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홋카이도 권 사진

산무수리 2017. 11. 25. 23:58
생명 보험 
-김기택(1957~) 
 
병원마다 장례식장마다 남아도는 죽음,
(…)
삶은 언젠가 나에게도 죽음 하나를 주리라.
무엇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두 손은
공짜이므로 넙죽 받을 것이다.
(…)
그렇잖아도 죽음에 투자하라고
부동산 투자보다 훨씬 안전하고 수익도 높다고
(…)
공짜였던 죽음이 언제부터 선불로 바뀌었나요?
선불이 아니라 아버님, 가족에 대한 사랑이에요.
보장성과 수익성이 풍부한 사랑이요.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견적 뽑으면 다 나와요.
죽음에다 돈과 사랑이 쏟아져 나오는 투자를 하고 나면  
어서 죽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할 거예요.  
 

 
암 보험도 그렇지만 생명 보험도 금액을 지급받는다는 것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자본주의는 비상하게 영리하여 그런 아이러니를 뛰어넘어 자신의 죽음에 투자하는 기묘한 상품을 만들어냈다. “선불이 아니라, 아버님, 가족에 대한 사랑이에요”라고 생명 보험에 사랑의 담론까지를 입히는데 이런 아이러니를 꿰뚫고 희화화하는 시인의 놀라운 지성!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을…. 인간이여, 슬프도다.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