋다.
선방이 아주 크고 그윽해 공부는 잘 될것 같다.
보물, 국보도 있고 남다른 건물도 보인다.
탑과 건물에 가릉빈가가 있다고 여산이 알려준다. 아는 만큼 보이는것 맞다.
약수물을 마시고 뜨는데 봉암사 약수물만 마셔도 좋다는 보살님. 봉암사 아래 동네 살지만 오늘 밖에는 올 수 없다고...
어떤 분도 몇번 왔다 차가 못 들어와 세번째만에 들어와 본다는 처사님.
여산 덕분에 평생에 오기 힘든 절에 오게 되었고 아침까지 얻어 먹고 출발.
원래 오늘 일정은 이 근처 예쁜 절인 윤필암에 가기로 했었는데 봉암사를 빠져 나오는데 차량 들어오는걸 막고 셔틀 버스만 운행된다. 다른 절도 막힐것 같아 내일 가기로 한 대야산을 가기로 했다.
용추폭포-말재-정상-용추폭포
예전 대야산만 가을에 온 적이 있고 당나귀 전신인 황금송산악회 처음 참석한 산행 구간이 대야산 구간.
몇년 만에 와 보니 용추폭포는 생각보다 가까워 놀랐고 경치는 예전만 못해 서운했다.
주차장에 사람이 거의 없어 이 좋은 산에 왜 이리 사람이 없을까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간간히 등산객이 보이는지라 그냥 운이 좋아 호젓한 산행을 하게되는구나 했다.
계곡길은 조망도 없어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계곡 오른쪽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우리들은 계곡 왼쪽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밀재까지 힘들게 가서 여기서부타 정상까지는 대간길과 겹치는 구간. 헌데도 예전 기억과는 또 다른 이곳.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비까지 내린다. 이 바위산에 비가 내리면?
다행히 비는 비옷 입기도 전해 그치더니 곧 해가 난다.
멀게만 느껴지던 대야산 정상을 겨우겨우 올라가니 기뻤다. 조망 트일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는지 다시 비라 내린다.
아 뜨거 하면서 정상에서 바로 내려서는 하산길로 들어섰는데 이길 참 그지같다. 사진 찍을 여우도 없이 발 밑만 보고 가고 간간히 매어놓은 밧줄 잡고 겨우겨우 내려섰다.
아느새 계곡에 와 보니 올라갔던 길과 만나는것 같은데 영 낯이 설다.
무사히 계곡에 내려서니 조금 안심이 된다.
다 내려와 계곡 건너 길로 오다보니 대야산 휴양림 경내. 지도를 달라고 하니 대야산 작년부타 입상통제라고 단속에 걸리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생각하란다.
아들 전화, 안양은 비오고 천둥치는데 괜찮냐고 걱정어린 전화. 여긴 비 오다 말았다고 안심 시키고 오늘 늦게 귀가 한다고 했다.
내일 가려던 대야산도 갔으니 오늘 올라가자고 우기는 나무천사에 져 오늘 올라가기로 했다.
헌데 산행 끝난 줄 어찌 알고 비가 정말 내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겁나게....
문경까지 되돌아가지 말로 올라가는 쪽 수안보에 가서 목간 하고 저녁 먹고 귀가 하기로...
목욕까지 하고 저녁 먹고 나니 집에 가 할일이 없어져 참 좋았다.
염려와는 달리 차는 거의 막히지 않아 그리 늦지 않게 무사 귀가.
봉암사도 봤고 금지구역이 된 대아산도 무지해서 다녀오는 행운(!) 을 만났다.
이덕 저덕 친구덕이다...
-여산표 봉암사
-여산표 대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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