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21산행

만추의 불암산 둘레길 가기 (10/30)

산무수리 2021. 10. 30. 18:22

<패밀리>

정일근


조심해! 자연에도 패밀리*가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나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패밀리가 있다. 자연의 패밀리란 사람의 족보로 치자면 같은 항렬자를 쓰는 형제나 4촌쯤 되는, 그러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의 족보와는 다른, 자연의 인드라 망이 있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밀림의 왕인 사자는 고양이의 패밀리다. 고양이가 형이고 호랑이와 사자는 아우다. 은현리에 와서 도둑고양이에게 야단을 쳐보라. 달아나기는커녕 느릿느릿 왕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며 빤히 쳐다보기까지 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배경에는 도둑고양이에게 왕이 둘이나 있는 패밀리의 ‘빽’이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흘레붙는 개에 대해 뜨거운 물을 뿌리며 방해해서는 안 된다. 늑대, 은빛여우, 너구리가 개의 패밀리다. 가끔씩 개가 하이 톤의 고독한 늑대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자신의 패밀리가 누구인가를 목청 높여 알리는 것이다. 그건 또 자신들의 종족번식 방식에 대해 사람 패밀리가 존중해달라는 경고방송이다.

독야청청해서 외로울 것 같은 소나무에게도 전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같은 따뜻한 패밀리가 있다. 키 작은 벼들이 목에 힘주고 서 있는 것은 키 큰 대나무가 자신의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국화는 코스모스, 과꽃, 해바라기, 민들레, 쑥부쟁이, 도깨비바늘이 제 패밀리다. 놀라지 마라. 국화는 국내에 4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살고 1,0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쉿! 더 무서운 건 그 패밀리 밑으로 20,000이 넘는 국제적인 사조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 중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국화 패밀리들이 파업을 한다면 지구촌에서 꽃구경하기는 힘들 것이다.

향기롭고 우아한 백합에게는 냄새가 고약하고 키가 작은 마늘, 양파가 패밀리다.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 부정하거나 외면해버리지만 자연의 패밀리는 한 번 패밀리는 영원한 패밀리다. 남극의 펭귄부모는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 새끼를 살리기 위해 제 몸 아낌없이 먹이로 내주고 까마귀는 자신을 낳아 기른 어미까마귀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주며 봉양한다.

자연의 패밀리가 볼 땐 지구에 살고 있는 패밀리 중에서 부모가 자식을 쓰레기처럼 내다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패는 패밀리는, 패밀리끼리 싸우고 고소 고발하고 총질하며 전쟁을 하는 패밀리는, 이름도 고상한 호모사피엔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그 패밀리뿐이다. 문자를 가지고 시를 가지고 있다는.

*동식물을 분류할 때 쓰는 과科를 영어로 패밀리family라 한다.

 

코스개관: 화랑대역 4번 출구-불암산 둘레길-당고개역 (10:15~13:30, 흐리다 개었고 덥게 느껴짐. 3명)

 

목욜 관악산 팔봉을 가보니 단풍이 절정이다. 관악산은 단풍이 별로 없는줄 알았는데 이쪽에 오니 아니었다. 오늘 어딜 갈까 고민하다 지금쯤이면 불암산도 단풍이 들었을것 같아 화랑대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에인절고가 전날 결석 신고를 했고 아침 일찍 하늘 문자를 확인했는데 동생을 데리고 온다고 봤는데 안 와 전화 해 보니 못 온다는거라고.... 돋보기를 안쓰니 잘 안 보이고 보고 싶은 글자만 봤나 보다. 리사는 10월 초 조퇴하고 거의 한달만에 출석하는데 컨디션이 완전 회복은 아닌것 같다.

화랑대역 앞 서울 둘레길 스탬프가 여긴 2개나 찍을 수 있다. 찍고 출발.

길거리 리본을 따라 가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다. 불암산 초입도 사람이 많은데 쉴만한 데크에 사람이 많아 쉬기도 그렇고 단체팀은 시끄럽고 사진 찍느라 난리라 그것도 피해야 한다. 간이 정자에서 잠깐 쉬고 불암산 정상 이정표가 오른쪽에 있는 곳에서 우린 둘레길 표지를 따라 왼쪽으로 가니 비로소 사람들이 적어지고 호젓해 졌다. 다들 정상 가는 사람들이었나? ㅎㅎㅎ

 

2019년 3월에 여산 따라 이 길을 왔기에 헤메지 않고 간다. 오늘 만추의 불암산 자락은 가을색으로 멋지다. 염려 보다는 사람도 아주 많지 않다. 지난번 불암산 갈 때 데크길 따라 왔던 전망대가 드디어 보이고 여기를 오니 사람도 많아졌다. 전망대 올라가 출석부도 찍었는데 휠체어 탄 분들이 자원봉사자들과 올라와 계신다.

내려가 조금 한갖진 데크에 앉아 리사가 사 온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있는데 내가 사진 찍는걸 본 옆에 홀로 계시던 오라방께서 셋이 사진을 찍어 주신다고. 이렇게 셋이 다니는 친구들이 보기 좋다고... (친구면 내가 손해인데....)

얼떨결에 사진을 찍혔는데 사진이 아주 잘 나왔다. 젊어서는 한자락 하셨을것 같다.

여기서는 내리막이 주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상계역 갈림길에 스탬프 찍는 곳이 나왔다. 예전엔 여기서 하산을 했는데 다소 아쉬워 덕릉고개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을 하다보니 예전 불암산에서 하산해서 왔던 곳까지 왔다. 여기서 덕릉고개 가는건 큰 의미가 없는것 같아 여기서 하산해 당고개역으로 와서 낙지볶음을 시켰는데 당고개역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나은것 같다.

산행이 빨리 끝나 차까지 마셨는데도 시간이 널널하다. 전철타고 비몽사몽 오다 인덕원에서 내려 관양시장에서 장까지 보고 집으로~