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이 가을을>
나해철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코스개관: 동서울 심야버스 백무동행-백무동-한신계곡-세석-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 (3:40~13:05)
9월 설악에 이어 10월 지리를 가기로 했다. 잡고 보니 연 3일 산행 후 하루 쉬고 가는 일정이라 다소 부담은 됐다. 일욜 당나귀 산행에서 화욜 지리를 가기로 했다고 짧게 하자고 해서 관음봉을 생략했지만 산행 거리는 짧지 않았다.
월욜 오마니 독감 접종이 있는지라 친정에 들려 오마니 접종 해 드리고 같이 점심 먹고 조금 일찍 귀가 하며 남성시장에서 떡, 빵을 사가지고 귀가.
집에 와 여재뭉이 침낭을 빌려갔고 내일 먹을 유부초밥을 준비하고 보온병에 물을 담으려니 가볍게 가자고 병에 든 커피 음료를 가지고 간단다.
10시 경 집에서 나와 강변역 동서울 터미널에 가 표 발권 받고 대합실에 가니 사람들이 몇명 와 있고 차가 출발할 즈음엔 만차는 아니라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헌데 비가 많이 내린다. 내심 내일 비 예보가 있는데 하는 걱정도 됐다.
차에서는 아무도 떠들지 않고 조용했고 차에서 잠 못잔다는 남의편은 잘만 잔다.
-한신계곡은 소리로 느끼고.....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준비하고 출발하는데 좋은 사람들 버스 한대가 들어오는데 사람들은 안 보인다.
4시 안됐지만 문은 열려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장터목으로 올라가고 우린 세석을 향해서 출발. 2013년 이 코스를 여름방학에 다녀왔던 그 코스인데 세월이 많이 흐른지라 사실 걱정이 좀 된건 사실이다.
한신계곡이 초장엔 평탄하고 계곡이 좋지만 아무것도 안 보이고 물소리만 시끄러우니 귀로 보는 수 밖에 없다. 이 길을 2019년 여름 비때문에 입산 통제 해 세석에서 하산하고는 처음인것 같다.
조금 걸으니 곧 추위도 가시고 앞서서 간 사람은 한명인데 사진 찍는 동안 우리가 앞서서 갔다. 초장엔 별로 힘들지 않게 올라갔지만 마지막 1키로 남기고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과연 막판에는 몸이 휘청대는것 같아 한발짝 한발짝 천천히 가근 수 밖에 없다. 땀도 안나니 물도 안 먹히고 쉴 틈도 없이 거의 다 올라가니 해가 뜨기 시작하고 랜턴을 꺼도 보인다.
남의편은 진작 올라갔고 낙엽은 보이지도 않고 산은 온통 갈색이다. 가을이 실종되고 겨울이 온것 같다.
그래도 죽기 살기로 올라온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빨리 세석에 도착해 남의편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세석은 공사중이라 취사장만 겨우 들어갈 수 있고 예전 취사장에도 방을 들여 대피소로 사용할 모양이다. 전화를 해보니 공사중이라 들리지 않고 통과했다고....
그럼 밥은 어디서 먹고? 되돌아 올 생각은 없는것 같아 혼자 떡과 과일 한조각 먹고 촛대봉으로 출발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고어 잠바까지 입었다.
-지리는 보였다 가렸다 반복을.......
남의편은 촛대봉 올라갔다 추우니 조금 되돌아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 날은 흐리고 빗방울도 내리는것 같다. 장터목까지 어여쁜 길은 가스가 끼어 가까운 곳만 겨우 보인다. 그나마 오른쪽은 좀 해가 간간히 보이고 능선 왼쪽은 오리무중이다. 날이 이러니 사진을 찍기도 그렇고 단풍은 커녕 꽃도 자취를 감추어 이런 모습의 지리도 처음인것 같다.
겨우겨우 장터목에 도착하니 취사장에 몇 팀이 보인다. 칸막이 쳐 진 취사장에서 초밥으로 허기를 면하고 과일 한조각 먹고 천왕봉을 향해 출발.
-상고대를 만나고....
장터목에서 천왕봉 가는길 올라가는 사람은 한팀 추월하니 우리밖에 없었고 간간히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우리와 같은 버스 타고 온 사람도 있는것 같다. 날씨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이런 날씨 탓인지 통천문 가까워지니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
정상까지 가는 길 멋진 경치가 안 보이니 사진도 안찍고 정상이 보이는데 2명만 있어 온갖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이 사람 덕분에 우리도 출석부 찍고 가려는데 가렸던 경치가 바람이 불면서 잠깐씩 보여준다. 조금 기다렸다 가자고 하니 점점 더 많은 경치를 보여주더니 중산리 방향이 먼저 개더니 갑자기 중봉 쪽 경치도 가스가 싹 사라지마 상고대와 어울어진 경치를 보여주는데 맑은날 봤다면 당연한 경치지만 가렸다 보여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젠 반야까지 보인다. 야호~
남의편은 작품 사진 찍는다고 왔다 갔다 한다. 걸음이 느린지라 먼저 하산하는데 갑자기 해도 나고 날도 더워진다. 선크림도 바르고 고글도 끼고 잠바도 한꺼불 벗고 출발.
-하산길은 가을을 그래도 조금은 보여주고.....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도 너덜성 계단이더니 이젠 데크를 깔아 놓아 훨씬 좋아졌다. 중산리 방향에서는 올라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고 단체도 있는것 같다. 데크에는 대기선이라는 화살표가 보인다. 아마도 정상 인증샷 하려는 사람들 대기줄인것 같다. 요즘 청춘들이 산에 와 정상 인증샷이 유행이라 사진 찍기 힘들다더니 그래서 대기선까지?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철계단을 색칠을 해 놓았는데 장터목 이후는 칠은 안 되어 있고 군데 군데 휴식 지점이라고 벤치, 배낭걸이대 까지 북한산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안 만든것 보다는 낫지만 하산길 오래 된 나무 계단 보수가 더 급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길은 기억보다 돌 계단이 너무 많았고 거의 안쉬고 내려가려니 올라올 때 아팠던 허리는 까먹었고 이젠 무릎에서 신호가 온다.
배는 계속 허기가 져 쉴때 마다 떡, 빵을 먹으니 뭘 그리 많이 먹냐고 하는데 먹어도 먹어도 헛헛함이 잘 가시지 않는다. 그나마 물은 거의 먹지 않아 넉넉해서 다행이다.
단풍은 떨어 졌거나 말라 있거나 아래는 아직 푸르러 가을인지 여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날도 춥지 않은데 대부분 잠바를 껴 있고 올라온다. 특히 중산리 방향은 오늘 아침부터 맑았다는데.....
예상보다 내가 선방을 해 시간이 여유가 있다고 법계사까지 들리자고 한다. 오랫만에 들린 법계사는 정비가 되어 있었고 지리산 마고할매 동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부처님께 절하고 로타리 휴게소 앞에서 떡 하나 먹고 과일 먹고 중산리를 향해 출발.
중산리 주차장 지나 버스 타는곳에 오니 1시가 조금 지났는데 원지 나가는 버스는 2시가 넘어야 온다. 그 버스를 타고 서울 가는 3시 버스도 바쁠것 같다. 가게 주인에게 택시 번호를 받아 전화하니 5분이면 도착하고 원지 매표소에 전화하니 3시 버스는 없고 2시 버스를 타라고 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3시 버스는 금~일만 운행 한다고......
택시는 미터대로 간다는데 흥정 해 3만원에 원지에 나가 표를 끊고 막간을 이용해 우유 한병 마시고 나니 땀은 안 흘린것 같지만 갈증이 많이 났나 보다.
양말 갈아신고 2시 버스를 타니 비행기 좌석처럼 만들어 놓았고 의자도 고급이고 커튼까지 있다. 당연히 버스 요금이 많이 올랐다. 이 버스 타고 신탄진 휴게소 한번 쉬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반경. 여기서 저녁을 먹으면 퇴근시간에 걸릴것 같다.
무사히 전철 붐비기 전 평촌역 도착 해 족발로 해단식 하자고 해 남의편 단골 족발집에서 매운족발과 공기밥, 막걸리로 오늘 처음 속세 음식을 먹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고 홍합 국물까지 먹으니 허기가 좀 가신다.
집에 오니 7시가 좀 지났다. 씻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나니 온몸은 쑤시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지리에 다녀온게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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